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슨 Aug 19. 2023

중국은 절대 대만을 포기할 수 없다

여러가지 쟁점으로 보는 오늘날 양안관계

https://youtu.be/GQ6o1SIH1rQ

대만 문제가 2021년을 기점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게다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지정학적 대격변이 예고되고 그해에 미국 국회의장인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며 양안관계는 미중 패권경쟁의 일부로 편입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쟁점이 되는 이슈들은 무엇인가? 시사기획 창 "타이완 워게임" 편을 보고 갑자기 삘 받아서 쓴 글 이지만 그래도 양안관계 쟁점들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쓰게 되었다.

쟁점 1: 중국은 대화를 통한 양안통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아예 노력을 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장제스 사후 아들 장징궈와 계속 주기적으로 평화 협상을 해온 결과 중국은 대만 국민당과 1992 합의를 체결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합의했다. 그러나 리덩후이가 집권한 이래 3차 대만해협 위기가 벌어지며 무산되었다. 그때 당시 다행히 전쟁까지는 안갔지만 아무래도 한동안 관계는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반공vs민주화의 구도인 대만 정치는 중국 대륙vs타이완 독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중국은 1992 합의를 비롯해 2010년 마잉주 총통과 ECFA를 맺으며 3차 국공합작 등을 논의하며 관계를 발전시켰다. 중국은 이를 통해 대만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자 하였고 대만의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걸 통해 중 감정을 없애는 것과 덤으로 중국 대륙의 시장에 종속되게 만들고자 하였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각 지방 정부는 자체 예산으로 많은 인민들을 타이완으로 관광 보냈으며 농산물, 수산물, 공업 제품에 관세들을 없앰으로써 대만 기업들이 혜택을 보게 해 그들을 친중 세력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대만의 민진당 정권, 특히 차이잉원이라는 강성 반중 정치인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물론 차이잉원은 대놓고 독립을 선언하지 못했지만 미중관계의 균열을 이용해 미국을 끌여들여 들여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국민당은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들이고 스스로 중화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민진당은 반대로 원래 살던 내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타이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중국 본토와 사이가 좋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은 2019년 홍콩 시위였다. 여기서 중국 공산당이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고 대놓고 일국양제를 부정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화로 평화통일을 추구했던 사람들에게조차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콩 시위는 물론 진압되었고 홍콩 보안법이 제정됨에 따라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으로 이는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식 통일에 대한 대만 사람의 의문과 반감만을 키우는 결과도 생겨났다.


완전히 틀어질대로 틀어진 양국은 대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중국은 대만으로부터 농산물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했고 단체 관광 패키지들도 닫아버렸다. 그리고 중국의 예상대로 대만 경제는 큰 타격은 입었다. 이제 대만이 백기를 들면 싸움은 끝났겠지만 문제는 그럴 수록 민진당의 지지만 높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만 대기업 위엔동 그룹의 중국 법인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3,650만 위안의 벌금을 받고 건설 부지를 다시 매립하는 사건이 2021년 11월 발생했고 이때 위엔동 그룹이 강경 독립파 쑤정창 행정원장 선거 지원을 위해 돈을 기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게 중국이 대만 선거에서 민진당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한 조치라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


결국 이렇게까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았고 중국 정부 역시 대화로 대만 정부와 양안 통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는다. 허우여우이가 총통이 된다 해도 온건친중파인데 무작정 중국과의 대화를 추진한다면 내성인들을 위시로 한 대만 독립 지지파들이 분명 거세게 일어날 것이고 친중파 마잉주 이후 강경 반중파 차이잉원이 취임했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거기다가 국민당식 친중은 중국으로의 흡수통일을 지향하는게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의 국가 대 국가의 통합인 만큼 국민당과 중국 본토 사이의 의견 충돌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2021년 한 여론조사에서 대만 국민의 10% 미만이 양안 통일에 찬성하는 걸로 나타났다.

