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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가 한국 사법계에 주는 교훈

드라마 <리갈하이>

by 제이슨

나는 일드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일드를 처음 접했던 것은 예전에 학창시절 때 학교에서 틀어준 미스터 브레인이라고 기무라 타쿠야가 나오는 작품이었는데 그거 보고 일드에 빠져 다른 일드도 봤지만 그다지 끌리는게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몇몇 일드는 재밌게 봤다. 그 중에서 대표작으로는 료마전, 한자와 나오키 그리고 리갈하이가 있다.


리갈하이는 기본적으로 개그 드라마다. 그래서 가볍게 사건을 다루고 사법부의 모습도 우스꽝 스럽게 다룬다. 예를 들자면 2화에서 코미카도 켄스케가 맡은 사건은 구장에서 야유하다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친 아줌마가 구단에게 위자료 1천만엔을 물어내라는 소송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코미가토는 변호를 하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를 밀어붙인다. 그리고 판사들은 거기에 넘어간다.


마유즈미 마치코라는 캐릭터도 완전히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물이다. 너무 정의감이 넘치는 나머지 언더도그마와 평면적 사고의 틀에 갇혀있는데 이런 사람은 사실 변호사를 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런 캐릭터를 굳이 넣은, 그것도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아라가키 유이에게 배정한 이유는 아마 코미카도와의 가치관 대립과 그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리갈하이는 기본적으로 겉으로 보기엔 가벼운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면 꼭 그런 작품만은 아니다. 1화 마지막에 용의자가 풀려나면서 진범인 듯한 늬앙스를 풍기는 듯한 발언을 하는 걸 보고 마유즈미는 자기가 범죄자를 풀어준 건 아닌지 깊이 고심하는데 이에 코미카도는 변호사는 정의의 심판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뢰인을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각키 이쁘다

또한 정의 타령은 아랫 사람을 깔보는 동정에 지나지 않으며 그때마다 눈 앞에 있는 가엾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 뿐이라고 코미카도는 일갈한다. 이에 마유즈미는 그걸 부정하면 정의는 어디에 있냐고 하는데 코미카도는 이에 대해서 신도 아닌 변호사가 그걸 어디서 알겠냐며 정의는 소년만화나 특촬물에서나 찾으라고 한다.


확실히 요즘 정의를 자칭하며 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사적제재라고 표현하는데 자기가 마치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처럼 정의의 사도인 마냥 범죄자를 심판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조두순이 출소했을 때도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을 빙자하는 집단 광기에 휩쓸린 이른바 '개돼지'들이 집 앞까지 찾아가서 설쳤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정의를 자처하는 꼴이 옳을까?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신이 아닐 뿐더러 코미카도의 말처럼 정의가 그렇게 딱딱 내려지는게 아니니 말이다. 안도 키와 사건 파트에서도 나오지만 정의에 휩쓸린 시위대는 안도 키와의 변호인 중 하나인 마유즈미를 폭행하는데 나는 이 장면이 집단광기에 떼법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본다.


시즌 2 9화에서 다이고 검사는 법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며 민의는 안도 키와를 사형시키는 것을 찬성하니 사형 시키자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코미카도의 말처럼 진짜 악마는 거대하게 부풀려진 민의, 곧 집단광기라고 본다.


우리는 법의 판결이 마음에 안들면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옳을까? 국민의 민의와 법감정대로 재판할 거면 설문조사로 하면 되지, 왜 굳이 격식을 차린 절차가 존재하는가? 그런데도 애석하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치는 국민의 법 감정대로 흘러가고 있으며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은 개나줘버리고 있다.


이 드라마, 리갈하이를 보면서 나는 성인지 감수성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안희정을 보라. 솔직히 안희정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증거도 없고 증언도 없고 오로지 잘난 피해호소인의 증언 하나로 유죄가 떨어졌다. 안희정이 잘못한 건 간통 밖에 없었고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그걸로 유죄를 때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보배드림 곰탕집 사건도 그렇다. 남성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언 하나로 유죄를 줬다. 곰탕집 사건 외에도 성인지 감수성 하나 때문에 억울하게 무고 사건을 당한 남성들의 수도 늘고 있다. 나는 현실 속 성인지 감수성이 다이고 검사가 말한 민의에 의한 사법의 실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다이고 검사가 강조하는 민의는 옳은가? 라는 의문도 들었다. 민의가 옳다는 논리대로라면 히틀러가 집권해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독일인들의 민의니까 옳고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도 민의 역시 반공의 집단광기에 물들었는데 옳은가? 민의라는 것은 참 무섭다. 민중사관론자들이 민의에 의한 것을 상당히 고평가하곤 하는데 나는 이게 결국 민의에 의한 것이면 학살도 좋다는 논리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됐다.


한편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 되었다. JTBC에서 방영했는데 떼법, 성인지 감수성, 법감정을 옹호하기 바쁜 JTBC 답게 원작의 강도 높은 언더도그마 풍자가 무색하게 완전히 메갈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사법 현실을 비판하긴 커녕 오히려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다 보니 이런 부분은 일드가 한드보다 나으니 참 씁쓸하기도 했다.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사법 현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좋아하는 분들께 일본 드라마 '리갈하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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