내가 생각하는 나의 마음나이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 같다. 치유일기를 통한 성숙의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중학생정도니 여전히 장난꾸러기 소년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마음에 소년이 들어있었으니 어린 아들들과도 잘 통했다. 좋아하는 만화영화나 프로그램도 비슷했고 장난치는 수준도 비슷했다. 사춘기로 접어든 아들과의 어색한 소통도 있었지만 내 고집보다 아들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따라가는경험들로 우린 더 친해졌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선택이나 고민거리들이 있을 때 주저 없이 말해주며 내 의견을 물어보는 아들의 태도에서 나에 대한 신뢰가 있음을 느낀다.
철없던 아들이 나보다 철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대견함을 느끼지만 아직도 경험해야 할 것이 많은 아들은 사회에서 초보다. 찰나의 생각이 성숙한 것이지 행동이나 경험은 아직도 시작 수준이라 생각한다.그래서인지미숙한 생각이나 태도가 보이면 강약을 조절한 말을 하거나 편지를 써서알려주는 편이다.
아들과 부딪히고 화해한 후 전달하는 편지는 연애편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떨렸다. 말없이 편지를 펼치고 책상에서 읽어보는 듯한 소리가 들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리는 싸운 일이 없다는 듯이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예전보다 친해진 느낌이다.
엄마의 마음에 병이 있으면 아들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하기에 마음관리에도 신경 쓰며 살게 된다. 아들보다 어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아들에게 성숙을 요하는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내 마음이 아들에게도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 자중할 필요가 있단 걸 아는 나는 명랑함과 쾌활함을 숨기려 책을 읽고 글을 써댄다.
가끔씩 발동되는 나의 장난기는
"꺼지세요"란 아들의 정지버튼에 멈추게 되고
"네"하고 나오는 내 모습에서 웃음이 시작된다.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이제는 서로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경험들을 채울 차례인 것 같다. 각자의 포지션이 정해진 만큼 끈질기게 하다 보면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큰아들은 좋은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작은아들은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어 하니(이 녀석의 진로는 바뀔 수 있다)
나는 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일을 해가며 글 쓰는 엄마로 지내다 보니 목표가 주는 싱그러운 기쁨이 있다. 큰아들에게 좋은 가사를 써주고 싶고 작은아들에겐 스토리를 안겨주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못할 것도 없기에 매일 조금씩 걸어가는 게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