쟁점 2: 중국은 무력 충돌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국도 순차적으로 내정 개입으로 대만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때로는 무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꺼내들고 있다. 2022년 10월 20차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대만 독립을 단호히 반대하고 견제한다"는 개정이 처음 포함되었는데 이때 당헌 결의안에는 "중국 특색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길을 견지하고 일국양제의 꾸준하고 장기적인 실천을 추진해야 조국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나와있었다. 기존까지는 대만이 단결해야 할 동포였다면 이제는 대만 인민의 희망이 경계해야 할 리스크가 된 것이다. 중국의 마샤오광 타이완 판공실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대만 통일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중국은 대만에게 말보다는 무력으로 협박하는 식의 외교가 차이잉원 2기 이후로 심해졌다. 시진핑은 2022년 11월 "군사훈련과 전쟁 준비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전군의 전력을 전투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CCTV 뉴스는 시진핑 직함 뒤에 "군사위원회 합동 총사령관"을 추가했다. 이어서 시진핑은 중앙군사위원회 합동작전사령부를 시찰하며 군사 훈련과 전쟁 준비의 강화를 주문했다. 당장 2020년도에 중국은 13차례의 해상 훈련을 진행했고 2021년에는 20회 가까이 진행할 정도였다.


이미 2021년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은 대만 통일을 완성하고 그 어떠한 독립 시도도 분쇄해버릴 것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외부의 개입에는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했으며 만약 그들이 개입할 시에는 14억이 넘는 중국인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 선포했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첫번째 100년과 두번째 100년 사이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한다는 거힌데 첫번째 100년은 다들 알다시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또 하나의 100주년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인데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시진핑의 최종적인 목표는 중국몽으로 2000년 백서와는 달리 오늘날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평화 통일을 추구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 하였다. 더욱이 2021년 대만 국민의 10%  미만만이 양안통일에 찬성하기에 협상만으로 중국 공산당이 대만과 잘 풀어서 통일에 이룬다는 발상은 참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서 행동이 다르게 나오겠지만 1996년 대만해협 위기 같은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진다면 중국이 먼저 양보하고 물러서는 일은 아마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중국군 해군육전대는 공세형 전력으로서 재해권 확보를 전제로 전선을 다변화시키고 신속하게 병력을 배치시킬 수 있는 유용한 병력으로서, 이는 지역위수 대신 일부 병력을 더욱 정예화하고 공세적 작전에 적극 투입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즉,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대만,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공격의지가 느껴지는데, 이는 현 동중국해 갈등과 중국의 서해에 대한 해군운용, 항공모함 증축등에 연계 되어있다. 육전대 증강의 축은 타 야전군 병력을 해체,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일부 야전군 병력과 특수전여단 병력을 육전대에 통합시키는 형식이다. 현재 5만 명까지 확대된 상황이며 최종적으로 10만 명이 달성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그들은 주변국 어디에나 상륙할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흐름들로 보았을 때 중국은 대만을 향해 발톱을 대놓고 드러내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해군육전대를 크게 키우는 것 또한 중국군이 연안 방어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하여 만약의 상황에 대만 본토로 상륙할 준비까지도 겸하고 있는 것이라 봐야 한다. 실제로 아마 대만 침공 시에 공강군이 먼저 공수강하하여 침투, 대만 군사시설들을 마비시킨 후에 해군육전대가 상륙하여 점령하고 뒤를 이어 육군들이 들어오는 식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중국의 남중국해 공략의 최전방 공격부대인 만큼 이게 10만명 수준으로 확대된다는 것은 사실상 공격 의지가 있다고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쟁점 3: 중국 역사의 최악의 굴욕, 홍콩과 대만


이건 어디까지나 중국인들의 입장에서의 얘기지만 홍콩과 대만이 중국 공산당 중심의 본토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중국 역사상 최악의 굴욕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홍콩 시위의 진압은 중국 공산당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홍콩 시민들을 곤봉으로 때려죽인 사건일 것이고 대만에 중국이 무력을 통한 위협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은 그렇게 미국과 일본의 횡포를 비난하던 국가가 정작 본인들은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 그렇게나 대만과 홍콩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것은 중국 역사적 관점의 맥락에서도 이해해야 한다.


