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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생 김말자였다면 더 좋았을 책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by 제이슨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페미니즘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며 오늘날까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산 책으로 남아있다. 특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씩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주변 지인 중에 여자들의 경우에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냥 많이 읽히니까 궁금해서 읽어본 사람이 많다. 이처럼 이 책은 상업적으로 타깃을 잘 잡아 성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남자들로부터는 극도의 반감을 사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82kg 김지영' 드립처럼 페미니스트들을 비하하는 용도의 드립으로도 사용되기도 하고 영화로 개봉했을 때도 야갤 같은 남초 커뮤에서는 별점 테러를 가했었다. 한마디로 같은 세대더라도 여성층에서는 환호를 받지만 남성층에서는 반감을 산다는 말이다.


아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도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라는 것이다. 작중에서 보면 주인공 김지영이 몰카 촬영과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묘사도 나오는데 이 또한 작가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문제도 있을 터이고 동시에 지금의 4050세대 여성들만 해도 극심한 차별을 겪었을 것이고 30대 여성들도 일부겠지만 조금은 겪어봤을 것이다. 거기다가 몰카나 성희롱 문제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문제니 말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과연 지금 한국이 4050세대 여성들이 겪었던 것처럼 극심한 여성 차별 사회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좀 회의적이다. 몰카와 성희롱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과 별개로 모든 여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런 말하면 여자들은 성범죄를 겪을 위험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논리면 남자들도 군대 가서 다치면 느그 아들될 위험을 겪고 있다.


당장 남자들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다. 90년대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니까 양보하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고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 90년대생 이전 세대들의 경우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강도 높은 체벌을 받았다. 과연 이걸 보고도 남자들은 가부장제에서 이득만 봤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의문이다.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아픔은 강하게 부각하면서도 남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한다. 오히려 이 작품의 영화판에서 남자들이 고민이나 이런게 더 잘 나온다. 원작에서는 남자들은 하나 같이 평면적으로 나올 뿐더러 여성에게는 무신경한 사람으로만 나오는데 이는 오히려 성 갈등을 부추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억압했었던 구조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차별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한 세대인 82년생이 아니라 굉장히 차별이 극심했던 62년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남자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다.


거기다가 82년생 김지영은 오로지 피해의식만 강조함으로써 증오, 분노만 부추킬 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갈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기보단 여자들의 한서림과 남자들은 나쁘다며 갈등을 부추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뿐만은 아닐 거다.


그래서 나는 82년생 김지영과 92년생 김지훈을 넘어 전세대가 불평등이란 최종보스에 싸우도록 하는 방향으로 페미니즘이든 안티페미니즘이든 그렇게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남자와 여자 모두 쌍방이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며 서로가 양보하고 이해해야만 이 갈등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담으로 조남주 작가는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리버럴과 래디컬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에는 래디컬의 책임이 크다. 그나마 리버럴 페미니즘은 흑인 차별, 사회주의 배격 같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여성 참정권을 얻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2세대라며 등장한 래디컬 페미니즘은? 전혀 얻어낸 게 없다. 래디컬이 나오면서 여성 인권이 신장되기는 커녕 그들의 극단적인 행보에 여성혐오를 가지는 사람도 늘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남성혐오를 떠올리게 된 것에는 래디컬의 행보가 자초한 책임이 크다.


82년생 김지영, 92년생 김지훈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페미니즘이든 안티페미니즘이든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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