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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01. 2023

일본 자민당은 어떻게 장기집권에 성공했는가?

일본 정치에서 일당우위제는 어떻게 유지되었나?

https://youtu.be/_KoB4onMgQk?si=Mwj_x6GkPYp9R5y2

한국에서 자민당이라는 일본 정당에 대한 이미지는 21세기 이후로 계속 최악이었다. 시기상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부터 한일관계 갈등이 생기면서 조짐이 보이더니 아베 신조 이후부터는 계속 치고받고 싸우다가 이내 양국이 무역분쟁까지 하면서 일본 자민당은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외국 정당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내에서 자민당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얘기하면 토착왜구나 일뽕, 매국노 등으로 몰리는게 일상이고 제식갤 같은 진짜 극일뽕 커뮤니티가 아닌 이상 좌우할 것 없이 좋은 소리는 아마 못들을 것이다. 이는 지난 10~20년 간 한일관계 속 양국 국민정서가 극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며 요새는 반일 못지 않게 반중 감정도 심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아진 건 아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한국에서 자민당은 극우 정당이고 또 그런 극우 꼴통들을 도대체 왜 일본인들이 지지하는가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 종종 보인다. 물론 일본인의 자민당 지지 이유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분석들은 대체로 감정적인 시각에 편중되어 있는데 하나만 예로 들자면 일본인은 한국인과는 달리 시민혁명으로 정부를 끌어내린 적이 없어 국민성 자체가 지배자에 대해 복종적이라거나 어쨌든 일본 국민들은 개돼지라서 자민당 같은 극우 정당에 속아 넘어간다는 등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감정적인 분석으로는 진짜 이유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이번에 자민당이 진짜로 지지 기반이 그렇게 욕들어가면서도 여전히 강한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먼저 얘기할 것은 자민당이 한국 사회에서의 인식처럼 과연 극우 정당인가에 대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도되는 외국의 극우 정당이라 하면 프랑스의 국민연합, 독일의 AfD, 이탈리아의 형제들, 헝가리의 피데스, 폴란드의 법과 정의, 그리고 러시아의 자유민주당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 정당들이 진짜 극우 파시즘 성향인가는 둘째치고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바로 우파 포퓰리즘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쉽게 얘기하자면 대안우파 냄새가 나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민당 역시 21세기 이후로는 다소 우파 포퓰리즘의 영향을 받긴 했다. 왜냐면 역사수정주의 논란을 부추키는 정치적 발언들 자체가 새롭게 떠오르는 우경화 흐름에 맞춰서 일본 우익층을 만족시키기 위함인 측면도 있고 자민당이 지지율을 목적으로 반중, 반한 정서를 이용할 때도 종종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당이라는 정당은 서구의 대안우파들처럼 대중주의적이라기보단 엘리트주의, 관료주의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많이 완화되었음에도 여전한 상태다. 일단 1955년 자민당 창당 당시부터 관료 계층이나 재계와 유착하면서 출발한 정당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자민당은 대중 참여형보다는 엘리트들이 지분을 갖고 나눠서 운영하는 체제에 더 가깝다. 한마디로 서양의 대안우파와 일본의 자민당을 비교하기엔 자민당은 엘리트주의적인 성향과 체제 보수적 성향이 강하며 극우파 특유의 급진성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강하지 않다. 


