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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l 19. 202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지는 철학적 함의

에볼라와 슈미트의 근대 문명에 대한 도전

https://youtu.be/8U610ah6rz8?si=VHdee7zP7kbiC51I

비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글은 전황도, 원인도, 외교적 사정도 아닌 러우전쟁이 가지고 있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나머지 각론적 요소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으로 다뤘고 나 역시 다룰 만큼 많이 다뤘으니 말이다. 그리고 각론적 요소들은 앞으로의 정세에 따라 상황이 바뀌면 평가가 변화할 요소가 크며 이것"만" 본다는 것은 사건을 직시함에 있어서 "줄기"가 아닌 "잎사귀"만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내걸고 있는 러우전쟁의 사상적 배경을 고찰해볼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러우전쟁에서 우리가 러시아 측 입장을 들을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다극 체제라는 것이다. 그 다극 체제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히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러중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게 빠졌다.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다극 체제의 중요 요소로써 이걸 꼽았다. 그건 바로 주권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세력균형을 이룬다는 얘기였다.


Sovereignty, 주권이라는 영단어다. 이 말은 16~17세기 유럽의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탄생한 정치적, 법적 개념이다. 국제정치학 분야에서는 개별 국가의 "주권"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부른다. 주권 개념은 피 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을 종식하고 영토 내의 배타적 지배권과 대외적 독립을 확립한 주권 국가의 탄생과 불가분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권론을 체계적으로 세워 전근대적 공법론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주장했던 독일 법학자가 바로 카를 슈미트라는 자다.

오른쪽이 카를 슈미트. 그는 법학자로써 전통적 보수주의자였고 정치의 본질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한 이였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말한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써 평시의 현행법 질서 바깥에 있으면서도 헌법이 일괄적으로 효력 정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기에 현행법 질서 내부에 있다고.  국내 정치 외에도 국제정치에도 적용하자면 근대의 주권이라는 개념은 신학의 논리를 차용함으로써 성립 가능한 것이다. 주권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하는 베스트팔렌 체제는 따라서 자유주의 질서 속의 국제법 논리가 아닌 각 세력들의 주권에 기반해 느슨한 제국을 상기시키는 광역질서 구축하는게 베스트팔렌 체제라 불리는 주권 국가 중심의 질서인 셈이다.


따라서 이번 전쟁을 비롯해 러시아의 지정학적 목표는 단순히 노보로시야의 영유권을 확보하고 나토에 대항해 제정 러시아 시절의 영토 확장에 야욕을 보이는게 아니라 전세계의 강대국들은 지정학적인 조건 하에 특정 지역을 지배해야 하고 이를 통하여 각국은 상호 간에 견제를 하여 큰 분쟁을 줄이고 각자도생 하게 하는 다극 체제, 즉 국제법이 발전하여 서구의 해양 질서에 의해 주도되기 이전의 시대의 질서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해양 질서란 구체적인 공간도 없는 바다이기에 땅에 뿌리 박은 유럽 대륙 여러 국가들이 만들어낸 구체적 질서와는 서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한 세계 패권국이 존재하지 않는 채로 다극적으로 여러 국가들에 의한 공법 체제였던 20세기 이전의 국제질서, 그것이 그들의 목표다.


러우전쟁의 또 다른 함의는 바로 "근대성"이라는 20세기 이후 서구 사회를 지배해오던 관념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어느 정치 세력도 자본주의까지는 비판할 지언정 근대성은 건들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걸 건든 사상가가 있었다. 바로 푸틴의 책사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이다. 두긴은 철학 분야, 그것도 대륙 철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그리고 그는 앞서 언급한 슈미트의 전근대적 공법론을 주권 질서에 기반한 다극 체제로 현대 사회에 맞게 전환하여 러시아 정부의 명분으로 사용되기에 이르었고 마르틴 하이데거나 레벤스라움의 창시자 카를 하우스호퍼, 이반 일린, 레프 구밀료프 등도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두긴의 사상과 근대성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율리우스 에볼라다.

