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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Aug 15. 2024

뭐라고요? 야한 볼펜이라고요?

3월에 재탄생한 문구점 야한 볼펜

새 학기가 시작된 3월의 문구점은 정신이 없다. 신학기를 맞이한 문구용품판매와 동시에 S2B(학교장터)를 통해 계약된 학교의 학습준비물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학습준비물은 학교에서 사용할 학용품과 수업재료들을 말하는데 서류 하나당 제품 리스트만 해도 400개가 된다. 손톱만 한 자석에서부터 큰 박스까지 챙겨야 하는 문구용품만도 400개가 된다는 소리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물건을 챙기며 매장 곳곳에 쌓아놓은 박스로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이 보이지 않으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있는 모습같기도 하다.


학습준비물은 업체 최저가로 계약된 만큼 챙기기 전에 사장님께 전달받아야  사항들이 많다. 어떤 제품을 납품할지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장님의  몫이 때문이다. 학교도 한 곳만이 아니라 몇 군데를 한꺼번에 챙겨야 하기에 3월은 문구점에서 가장 바쁜 달이.


우선 400개를 챙겨야 하는 학교의 리스트를 받아 들고 아따씨와 나는 사장님의 전달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00인데요. 투명우산 20개 지금 있나요?"

"네. 있습니다. 정확한 수량은 챙겨보고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받고 우산을 챙기러 가는 사이 사장님에게 전달사항을 받아 적던 아따씨의 작은 탄성이 들렸다.

"아~~ 이건.."


작은 탄성뒤로 들려오는 사장님의 큰 웃음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단어인 볼펜, 에스, 조용히 하라는 아따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의 궁금증을 키웠다. 순간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에피소드'라는 글감의 전구가 켜지니 우산코너의 조그만 코너로 사장님과 아따씨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지금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내가 잠깐 들은 내용이 있는데. 이거 아주 좋은 에피소드가 될 것 같습니다. 잠깐만요. 우산만 들고 빨리 갈게요. 다시 해주세요."



우산을 챙겨 달려오는 중에도 조용히 하라는 아따씨의 목소리와 현생의 사장이 아따씨에게 팔뚝을 맞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가져온 우산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말했다.

과장 : "자! 왔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어떻게 됐다고요?"

아따씨 : "고만하라고.(퍽퍽) 말하지 말라고요(퍽퍽)"

사장님의 팔뚝을 향해 주먹펀치를 날리며 사장님의 입을 막으려는 아따씨를 진정시키며 다시 한번 물었다.


과장 : "아따씨야 진정하시고요. 사장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아따씨가 뭐라고 했는데."

아따씨 : "과장님아! 이거 별 거 아니에요."(퍽퍽)

과장 : 뭐가 별거 아닙니까. 나 들었다고요. 웃는 소리 하고 S자 소리를 들었다고요."


상기된 얼굴과 부끄러워하는 아따씨를 뒤로 하고 사장님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학습준비물 리스트에 적힌 볼펜의 모델명을 알려주는 타이밍이었다.

사장 : "SXE3~~ 볼펜"

아따씨 : "SE 아이! 뭐라고요? 어머나! 이거 아닌데"

순간 아따씨의 야한 생각을 눈치챈 사장님!

사장 : "왜요?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10년 넘게 문구점일을 하면서도 이 볼펜을 보며 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와~"

아따씨 : "아니. 그게 아니라. 에스~ 아 이게 아닌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되었다. 아따씨의 순간적인 환청은 음란마귀에 목마른 귀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게 됐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한 단어이긴 하지만 40대 중반에 아이까지 낳은 아줌마들이 아닌가. 부끄럽기보다 그런 순간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계속 당황해하며 부끄러워하는 아따씨에게 말해주었다.

과장 : "아따씨야! 그대가 야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당황해서 그런 것이니 민망해하지 말아요. 잠시 착각했을 수도 있지요."

아따씨 : "그렇죠! 과장님 내가 이상한 거 아니죠?"

과장 : "네! 음란한 생각이긴 하나 그럴 수 있습니다."

아따씨 : "과장니임!!! 이상하게 글 쓸 거 아니죠?

과장 : "걱정 말아요. 내가 잘 소화시켜 볼게요."

아따씨 : "그런데 볼펜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과장님이 우산을 들고 뛰어오는 모습이었어요. 과장님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 줄 알아요?"

과장 : "아 그렇습니까? 에피소드에 목마른 사람이라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왔지요. 매장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놓칠까 봐서요."


다음날 출근하고 아따씨의 학습준비물 리스트를 보는데 S에서 급하게 칠해진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바로 이 부분이었구나. 볼펜에서 착각했던 거구나.' 


아따씨가 말하는 볼펜은 일본에서 수입된 펜으로 손님들이 좋아하는 볼펜이었다. 부드럽게 잘 써지며 다양한 색깔과 리필심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펜이었다. 문구점에 일하면 당연히 알게 되는 펜을 섹시하게 만들었으니 앞으로 이 볼펜을 야한 볼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따씨가 말하는 야한 볼펜들을 챙기며 그에게도 말했다.

"앞으로 이 볼펜은 우리 매장에서 야한 볼펜으로 부릅시다. 아따씨가 잘 알 수 있도록 3색 야한 볼펜, 4색 야한 볼펜, 검은색 야한 볼펜, 빨간색 야한 볼펜, 청색 야한 볼펜으로 말입니다."

크게 웃는 그와 사장님의 반응으로 새로운 볼펜의 작명은 만족스러웠.


오후에 출근한 아따씨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아따씨야 아따씨가 고민한 야~한 볼펜 내가 챙겨놨어요. 이건 3색 야~한 볼펜이고요 이건 단색 야~한 볼펜이에요. 모두 3학년 물품이니 잘 체크해서 박스에 담아놓으세요."


얼굴이 붉은 단풍잎이 되어가는 아따씨에게 한 번 더 말해준다.

"아따씨야 부끄러운 게 아니라오.

괜찮다오.

그대 덕분에 이 볼펜이 야한 볼펜으로 재탄생되었으니 기뻐할 일이라오."

"과장니이이임!!!!"




출근소리


들려오는 잔소리가

그대의 출근을 알린다


현생의 사장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그 시작


그대의 동그란 어깨가

모니터를 향하고

눈동자를 굴리며

손가락을 두드린다


점점 처지는 동그란 어깨

점점 희미해지는 눈동자

점점 커져가는 지그재그 입술


펼쳐진 시작

각자의 자리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오후시간임을 말해준다


항상 같은 사운드

항상 같은 포지션

그대의 출근을 알리는

멜로디 카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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