당장 일본 극우의 대표라고 한국에서 평가받는 아베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일본 극우와는 달리 천황의 역할을 로마제국 황제처럼 헌법의 외부에 위치하면서 때로는 '무질서'를 예외로서 인정해 법 집행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법 초월자적인 주권자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아베의 천황관은 일본 극우 및 군국주의 세력들과는 달리 자신의 외조부이던 기시 노부스케에 더 가까운 셈인데 따라서 그는 천황이 일본 역사의 근간임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 속의 천황의 역할을 국가, 국민의 안녕을 기도하는 상징적인 존재로만 보고 있다. 결국 아베나 보수방류 세력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 또는 "보통국가"는 전통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일본 극우 특유의 군국주의적, 천황주권론 사고를 계승한다기보다는 그것을 단절시켰던 전후 고도성장기의 국가권력의 범주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체제 친화적이고 서양 대안우파들이나 극우와 같은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급진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자민당에 극우 성향의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들이 다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보면 애초에 자민당은 거대 정당이고 그렇기에 우파 빅텐트 안에 중도 성향부터 극우까지 다 모일 수 밖에 없는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다. 55년 체제 시기 자민당의 트레이드마크는 파벌 정치였고 이 시기부터 개헌 담론을 계승한 상대적으로 우파적이고 매파 성향이 강한 세이와 정책연구회부터 소득배증계획을 이어받은 분배 지향, 비둘기파적인 굉지회까지 광범위한 성향의 파벌들이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물론 21세기 이후로 주도권을 잡고 당내 개혁을 주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의 영향 탓에 파벌 정치가 많이 와해되고 우경화 흐름에 따라 파벌 정치보단 정당 정치가 강조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55년 체제의 유산인지 특정 파벌정당 독점이 방지되고 있어 빅텐트 정당으로서의 기능은 아직까진 살아있는 상태다. 그러니까 자민당 안에 극우 성향으로 보일 법한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존재하는 것이지, 당 자체는 극우 정당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자민당 내에서 주변국을 향한 극우 망언으로 욕먹는 정치인들도 국내 사안에서는 의외로 중도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한일관계 악화 국면에서 외무대신으로 임명된 모테기 도시미쓰는 독도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내보였지만 정작 그가 소속된 파벌은 보수본류 쪽인 헤이세이 연구회이고 아베 신조 역시 내셔널리즘 성향과 주변국과의 갈등 탓에 한국에서는 극우로 알려져 있지만 냉정히 보자면 집권기 실시한 정책 중에 자국 우선주의적 면모가 드러나긴 해도 특별히 극우적인 것은 없었다. 기시다 후미오는 오염수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가려지지만 확실하게 온건파는 맞다. 일본 정치계의 또 다른 의외의 모습이라면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혐오를 포퓰리즘에 이용하는 부분은 참정당이나 제일당 같은 곳만 빼면 생각보단 별로 없기도 하고 아이러하게도 혐한 시위를 규제하는 헤이트스피치 금지 조례를 제정하는데 앞장선 것은 보수 정당인 자민당과 유신회라는 것이고.


여기서부터는 자민당이 왜 장기집권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텐데 첫번째는 정책 기조의 유연성이다. 자민당은 미국 공화당과는 달리 이념적으로 선명한 시장주의 정책만을 고집하진 않고 있는데 일부 정치인들이 과격한 극우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지, 필요하다면 좌파적인 정책도 쓸 줄 아는 융통성과 실용성을 다 가지고 있고 이게 오랫동안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최저임금을 제도화하여 일본의 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다름아닌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의 기시 노부스케 총리였고 후임자인 이케다 하야토 총리가 추진한 10년 후 소득 2배 이상 목표로 하는 소득배증계획은 철저히 케인스주의적이었으며, 영국의 복지 국가 노선인 베버리지 계획을 모티브로 실행되었다. 노인의료 무료화 정책, 의료보험의 피부양자 급부 인상, 후생연금 급부액의 대폭적인 증가, 국민연금에 물가연동제의 도입, 고용보험제도 도입 등등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복지정책들은 모두 자민당 정권 하에서 시행되었는데 덕분에 자민당이 추구하던 노사협조 노선의 목표대로 제1야당인 사회당의 지지층인 산업 노동자들을 자민당으로 포섭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극우라 유명한 아베 전 총리 역시 국내 경제 정책에 좌파적인 요소를 끌어다 쓸 정도로 유연성은 있는 편이었다. 아베노믹스를 시행하면서 기업들의 법인세를 인하하고 규제 강도를 대폭 낮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기업에게 임금 인상을 계속 압박해서 결과적으로 아베 정권 시절 동안 일본에서 최저임금이 역대급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동시에 열혈 지지층인 넷우익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규모 이민 완화 정책도 펼쳤고 애초에 아베노믹스의 통화정책인 양적완화, 확장재정 기조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하고는 거리가 꽤 있다. 이처럼 일본 자민당은 역사적으로 국가 개입을 통해서라도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도를 제외하면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신자유주의자 총리라고 확실히 단언할 만한 인물은 분명 없었다.

자민당 몇몇 정치인들이 한국에 적대적인 발언을 하는 것과 별개로 외교적으로도 실용주의적 면모가 꽤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강경 보수 성향의 보수방류 계열 인사였지만 집권기에 가장 중요한 정책 기조로 뒀던게 바로 일소국교 회복이었고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시기에는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즉 기본적으로 친미 노선을 따르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진영 논리를 따르기 보다는 비교적 유연하게 실리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네마루 신이라는, 훗날 사가와규빈 스캔으로 부패 혐의가 발각되어 나가리 되는 자민당 거물 인사는 방북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대담을 가지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나 수교 등의 의제에 대해 논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두번째는 경제 성장 때문이다. 일본 경제사는 자민당이 장기집권한 탓에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는데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끈 세력과 그걸 붕괴시켜 잃어버린 20년을 걷게 한 세력 모두 자민당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거품경제라 불리던 1980년대의 최대 호황기도 자민당 집권기의 역사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 고도경제성장의 시작이던 소득배증계획을 이끈 총리 이케다 하야토, 토건국가화의 다나카 가쿠에이, 1980년대 호황기의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더 넓게 보면 자민당이 생기기 전이지만 어쨌든 뿌리라 할 수 있으며 전후 특수경기를 누리게 한 요시다 시게루까지 종합해보면 일본 현대경제사에서 자민당을 빼놓고 말하기란 매우 힘든 수준이 될 정도다.