먼저 홍콩은 난징, 베이징 조약으로 중국 영토였던 것이 말 그대로 강탈당해 영국 식민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중국인들이 최대 치욕으로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인 아편전쟁 때문이었다. 아편전쟁은 서양 상인들이 비윤리적으로 마약 유통을 해서 자기들 나라 국민들의 대다수를 약쟁이로 만들어버리고 여기에 저항하니까 쳐들어와서 다 박살냈었던 사건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전리품이랍시고 영국이 홍콩을 떼어갔으니 더더욱 열 받을 것이다. 그렇게 100년 가까이 식민지로 두었다.


1997년 반환으로 마침내 중국은 홍콩을 돌려받았으나 문제는 일국양제라는 조건을 수용해야 했던 것. 중국인들은 전리품 취급으로 빼앗겼던 것을 되찾은 것이지만 문제는 이미 자유민주주의물을 먹은 홍콩 시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던 것이었다. 더욱이 서방 세계가 단체로 일국양제를 주장하니 중국 입장에서는 그걸 대놓고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근차근 잠식하다가 우산혁명, 홍콩 시위를 기점으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했으니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켜 반정부 세력들을 일망타진했던 것.


대만의 경우는 국민당을 대륙에서 대장정까지 가면서 그렇게 치고 박고 싸워서 마침내 이겼는데 걔네가 섬으로 도망쳐버렸고 당대 중국 공산당의 전력으로 대만 섬에 상륙이 불가능했었기에 통일을 앞두고 물 먹은 셈인거다. 대만 해협을 건너기엔 중국 공산당은 해군력이나 공군력이 극도로 빈약했고 진먼 포격전에서 기껏 상륙을 했지만 무장도 형편 없고 작전술도 개판이라 다 죽었다. 그리고 대만에게 "중국"이라는 이름도 빼앗겨 유엔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또 중국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대혼란을 겪을 동안 대만은 빠른 경제성장을 누렸고.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대만을 유엔에서 쫓아내고 자신들이 상임이사국 자리에 올랐다. 경제력도 개혁개방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이 중국과 수교를 맺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자신들과 관계를 맺는 국가들을 대만과 단교하게끔 하여 자신들이 "중화 문명"의 대표국으로 자리에 올랐다. 이제 중국은 대만에 꿇릴 것도 없다. 압도적으로 군사력도 강하고 경제적인 규모도 과거 자신들의 국토를 유린했던 일본마저도 능가해버렸기에 대만 같은 "소국"은 상대도 안될 터였다.


그런데 이 상황인데도 숙원 사업인 양안 통일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양안관계에 간섭하는 서방 세계 때문이었다. 난징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자신들이 제국으로서 누렸었던 권리들을 빼앗아갔던 그들이 이제는 20세기에 국토를 침략했다가 패망한 일본과 손잡고 양안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게 있어서 대만은 그저 내정 문제다. 나라 대 나라로써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변방의 문제이기에 해결하는 것도 중화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이어야지, 감히 서방 세계나 일본이 관여하는 건 도저히 납득을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양안관계나 홍콩 문제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논리는 외부자들은 내정에 간섭하지 마라는 것이다. 그렇게 중국인들이 격렬하게 대만과 홍콩 문제를 신경쓰면서, 그것도 서방 세계나 일본과의 충돌을 불사하면서까지 강경하게 나아가는 것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충돌하여 그들로부터 공격받은 적이 있었던 우리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과거 제국의 상실로 오랜 고통을 겪었던 중국인들, 최소한 그들의 입장으로만 보자면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발작버튼인 셈이다.