율리우스 에볼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로 서양인임에도 동양 사상과 불교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율리우스 에볼라는 무솔리니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줬던 원조 파시스트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에볼라는 무솔리니와 미래주의 운동이 근대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자 그들에 대한 지지를 거두었으며 파시즘에 대해 너무 급진적인 정도가 약하다고 비판할 정도로 그의 사상은 주류 파시즘 이상의 급진성을 보였다. 또 간혹 에볼라라는 인물을 근거로 두긴의 네오나치설로 엮으려 하는 이도 있는데 에볼라는 인종주의에 거부감을 표명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에볼라의 사상은 서양 우월적이라기 보단 반서구적 지향이었다.


에볼라는 그리스도교의 출현이 서구의 전통을 망가뜨렸다고 평한다. 그리스도교는 창조주나 원죄 같은 유대적 관념에 따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고 애초에 신성과 인간성을 공유했었던 신적, 영웅적 초인간이라는 전통세계의 세계관을 전복시켰다. 이로써 인간은 창조주의 은총에 기대며 그저 구원을 바라며 살아갈 뿐인 존재로써 열등하고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전통세계를 "실신" 상태에 빠뜨렸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중세의 기사도 정신. 에볼라는 이걸 그리스도교의 악영향 속에서도 지켜낸 전통적 가치라 평했다.

그러면서도 에볼라는 중세의 서구는 기사도라는 것을 내보였으며 전통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했다고 한다. 기사도와 제국적 이념 관계는 성직자와 가톨릭 교회의 관계와 같으며 "정신의 인종"이라는 나치의 "생물학적 인종"과 대비되는 관념론적 인종론으로써의 피의 순수성을 상징한다. 기사도는 북부-아리아의 요소가 로마세계를 정화하여 그리스도교의 "집합성"에 억눌렸던 본래의 "복합성"을 되살리는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수백년 간 벌어진 종교전쟁은 정치의 세속화로 이어졌으며 "초월적 실재"에 대한 믿음은 점차 사라져갔기에 에볼라는 서구가 회생하는 길은 새롭게 통일된 유럽의 의식 속에서 전통적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전통적 신앙은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인 서구의 가톨릭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에 대해 돈바스 주민들을 해방시키 위한다는 특별군사작전을 내걸었을 때 우크라이나 나치의 배후로써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를 지목, 비판하며 두긴이 에볼라의 사상을 인용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이념전쟁은 서구 사회는 타락했으며 러시아가 최후의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라 선전하고 있다. 에볼라가 계몽주의 이후의 진보적 사관을 거부하고 퇴보의 단계에서 새로운 시작을 바라본 것처럼 러시아 역시 인권, 자유를 명분으로 내거는 미국의 전쟁과는 달리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합의라는 그동안 전 세계 논의의 장의 성역이었던 주제를 향해 칼을 겨눔으로써 미국을 넘어 근대 유산들을 부정, 전근대적 공법론과 반계몽주의에 기반하여 전통주의적 신질서를 구축하겠다고 이번 전쟁을 통해 사실상 선언한 것이다.


이것이 곧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철학, 사상적인 배경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서구는 반서구 세계에 비해 도덕적 우위에 있었는데 자유와 인권, 인명에 대한 보호는 그들이 항상 내세웠었고 지금도 주장하는 명분이었다. 물론 미국이 저질렀던 군사적 개입들이 명분 만큼 깨끗하지도 못했고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었지만 어쨌든 자기네들은 반서구 국가와는 달리 무력으로 국경선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한 것도 정당성 명분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정작 서구는 자기네들의 근간인 자유와 인권 해석이 제대로 합의가 되지 않았으며 바이든은 사회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와 인권에 대한 해석을 무리하게 강조하였다. 결국 실제로 카타르 월드컵의 성소수자 문제는 서구 최대의 자산인 인권이 선망과 반발을 동시에 불러오는 양날의 검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왔고 러시아와 두긴은 이 틈으로 서구 사회가 스스로 상처입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알렉산드르 두긴 저, 이원복 편역,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2000

카를 슈미트, <정치신학: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 그린비, 2010

에른스트 윙거 외, <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 글항아리, 2020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살림, 2012

오오타게 코지, <정전과 내전: 카를 슈미트의 국제질서사상>, 산지니, 2020

곽차섭, <율리우스 에볼라와 근대세계에 대한 반란 -파시즘과 관련성을 생각하며->,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51, 2004

강지언,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와 근대 일본 선>,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20

김항, <제국 일본의 사상>,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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