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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Jul 11. 2024

내가 살을 날렸다고요?

나의 실수

출근을 하자 사장님이 배가 아프다며 병원을 가신다고 했다. 몇 년간 아픈 곳 없이 잘 버티시더니 무슨 일인가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점심쯤 오시지 않을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아따씨가 출근한 오후까지 소식이 없었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가신다 했는데 아직 안 오시네요."

"사장님이 배가 아프시다고요? 어제저녁까지 멀쩡했는데. 와~ 이제는 과장님이 살도 날리네요. 어제 과장님한테 짜증 좀 냈다고 사장님을 보내버리다니. 아주 무서운 사람이야."

"뭐라고요? 내가 살을 날렸다고요?"


사실 어제 퇴근 무렵에 받은 제본으로 사장님의 불평을 들은 일이 있었다.

제본의뢰를 받을 때는 작업내용을  메모하고 연락처를 남겨놓는다. 드물긴 하지만 책표지가 애매한 경우에는 손님의 책을 사진으로 찍어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작업자가 고객에게 연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연락처는 중요하. 책을 만드는 제본은 꼼꼼함을 요구하는 일이고 신경이 쓰이는 작업에 속한다. 그래서 제본파트를 분리해 접수를 받고 진행하는 게 좋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로 제본관련한 실수는 종종 있는 편이다. 어제도 그랬다. 제본을 의뢰하시는 분의 세세한 요구사항으로 메모할 게 많았고 사진도 찍어야 했다.

"이렇게 전달하면 사장님도 아실 거예요."


늘 이렇게 말씀하시는 손님들로 직원들은 혼란스럽다. 정확하지 않은 의뢰내용에 전달사항도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사장님께서 한 번 더 전화로 확인하셔야 했다. 자주 오셨분일지라 전화번호를 남기고 요청사항을 사장님께 전달해 드렸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혼자서 무어라 말씀하시는 데 분명한 불평이었지만 분명한 지시사항도 아니었다. 싸늘해진 매장분위기로 모두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연락처가 맞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며 제본을 미루는 모습을 보게 됐다. 손님의 연락처를 제대로 적지 못한 실수를 한 것이다. 급한 제본이 아니었고 자주 오시는 분이셨기에 연락처는 다음날 주문장을 뒤져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매장을 나섰다. 퇴근한 후에도 아따씨는 현장을 생중계하며 잘못된 연락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신경 쓴 덕분에 제대로 된 연락처를 찾았고 제본도 당일 완성할 수 있었다. 별일이 아닌 것을 별일로 만들고 보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년 동안 일을 하며 사장님과의 갈등도 피할 수 없었기에 몇 번의 부딪힘은 있었다. 각자의 스타일을 알고 있어 서로 조심하며 일 외에는 말을 아끼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장님은 과장인 나를 어려워한다. 해야 할 말은 하셔야 하는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나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따씨만이 아닌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분노가 살이 되어 사장님을 향했고 장염에 걸렸다해석이 나왔다. 살을 날린다는 말은 샤머니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데 묘한 타이밍에 잘 끼워 맞춘 이야기였다.

"사람이 하는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이 있어요. 과장님도 그런 쪽이니 좋은 말만 하셔야 해요"

"예?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요. 저는 그런 능력이 없거니와 많은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사장님이 바빠 보여 인사를 안 하고 퇴근을 했을 뿐이지요."

"그게 더 무서운 겁니다. 매일 하던 퇴근인사를 안 하시니 당신이 짜증 난 걸 알린 셈이지요.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인데."

"퇴근하고 집에서 잘 못 드셨겠지요."

"아닙니다. 과장님이 사장님한테 살을 날린 겁니다."

"...."


인터넷으로 살을 날린다는 뜻을 찾아보니 사람이나 생물, 물건 등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가리키는 종교 용어라고 했다. 평소에 기도를 하고 종교를 믿는 내게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는 아따씨에게 반박하기 힘들었다. 이런 희한한 타이밍에 또 하나의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꼈다.


그날 하루. 통으로 자리를 비운 사장님 덕분에 나는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다음날 점심과 저녁을 굶다시피 한 사장님을 보고서야 진짜 장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꾀병일수 있지 않을까 의심했었는데 진짜라니 괜히 미안해졌다. 이제는 짜증도 조심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따씨의 살을 날렸다는 멘트는 이상하게 통쾌했다. 나에게 없는 능력도 있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왠지 진짜 능력자가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나의 실수로 인한 것인데 아픈 사장님만 고생한 게 되었다. 왠지 미안하다.




나의 실수


현생에 사장이 꿍얼거린다

내 일이 바쁜 나는

별일 아니라 여긴다


현생에 사장이 예민하다

내가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현생에 사장이

나를 어려워하고

나의 실수를 지적질하지 못하니

하루종일 동동거린다


꿍얼거림과 예민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는

바쁘면서도 당당하다


업체의 전화를 받고서야

맞춰지는 퍼즐

아~

그래서 꿍얼거렸구나

그래서 예민했구나


아무리 내가 어렵더라도

미리 말씀을 하시지

그래야 실수도 수정할 것을


왠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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