쟁점 4: 해양력, 소수민족적 관점에서의 대만의 중요성


위에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대만, 더 나아가 홍콩에 대한 집착을 다뤘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영토의 통일성 수호"라는 중국 정부의 논리 형성 과정에 대한 것이고 진짜 대만이 중국에게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인데 대만이 만약 중국과는 독립된 주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얻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들은 자연스럽게 타국과 외교상 협력관계나 동맹을 추구하는게 자유로워질텐데 만약 이게 유사시 국제사회의 집단안보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대만 정부의 요청으로 평시부터 외국군의 주둔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참고로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의 거리는 불과 180km다.


소수민족 문제도 위험하다. 중국에는 한족 제외 55개의 소수민족들이 있는데 물론 숫자로는 8.4% 밖에 안된다. 그러나 이들의 거주지는 중국 전체 영토의 64%이며 2만 2,000km에 달하는 중국의 육지국경선 가운데 90%인 1만 9,000km가 소수민족 거주지역이다. 아예 국경지대의 경우 2,200만 인구의 절반이 소수민족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조선족, 몽골족,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타지크족 등 중국 인접국가에도 다수 거주하는 과계민족(跨界民族)으로서 만약 독립 사태 발생시 내부분열은 물론이고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가운데서도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은 한족과는 문화 자체긴 아예 틀리기에 대놓고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간간히 무력충돌이 발생하며 중국 당국은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대만의 분리를 경계하는 것 또한 그 연장선상이며 만약 대만이 중국에게서 분리될 경우에는 자국 내 소수민족 분리 독립 움직임을 정당화하는 직간접적 파급효과를 일으켜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해양진출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대만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인데 중국은 기본적으로 세계 3위의 영토와 2만km의 육지 국경선과 14개국과의 국경을 접하는 대륙국가이다. 하지만 동시에 서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연결되는 1만 8,000km의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도서지역까지 넓히면 3만 2,000km다. 또 6,000개에 달하는 섬들만으로는 8만 제곱 킬로미터이다. 이처럼 중국에게 해양이란 대륙에서의 패권을 넘어 더욱 큰 전세계로의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거대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대외무역, 국내소비, 산업생산 등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탱되는 구조상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해 에너지자원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중이다. 이미 중국의 에너지자원 소비량은 전세계의 10%대 이상을 꾸준히 차지하는 중이고 석유 의존도도 상당히 높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 자원들은 대부분 해양 수송로를 통해 무역항에 운송되는데 실제로 중국 대외무역의 85% 이상은 해상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국 경제를 주도하는 신흥 대도시들의 상당수는 동중국해, 남중국해와 인접하는 연해도시(沿海都市)다. 홍콩과 상하이는 국제적인 금융 도시이며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특구로 지정된 곳, 특히 광둥 성의 선전, 주하이 푸젠 성의 샤먼 등이 연안 도시다. 중국 전체 인구의 41%, 도시의 51%, GDP의 70%, 외국인 직접투자의 84%, 수출활동의 90%가 해안선 200km 이내의 연해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즉 이 지역들이 베이징 만큼 중요한 우선적인 방어 대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륙국가 겸 해양국가인 지리적 특성과 대외 무역, 연안 지역에 위치한 주요 대도시의 위치상 중국에게 해양력이란 가치가 개혁개방 이후 더더욱 높아진 상황이며 이 점에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길목 역할을 하는 대만은 반드시 통제 하에 두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장악이라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쟁점 5: 대만군은 어떻게 방어전략을 구상했을까?


대만군은 원래는 대륙수복을 위해 설계된 조직인지라 상당히 공세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장제스 시절인 1950~1960년대에는 중국 대륙으로의 상륙을 위한 구조로 군을 개편했으며 진먼, 마주다오에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하기도 했었다. 장징궈 시기에는 공수일체로 전환해, 공격과 방어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개편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리덩후이 총통이 본토수복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면서 선제적인 작전보다는 전적으로 방어 위주 군사전략을 개발했고 그 결과가 수세방위 전략이었다.


