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이란 이유로 고객의 징징거림이나 화풀이를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돈을 지불했으니 원하는 요구들은 들어줘야 한다라는 생각에서일까?
매장에서 물건을 판매하며 고객과 소통하다 보면 간혹 여러 가지 이유로 부딪힘이 발생한다. 방문하는 고객 중에 많은 분들은 친절하시거나 일반적이지만 아닌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대부분은 급하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분들이 많다. 본인이 바쁘기 때문에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빨리 가져가야 하는 경우다. 매장에 있는 점원들도 다른 일이 있는데 그런 건 상관없고 본인의 바쁜 일만 중요하다 보니 점원을 보채게 된다.
우리 매장의 특성상 주차장이 부족한 이유로 급하게 날아들어 오시는 분들이 있다. 주차장이 부족하다 보니 도로 옆에 차를 대고 들어오셔서 물건을 찾으신다. 주차 딱지가 끊길까 봐 오래 있을 수 없기에 들어오시자마자 점원에게 물건의 위치를 물어본다. 마음이 급한 손님을 맞다 보면 같이 급해지기에 알려드리거나 찾아드리지만 물건을 선택하는 것은 손님이다. 그리고 다른 일로 집중하다 보면 그 손님에게만 집중할 수도 없다. 위치만 알려드릴 수밖에.
토요일 오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어느 중년의 여자손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급하게 한지를 찾으신다.
“한지 어디 있어요.”
“어떤 한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냥 한지.”
한지에도 크기가 있고 종류가 있는데 공격적이고 다급해 보이는 손님에게 더 이상 질문하는 것은 무리겠다 싶었다.
“2층에 몇번칸에 한지 종류가 있는데 한번 보세요.”
올라갔다가 내려오신 손님은 더 공격적으로 말씀하셨고 더 바빠 보였다.
“아니 돌돌 말린 종이 2개가 있던데 그거 한지 아니던데 찾아줘요.”
“잠깐만요. 그럼 따라오세요.”
그 순간 중년의 여자손님은 폭발했다. 따라오라는 말에 트집을 잡으며 서비스업종에서 말투를 그 따위로 하느니 사장이라면 그렇게 안 할 것이라니 하며 분노를 표출하시는 거다. 나는 황당했다. 그리고 일단은 손님이 화가 나신 상황이니 죄송하다며 사과해야 했다. 내가 말했던 따라오라는 말이 그 손님에게는 공격적일 수도 있으며 무례한 말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에도 통하지 않고 미친 듯이 화를 뿜어내는 손님을 보며 차분하게 해결책을 생각해야 했다. 정말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얼굴을 들이대며 분노를 표출하시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미친개 같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인 고등학생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정말 말이 안 통하시네요.”
이른 아침부터 번개 같은 상황을 겪었지만 나는 매장에서 근무한 지 8년이 지난 관리자다. 이런 상황이 이번 한 번뿐이겠는가. 그리고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지 못한 나의 불찰도 있으니 샘샘이다. 급하게 들어오시는 손님일수록 천천히 응대하며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적인 손님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나온 신체적 언어반응이었다. 그럴수록 영혼 없는 고음과 말투로 황당한 상황을 견뎠어야 했는데 찰나의 실수였다.
이런 상황을 겪어낸 나의 마음은 의외로 평온했다. 손님의 분노로 매장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란 걱정이 크기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낸 것은 손님이었니 손님의 마음이 불구덩일 것이다. 뜨거운 불을 안고 나가신 건 손님이었고 나는 황당할 뿐이다.
다만 고등학생인 아들 앞에서 어른답지 못하는 상황을 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내가 아닌 사회 초년생이 겪었다면 어떨까? 득달같이 달려드는 상대앞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도 통하지 않고 5분간 토해내듯 연설을 하는 어른 앞에서 사회 초년생들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으로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을까란 걱정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린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게 있을까? 상황은 지나갔기에 괜찮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억울함과 상대의 얼굴은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고객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점원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이 왕일 수는 없다.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제공한 매장이 아닌가.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시대다. 고객이라도 공격적인 태도로 점원을 대한다면 높은 서비스의 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존중과 배려가 있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감정적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거래가 많아지는 상황인가 보다. 말하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고 물건을 받아 볼 수 있으니 감정의 소비가 없다. 로봇이 응대하고 접대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일을 하는 이상 이런 상황은 언제든 온다. 피할 수가 없으니 더 이성적이게 되고 더욱 무표정이 된다. 익숙한 사람에게만 내 미소를 보이고 친절한 분에겐 감사하며 무례한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감정을 지워낸다. 어쩔 땐 감정을 지워내는 감정지우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불편한 감정을 지우면 마음은 편할 수 있으니까. 마음속에 저장되지 않게 하는 감정지우개 멋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필을 지우는 지우개나 볼펜을 지우는 수정테이프도 종이에 패여진 자국까진 지울 수 없다. 그 위에 다시 쓰여지는 것일 뿐 자국은 남아있다. 대신 다시 쓰여지는 무엇에 긍정적인 문구가 필요하다. 패인 자국보다 다시 쓰여지는 것에 집중하여 긍정을 만들어 낸다면 나쁜 상황은 좋은 상황이 된다. 나의 경우엔 글로 풀어내는 것인데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상대를 대하는 모든 이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