물론 그 거품경제로 호황을 누리던 이면에는 플라자 합의로 엔고를 불러오고 이내 제조업과 부동산 시장이 박살나게 한 게 자민당 소속의 나카소네 내각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그걸 어느정도 복구한 것도 다름아닌 자민당이었다. 잃어버린 10년 시절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적극적으로 구조개혁 정책을 펼치며 많은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주요 은행들의 불량채권비율을 임기 중반까지 4.7%로 크게 줄이고 중앙정부의 재정 건전화를 성공시켰다. 잃어버린 20년 시기인 아베 정권기에는 말은 많았지만 어쨌거나 실물 경제 지표를 회복시키고 실업 문제를 개선시켰는데 확실히 자민당이 잃어버린 20년을 불러오긴 했어도 항상 그 뒷처리를 하는 건 야당이 아니라 자민당 본인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인 성과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다른 야당보다는 최소한 안정적으로 경제를 이끌 능력은 있다고 인식되는 점이 경제 문제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을 신뢰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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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당이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는 55년 체제의 사회당부터 90년대 야당 연정, 그리고 2009년에 집권해서 하토야마-간-노다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권까지 몇번 다룬 적 있고 글들은 대충 링크 걸어두는 걸로 대체할테니 관심 있으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그래도 짧게 설명하고 가자면 자민당이 썩어도 준치라며 계속 해먹는 건 야당의 총체적인 무능 탓이라는 거. 야당의 대표적인 노답짓을 몇개만 꼽자면 사회당은 당내 극좌 세력들이 사회주의 혁명 운운하며 복지 정책마저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거부하는 병크를 저질렀고 90년대 자민당 탈당파들이 주축인 일본신당, 신생당, 사키가케 등은 그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연정을 출발시켰지만 내분과 부패 사건 연루, 오자와 이치로의 X맨짓 등의 요소들로 인해 처참히 망했다. 2009년에 집권한 일본 민주당 역시 높은 지지율과 308석이라는 압도적인 중의원 의석으로 출발했지만 후텐마 기지 이전, 센카쿠 열도 충돌,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소비세 인상 논란 등의 악재에 무능한 대처를 보이다가 다음 선거에서 패하고 다시 정권을 넘겨줬다. 오늘날 입헌민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정당이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입헌민주당 같은 야당보다 청년층에서도 지지율이 더 높다. 왜냐하면 자민당이 더 진보적이고 입헌민주당 등이 더 보수적이라 받아들여지기 때문. 가령 스가 내각 시절 도장 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하자 디지털화에 가장 적극적인 반대 및 아날로그 행정을 제일 옹호하는 입장을 내보인 것은 보수정당인 자민당이나 유신회도 아니고 입헌민주당과 일본 공산당이었다. 참고로 이 입헌민주당이랑 일본 공산당의 주요 지지층은 최소한 50대 이상의 계층인 중년~노년층들이다.


여기서 야당들의 이미지가 구세대 정당이라는게 고착화되는 거고 자민당은 반사이익으로 혁신적인 아젠다를 내건다는 이미지를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명 자민당 지지율은 높을 때도 40% 선에 그치고 전국 비례대표 득표에서도 보통 30%대 수준인데 저렇게 일당우위처럼 할 수 있는 건 하나는 소선거구제 특성상의 지역 정치 카르텔 탓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율 조사에서 나머지 절반이 야당으로 가지 않고 무당층이 되기 때문인데 이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대안이 없기에 자민당을 찍거나, 그조차도 싫은 경우는 아예 무당층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외에도 자민당이 저렇게 일당우위제를 구축하고 권력을 독점할 수 있게 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지역 정치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였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전국시대와 막부시대를 거쳐오며 오랫동안 지방분권 사회에서 살았었고 지금까지 그 영향은 남아있어 지방별로 독자적인 문화가 각기 나뉘어 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여주인공 미츠하의 아버지가 이토모리 정장 선거에 나서고 현대화 작업을 주장하는 그의 노선에 보수적인 문화로 묶인 마을 주민들이 손가락질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만큼 일본의 지방 문화는 카르텔처럼 단단히 강하게 자리잡고 있고 아날로그식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지방 깡촌 이상으로 일본의 지방은 이웃집 주민만 찍어주는 문화가 강하다는 셈.


