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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Aug 08. 2024

가격도 모르는 수동식 골동품 커터기

유물 같은 제품 수동식 사진 커터기

아침에 출근하니 '포토 다이 커터'라는 흰색 상자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노란색 쪽지에 적힌 아따씨의 메모를 보니 이 상품의 가격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매장청소를 하다 발견한 제품 같은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증명사진용 수동 커터기였다. 제품이 매장에 있던 것은 알아도 사용법을 몰랐던 나는 궁금해졌다. 제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판매가 가능했기에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포토 다이 커터'에 대해 검색하니 국내에서는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가 없었고 해외배송으로만 살 수 있는 골동품이었다. 수동식 증명사진용 커터기라는 확신을 가지고 외국 사이트를 뒤지다 알게 된 커터기 크기별로 종류가 다양했다. 주로 직사각형의 네모난 모양이 많았지만 원형 모양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수동 커터기로 증명사진을 잘랐던 것 같은데 요즘엔 사진관에서 스티커형식으로까지 컷팅되어 나오니 많이 쓰이는 제품은 아니었다.


수동식 사진 컷팅기


희소성에 대한 호기심에 수동식 커터기를 꺼내보니 제법 무거웠다. 이걸 들고 다닌다는 것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할 때처럼 팔근육을 키울 때 드는 것뿐이라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흰색 상자를 열어보니 검은색 컷팅바와 둥근 모서리의 네모난 창이 눈에 띄었다. 무늬 없는 디자인과 캐릭터 없는 단순한 사진 커터기를 바라보니 이게 무슨 컷팅기란 건가 싶었다. 투박하고 묵직한 모양이 그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손잡이바누르면 비밀의 문을 열어주는 용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에 있어야 할 유물이 사진커터기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아령 같기도 해서 고민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판매하지?

사람들이 찾을까?

얼마로 판매해야 할까?

시대와 맞지 않는 오래된 제품이었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이 사용을 권하고자 한다면 빈티지감성의 인테리어효과를 내고자 할 때와 사진 컷팅 체험용으로 괜찮은 소품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참 동안 바라만 봤던 수동식 증명사진 커터기에 원리가 궁금해져 종이를 넣고 잘라보았다. 겨우 찾은 틈으로 종이를 끼워 넣고 검은색 컷팅바를 눌러보니 쓱싹하는 소리를 내며 2.5cmx3.2cm의 사진크기가 한방에 잘렸다. 가위질 4번, 칼질 4번 대신 한 번에 컷팅된다는 점은 작은 그림조각을 완성해 낸 듯한 상쾌함을 선사했다.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내 힘과 정성들어가며 컷팅하는 자체가 놀이로 느껴져 재미있기도 했다.


출근한 아따씨에게도 상쾌한 유물을 소개했다.

"아따씨!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알아요?"

"아뇨. 몰라서 과장님 책상에 올려놨어요."

"이것은 말이죠."


찍어놓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수동식 증명사진 커터기에 대해 알려주니 놀라워했다.

"이런 것도 있었어요?"

"10년도 더 된 제품이라 언제 물건인지는 모르겠어요. 시대에 뒤처진 유물 같은 제품이지만 주인이 있겠지요."

"주인이 없을 것 같은데요. 가격은요?"

"인터넷이랑 비슷하게 해 놓고요. 잘 포장해서 원래 자리에 둡시다. 물건도 주인이 있다니까요."


지금보다 다양한 커터기가 없었던 시절이었다면 이 제품은 많은 이에 손길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직구나 오래된 문구점에 가야만 찾을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 시대에 필요한 지금의 능력은 무엇일까였다. 개인의 능력도 유물이 되지 않고 제품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얼 배우며 익혀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됐다. 오래된 제품을 만지며 지난날의 영광과 현재의 서러움이 느껴지니 골동품에게도 새로운 쓰임새가 입혀졌으면 좋겠다.




골동품



매 초마다

매 분마다

매 시간마다

매일의 새로움이 도착한다


화려한 상품이

옷을 입고

매장으로 진열되면

위축되는 기존물건


어느새 시간을 머금고

새로운 물건들의 진열을 보고 있구나

너도 얼마 전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뒤로 물러나는구나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

먼저 왔든 뒤에 왔든

지금의 자리에서

너의 폼을 유지하자


그러면 너를 알아보는 이

너의 쓰임새를 알아채는 이

나타날 것이니 아쉬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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