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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l 18. 2023

존경이라는 것

위인의 정의를 다르게 생각해보기

어린 시절, 우리는 위인전을 한번이라도 안 읽어본 사람이 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집에 있는 위인전을 학교에 가져가서 점심시간이나 아침 례 때 읽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일생을 전지적 시점에서 보니 재밌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위인은 나폴레옹과 안중근, 만델라였고 대처나 처칠도 잘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나는 어렸었는지라 비판적 독서 능력이 모자란 시기였기에 위인전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위인전으로 입문했던 역사에 보다 고차원적으로 빠져들고 위인전에 안나온 정보도 접하면서 내 인식은 더 넓어졌고 그때부터는 위인전 대신 평전이나 자서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크면서 배움이 넓어졌지만 선생들이나 사회에서는 여전히 존경받지 않아야 할 인물을 강요하는게 잘 느껴졌다. 그 예가 히틀러, 마오쩌둥, 도요토미 히데요시, 스탈린, 이토 히로부미, 무솔리니 같은 역사 속에서 악마로 취급받는 인물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변호하면 죽일 듯이 매장시키는 문화였다.


나는 이 글에서 그런 이들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그들이 "악"에 가까운 행위를 저지른 면이 없잖아 있는 것은 사실이고 어찌 되었건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런데 과연 사회에서 어린 애들에게 본받아야 할 위인이라고 가르치며 과는 가린 채 일방적인 미화만 하는 이른바 '위인전' 속 위인들은 과연 정녕 전 인류가 추앙할 만큼의 훌륭한 자들이었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위인을 가르친다는 어른들은 그런 걸 고려한 적이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에서 악인으로 평가받는 자들을 미화하는게 아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2차대전을 일으켰으며 스탈린 역시 대숙청의 책임이 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과 문혁이라는 참사를 일으켰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합의 주역이었으며 무솔리니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무능한 멍청이인데다가 거꾸로 매달려 죽기까지 한 그냥 정치인보다 코미디언이 잘 어울린다는 그들의 말이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따진다면 존경할 인물이 대체 누가 있냐고. 누구나 털어서 먼지는 나오는 법이며 위인전에 실린 위인들이라고 깨끗한 건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성역인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안중근은 러일전쟁을 찬성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임으로써 한일병합을 가속화시켰으며 김좌진은 신민부 시절 북만주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강도질과 테러를 일삼았다. 링컨?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평가받지만 신문 300여 개를 통폐합시키고 인디언 300명을 학살한 오늘날의 기준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였다. 처칠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에 한국 독립을 반대했으며 마가렛 대처는 여성 정치가였음에도 기업의 이권만을 보장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지옥과 혹사를 선사한, 노조 입장에서는 "악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콜럼버스는 그의 업적인 신대륙 발견 덕분에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수천만에 달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구가 백인들에게 학살당했다. 마틴 루터킹은 뒤에서 사생활이 복잡한 여자관계로 얽혀있는 등 경쟁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엑스만큼 청렴하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에게 악인으로 평가받는 이들도 과만 있지는 않다. 가령 히틀러는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 당대 유럽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정치가였던 만큼 베르사유 조약과 대공황으로 주저 앉은 독일을 끌어올리고 라인란트 재무장을 하여 다시 원상 복구 시켰으며 스탈린은 농업 후진국에 불과하던 소련은 1930년대 동안 엄청난 속도로 공업화 시켰다. 마오쩌둥도 대약진과 문혁이라는 과오가 있지만 간체자를 도입해 문맹 문제를 해결하고 과정이 비록 폭력적이었지만 몇천년 간 이어져오던 봉건적 악습 및 소작제를 폐지시켰다.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아시아 최초 근대 헌법을 발표한 사람이고 무솔리니는 전쟁 지휘에서 무능해서 그렇지 경제는 꽤했다. 이처럼 역사 속의 악인들도 굳이 미화하거나 재평가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약소한 공 만큼은 인정해줄 방안은 많다.


이처럼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나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라도 숨겨진 악행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히틀러와 마오쩌둥, 이토 히로부미 같은 악인들을 존경할 이유가 없다면 일반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위인으로 떠받들어지는 자들도 무조건적으로 존경받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홀로코스트로 수백만을 학살한 히틀러와 대약진, 문혁을 벌인 마오쩌둥은 절대악이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부분의 인디언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한 신대륙 개척자 콜럼버스와 "위선자" 링컨은 절대선인가?


그리고 김구도 마찬가지다. 그의 독립운동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분명 그는 이승만, 여운형, 박헌영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2010년대 이전까지 그 역시 위인이자 성역이었다. 지만원이라는 극우 논객이 빈 라덴에 비유한 건 물론 개헛소리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구가 무조건적으로 영웅으로 떠받들 사람도 아니라는 것. 국제공산당 자금 사건에서 김구는 코민테른의 자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김립을 죽이고 안중근의 아들이 친일 행각을 하자 죽이려 했다. 또 해방 정국에서는 백색 테러 조직인 백의사, 서북청년단에 일정 부분 관여하며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의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구가 친일파를 기용해 민족반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이승만과 달리 그가 지도자였으면 친일파를 적극 단죄했을 거라는 의견이 있는데 해방 정국에서 김구를 후원하던 대표 인사는 <조선일보>의 사장 방응모와 친일로 전향한 소설가 춘원 이광수였다.


위인전식으로 역사적 인물에 접근하는게 물론 흥미 면에서 좋을 수도 있다. 삼국지식 영웅사관 서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멋있다는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사관의 신봉은 결국 역사적 인물을 다각도에서 못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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