따라서 자민당은 창당 당시부터 농촌 지역에 대한 지지세 굳히기를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시정촌의 마을 이장부터 지자체장까지 대부분의 지역 유지들이 자민당과 결합하기에 이르었다. 특히 메이지 유신의 기반이 된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후신인 가고시마 현, 야마구치 현은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하고 오키나와 현 정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자민당의 지역 조직이 구축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 자민당이 비교적 힘을 막 쓰지는 못하는 오사카의 경우에는 일본 유신회라는 간사이 지역 정당의 존재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일본 자민당이 지방에서 지지를 받는 결정적인 원인 요소로 꼽히는 막대한 보조금 지원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메이지 유신 이래 당세 확장을 위한 지방 중시론은 기본 그 자체의 노선이긴 했다. 일본 정당정치의 시조인 하라 다카시 총리만 해도 지방의 사회간접자본을 확대시켜 지방 이익을 정교하게 배양해 균형발전스러운 정책을 하기도 했으며 물론 이는 철도, 도로 등 교통 인프라 정비가 우선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익 유도를 통한 지지층 확보로 입헌정우회의 당세 확장에 크게 도움되었다. 이때부터 일본 정치인들에게 지방 공공사업으로 지방 이익을 보호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게 표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졌고 이걸 통해서 적지 않은 이권(정치자금)을 획득 및 동시에 지역 후원회를 거점으로 표밭 관리를 위한 메커니즘 구축이 가능하였다.


후원회의 기원은 전후 일본에서 전통 사회가 붕괴하고 지방의 유력 명망가들에 의한 집표 능력이 더 이상 힘들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지역 유권자를 파악하고 관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사 선거 조직이었다. 이 후원회라는 조직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얼마 지나면 당내 정치파벌화, 사조직화가 진행되는데 그러면 유지를 정치자금이 엄청 소요된다. 이를 메꿀 방안으로 나온 것이 또 다른 후원회를 도쿄에 두고 개별기업체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는 것으로 대신 이들은 회원 명부에 등재되지 않는다. 그렇게 받는 정치자금은 좁게는 공공투자나 농어촌에 대한 보조금 등 정부예산 획득을 통한 지역배분, 또는 행정조처나 입법조처를 통해 상황에 따른 규제장벽의 신설  완화에 쓰이고 넓게 보면 지역구의 일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견학여행회나 강습회의, 회원 개개인의 관혼상제, 심지어는 자제들의 대학 진학이나 취업 주선까지에도 이익이 공여된다. 그리고 이렇게 마을과 지역구 정치인을 하나로 묶는 지방 카르텔을 만든 것의 가장 큰 원흉(?)은 "도로 정치"를 하며 일본 전국토를 토건국가로 만든 다나카 가쿠에이였다.

이로써 현재 자민당의 주요 지지기반 중 하나는 바로 정부에 쌀을 비싼 가격으로 파는 지방의 농민 계층이 되었고 시고쿠나 시마네현에서는 아예 입헌민주당 같은 야당들이 일본 공산당에게조차 밀리는 지경에 이르었다. 조금 더 분석해보면 일본 중의원 선거를 보면 자민당 지지율이 40%대에 미치기가 쉽지 않고 비례에서는 일당우위제 국가치고는 의외로 딸리지만 지역구 투표에서는 자민당 후보가 거의 압도적인 수준으로 표를 얻어 대부분의 의석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일본의 지방 정치 카르텔이 한국의 국민의힘의 TK 지역기반이나 민주당의 호남 지역기반 그 이상으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의미로는 위에서 설명한 다른 자민당의 장기집권 요소 만큼이나 숨겨진 결정적인 이유인 것.


이처럼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는 배경은 굉장히 복합적이며 단순히 일본인의 국민성이 이러네 저러네만으로 논하기에는 너무 단면적인 해석이다. 아무튼 글을 마무리 하기에 앞서 내 얘기를 종합해보자면 자민당의 빅텐트 정당 특유의 유연성, 경제성장 신화, 야당의 무능, 지역 카르텔 등의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자민당이 계속 집권해온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는데 문제는 국내 언론 대부분의 보도들의 방향성이 이런 복합적인 것에 맞춰지기 보단 반 자민-친 야당에만 포커스를 두다 보니 항상 결론이 단순히 일본 국민성에 대한 얘기로만 흘러가는게 안타까운 지점이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일본 정치 구조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했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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