수세방위 전략은 "방위고수, 유효억지"로 구성되는데 대만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반드시 방어하겠다는 것에 있다. 그 중 유효억지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도와 의지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군사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으로 "방위"를 "전쟁 억지"보다 앞서 제시한 것은 이전보다 방어적인 성격으로 군사전략을 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지구, 전술속결"은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침공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 억지태세를 유지하는가 하면서 동시에 단기적으로 전쟁 억지가 실패할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중국의 침공을 격퇴한다는 의미다.


수세방위 전략은 총 4단계에서 실천되는데 1단계는 진먼, 마주다오를 비롯한 전방 도서지역에서 중국 침공을 저지하고, 제2단계는 대만 해협의 제해 및 제공권을 확보, 제3단계는 중국군의 연안상륙을 저지하고 제압하며 제4단계에 이르어 궁극적으로 침공 자체를 격퇴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해, 제공권 확보와 상륙저지인데 이를 위해 1990년대부터 <10개년 병력 정예화, 간소화 방안>을 발표해 과거의 점령, 상륙 위주의 공세 전략을 포기하고 신속대응 능력이 뛰어난 해공군과 지상 기동부대를 주축으로 정예화 부대 건설 프로젝트에 돌입해 대규모 군 병력 감축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199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45만 3,000명에 달했던 대만군의 규모는 2001년까지 38만 5,000명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육군은 2000년대 초중반에는 20만명 규모를 유지했으나 현재는 2020년 기준 10만 가까이로 떨어진 상황이며 한 때 미 해병대에 이어 세계 2위의 숫적 규모였던 대만 해군육전대도 1만 5,000명까지 감축되었다. 뭐 수세 방위 전략을 위해서라면 어느정도 소수 정예화를 하는게 좋을 것이다....만 이게 대만의 상황을 보면 소수 정예화를 시도한다고 군사력이 개선될 수가 없다.


우선 무기 획득 경로 자체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중소기업형 경제구조는 중공업, 더 나아가 방위산업 육성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여건이라 독자 개발 무기 종류부터 제한되어 있기에 해공군 주력 무기 중 대만 내에서 생산된 것은 청궁급 호위함, 징궈호 전폭기 정도가 전부다. 외국으로부터 받기에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번번이 실패하였는데 일례로 1980년대 말부터 1992년 사이 6척의 라파예트급 호위함, 60대의 미라주-2000 전투기를 대만에 판매했던 프랑스는 중국의 압력에 못이겨서 1994년 1월, 중국과의 공동성명에서 더 이상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진당과 국민당의 정치적 정쟁은 실제로도 대만 군사력 약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11% 이상의 국방비 증대를 해온 중국과 달리 대만의 국방비는 3차 대만해협 위기 직전 리덩후이 정권 당시 1994년 98억 달러에서 가장 약화되었던 시기인 마잉주 정권 시기인 2011년 100억 달러였으니 환율 변동까지 고려해도 사실상 감소한 수준이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완전 참담한 게 마잉주 정권에서 차이잉원으로 바뀌는 시기긴 하지만 국방비의 70% 이상이 경상운영비로 지출되고 있고 첨단 방위산업 기술 연구에는 25% 미만만 투자된다. 그래도 90년대 기준으론 대만의 국방비 지출은 결코 중국에 뒤지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저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에 이르었다.


다만 최근에는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바이든이 취임하고 M109A6 팔라딘 자주포 40기의 대만으로의 판매가 허가된 것을 시작으로 하이마스도 구매 계약을 맺었다. 또 M1A2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를 주문하고 M60A3 전차 460대의 업그레이드도 주문했다. 공군에 있어서는 트럼프 당시 F-16V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하이마스는 2027년에야 인도될 예정이고 에이브람스 전차는 대만보다 우크라이나에 먼저 인도되었다. F-16V는 추락사고까지 났고. 린잉유 교수는 대만의 미국제 무기 도입의 관건은 미국의 군사 정보 통제 시스템에 연동시킬 수 있느냐인 것이라 지적했다.


