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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pr 27. 2023

근대 일본이 낳은 모순이자 희대의 천재, 기타 잇키

기타 잇키 만큼 일본 근대 천황제의 모순을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당장 미노베 다쓰키치가 천황기관설을 주장한 것만 해도 국체 명징 운동이라 하여 천황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는데 사실 천황기관설은 그리 급진적인 주장이 아니다. 하나의 기관으로 보되 그 신성성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전후 미노베 다쓰키치가 주장한 헌법 제시안은 GHQ에 의해 단칼에 부정되었다. 따라서 미노베의 천황기관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것은 오늘날 일본의 천황제다.

그런데 오늘날의 천황제보다 기타 잇키의 천황제 사회주의가 더 급진적이다. 그는 천황의 국민을 국민의 천황으로 바꿔놓은 사람으로서 국토는 천황의 사유지가 아니고 인민은 천황의 사유물인 노예가 아니라 국가에 속하는데 지주와 자본가로 이루어진 화족들이 토지와 인민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있으니 이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적 기획이란 하층민으로 전락한 국민을 상층민으로 끌어올려 천황을 특권을 가진 국가에 귀속된 국민으로 만들어 의회와 국가에 봉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기타는 고토쿠 슈스이나 사카이 도시히코 등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구상은 개인이나 계급이 아니라 국가였다고 했다. 천황에 예속된 국민을 해방시키는 것도 대일본제국을 강한 국가로 만들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그는 천황의 제국이 아니라 나의 제국을 꿈꾸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 개념이 잘 잡히지 않은 한국에서는 기타 잇키는 조금 낯설어 보인다. 그리고 사회주의부터 공화주의, 심지어 자유주의에 기반한 사회계약설까지 아우르는 그의 사상적 행보는 당황스러울 거다. 역사학자 마쓰모토 겐이치는 그를 혁명적 낭만주의자로 정의했는데 그는 <청년 기타 잇키>를 썼다가 <히로히토 평전>의 저자 허버트 빅스에게 우익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가 하면 우익 인사들은 마쓰모토를 향해 우익 인사 기타를 좌익으로 바꾸고 있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기타의 사상 근간은 단순하진 않다. 우익 내셔널리즘이 결국 천황=국가라는 메이지 국체론으로 귀결된 것에 비해 기타 잇키는 국민=국가라는 국체론을 구축했고 그럼으로써 메이지 이데올로기였던 국체론이 천황의 국가와 천황의 국민에서 <일본개조법안대강>을 통해 국민의 천황이라는 민주 혁명 사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26 사건 후 육군에 제출된 <조사휘보>에서는 기타를 대일본제국 헌법 1조를 어긴 테러사범으로 규정한다.

국민 주권설과 천황 주권설, 이는 일본국 헌법이 제정되기까지 근대 일본 사회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던 이슈였다.  놀랍게도 미시마 유키오는 기타의 <개조법안>의 70%가 전후 헌법에서 실천되었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전전 40년 동안 금서였던 <국가개조법안대강>이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다. 전후에 그를 추종하였던 대학생인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가 되고 동생 기타 레이키치가 중의원이 된 건 덤이었다.

미시마는 <국가개조법안대강>을 읽고 제5권 노동자의 권리는 지금 읽어도 진보적이며 8시간 노동제, 순익 2분의 1 노동자에게 배당, 노동자의 경영 참여, 유년 노동 금지나 부인 노동에 대해 웬만한 사회주의 국가보다 진보적인 정책이라고 했는데 전후 일본의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화 되며 대부분 실현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일본에서 복지 체계는 빈틈이 많기에 이 부분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은 일본 노동자들의 몫일 거다.

그러나 기타의 구상이 전후 일본에 이어지지 않은 것도 있는데 미시마가 말하길 국가의 권리일 거라고 했다. 즉 그는 <개조법안>의 제8권 개전의 적극적 권리,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 개시를 전후 헌법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에 따라 전후 일본은 국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은 기타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게 미시마 유키오의 논리다. 이는 신우익들이 전후에 전공투와 연대하면서도 군국주의를 긍정하는 이유였고 반대로 전공투와 적군파는 기타의 논리를 극좌적으로 활용, 미국에 대항하는 혁명 전쟁의 개전권으로 확대 해석했다.

기타 잇키를 좌익으로 보느냐, 우익으로 보느냐. 사실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은 마쓰모토의 혁명적 낭만주의자라는 관점이 옳지 않나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좌익은 혁명, 우익은 내셔널리즘이라는 고정관념이 침투해있기에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으나 기타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전전 시기 메이지 체제의 유산이 만들어 낸 모순이자 천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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