무엇보다 중국이 난징군구, 지난군구, 광저우군구 일부 부대를 중심으로 SRBM 둥펑 탄도미사일을 대만 해협 부근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대만 영토의 대부분을 사정권 안에 포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만은 수세방위 전략을 하며 침공을 격퇴한다고 선언한 것이 무색하게 대(對)항공기 요격 임무로만 지대공 미사일을 설계한 탓에 1,000기가 넘는 중국 탄도미사일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기란 쉽지 않다. 이를 타개하려면 대만군이 전투기로 중국 영토를 겨냥한 지상 공격임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분명 F-16A/B, 징궈호는 사거리 약 100km의 공대함미사일이나 정밀 유도폭탄이 있지만 정작 중국은 지대공미사일과 방공 레이더로 무장한 거대한 지상 방공망을 자국 내 구축해놨는데다가 중국 공군 또한 맞대응으로 490대 이상의 항공 전력이 동원 가능한 상황이니 대만군에게는 유사시 상황이 상당히 암울한 셈.


그래서 대만이 유사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수단은 미사일 뿐이다. 600~1,200km의 슝펑-2E는 상하이, 광둥, 저장 등 중국 대륙 중심지를 타격 범위에 두고 있고 윈펑은 사거리가 2,000km라 베이징도 조준 가능하다. 대공 방어 체계는 고고도의 텐궁-3, 중고도의 호크 미사일, 야전 저고도의 FIM-92 스팅어 미사일로 구성되의 있는데 여기에 더해 트럼프 시절부터 패트리어트-3 미사일이나 하푼,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미사일까지 지원 계약이 체결되었다. 대만 국방부가 추진 중인 AGM-158 공대지 미사일의 경우는 만약 도입된다면1,000km까지도 노릴 수 있고 무엇보다 F-16에도 탑재가 가능하다. 2022년 4월 대만 국방부는 연간 미사일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것이여 사거리 1,000~1,200km의 슝성의 양산을 앞두고 있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대만의 대공 미사일 장비들은 구식 사이드 와인더를 지대공으로 개조하거나 견착식으로 개발된 스팅어 미사일을 지지대나 차량에 올려놓은 수준에 불과한데다가 대만군이 유사시에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중국 공군 기지에 거점을 타격해 항공기 운용을 방해하는 것 뿐이다. 대만의 미사일 전력은 중국에 비해 우월한 것도 아닌데다가 서로 똑같이 피해를 맞교한한다 쳐도 영토가 넓고 항공 기지가 많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참고로 CSIS 워게임 결과는 중국이   대만에 수일 내 1만 발의 미사일을 퍼부울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나와있다.

대만 독립파 상당수가 일뽕인거야 워낙 유명한 사실이니...

쟁점 6: 그래서 대만은 독립할 것인가?


대만 대륙위원회의 여론조사 결과 90%의 국민이 일국양제를 반대하고 75%가 홍콩 시위 진압 중단 촉구를 지지했다. 또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의 조사에서도 "하나의 중국"에 합의한 1992 합의에 대해서 응답자의 74.9%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러한 경향은 차이잉원 집권 이래 계심각해져갔던 문제였다. 양안관계 사이가 급속도로 균열되고 밖에서는 미중 패권경쟁이 대만 정치의 흐름에 개입하게 되었기에 대만의 반중 감정은 심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민당도 사실 친중이지만 중국 공산당으로의 합병을 무조건 지지하진 않는다. 대신 "삼민주의에 의한 통일"을 내세워서 중국이 대만을 만일 합병하더라도 중국이 삼민주의를 수용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즉 국가체제로서는 중국으로 흡수되지만 이념만 삼민주의면 괜찮다는 것인데 중국 공산당이 다당제를 수용한다면 3차 국공합작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공산당에 의해 일관되게 무시되어 왔으며 국민당이 숟가락 얹을려고 저러는 것으로만 인식되었다.


민진당이 처음 집권한 것은 천수이볜 총통을 통해서였는데 여기서 대만 독립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천수이볜은 독립의 독자도 꺼내지 못했으며 이는 독립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날 중국이 대만을 총공격할 것이라 으름장 놓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말로만 협박하는게 아니라 본심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민진당도 차이잉원이 총통이 되었을 때조차 통일 이슈나 독립 이슈에 말 한마디도 못했던 것으로 그들의 속마음은 모르나 설령 그런 생각이 있어도 꺼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대로 70대에서는 거의 40%에 가까운 수가 외성인과 내성인 양쪽 중 하나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다고 답한 것과 달리 20대의 11.6%만이 자신이 확실한 대만독립파 혹은 중화주의자라고 답한 걸 보아 청년층 사이에서 중화사상이냐 대만 독립이냐의 정체성은 옅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대만의 독립 문제는 단순히 친중 대 반중,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제2세계 대 제1세계, 레드팀 대 블루팀, 반미 대 친미로만 볼 수 없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마무리하며: 서방 세계가 만들어낸 중국의 패권국화


위에서 쭉 썼던 내용들을 보니 대만이 중국에게 침공당할 것처럼 말한 듯한 느낌이 있어서 확실하게 해두자면 아직은 모른다고 할 수 있으며 전쟁이 안날 가능성도 꽤 크다. 우크라이나보다도 대만이 하청 분야나 반도체 분야에 상당 부분 진출하는 등 적어도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이나 전체적인 국력도 더 위인데다가 또 여기는 태평양으로 지나는 길목이라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미국이 무조건 직접 개입을 할 수 밖에 없는 지역이다. 한마디로 여긴 진짜 3차세계대전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인 셈.


중국이 성장하여 어느새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 위치까지 올랐으며 그들이 지정학적으로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내가 말하는 건 절대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를 긍정해서가 아니다. 나는 국제정치 문제에 있어서 설령 북한 같은 국가라고 할 지라도 선악이라는 개념을 들이미는 행위는 안좋아한다. 다만 미국과 자유세계가 안일하게 중국을 별 거 아니라고 취급한 사이 그들이 턱 밑으로 칼을 들이미는 순간까지 온 것이기에 양안관계 위기와 중국의 급부상은 본인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특히 1990년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 미국은 동유럽에서 NATO를 동진하면서도 정작 아시아에선 중국을 견제하지 않다가 그들이 일본을 제치고 GDP 2위로까지 올라왔고 지금 이 상황에 이르었다.


한동안 여야할 것 없이 군축하면서 무작정 대비를 안해온 대만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방위를 돕는 미국도 안일하기는 그지 없다. 오늘날 미국의 행보는 냉전에서 소련이 패한 이유인 태만함을 미국 역시 닮아가고 있으며 바이든은 이 상황에서도 자기가 중국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핑퐁 외교로 소련를 제어했듯이 사용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고 이미 노골적으로 대만, 한국, 일본 등을 노리고 있는 지경인데도 말이다. 이는 곧 미국의 20세기 후반 이래 대 아시아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의 증표로 남을 것이다.


참고 문헌:


김재엽, <중국 대만 군사력 균형과 동아시아 지역질서>, 북코리아, 2012

김재철, <중국의 외교전략과 국제질서>, 폴리테이아, 2007

팀 마샬, <지리의 힘: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사이, 2016

이성훈, <아태지역에서의 미중의 군사력 비교와 시사점: 타이완해협 위기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No. 171, 2022

권태영 외, <동북아 전략균형 2005>, 한국해양전략연구소, 2000

유철종,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영토분쟁>, 삼우사, 2006

길윤형 외,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 갈마바람, 2022

이춘근,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전략: 미중 충돌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 그리고 통일>, 김앤김북스, 2016

이두형, <중국공군>, GDC Media, 2022

이철, <이미 시작된 전쟁: 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 페이지2북스, 2023

문흥호, <대만문제와 양안관계>, 폴리테이아, 2007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저출산 해결책의 새로운 모델: 헝가리 가족정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