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체스터의 시간을 거슬러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올리비아,
며칠 전 새벽, 번개처럼 떠올랐다.‘왜 그랬을까. 오산 이모님께 편지 한 통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오산 이모님은 아빠의 어머니 (올리비아의 친할머니) 생전에나, 그분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내게 ‘또 다른 어머니’다.
살면서 나를 믿어주고 넉넉한 사랑을 준 어른들 가운데, 그 맨 앞줄에 서 계셨던 분. 그러나 바쁘고 힘든 하루는 이모님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 하는데 혹은 엽서 한 장 보내야 하는데라는 찰나의 결심을 잘 지워버린다.
적어두지 않고, 새겨두지 않으면 실천은 늘 미뤄진다. 그래서 결심했다.
‘올해는 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라며. 이모님은 이메일이 없으시다. 새로운 기술을 마다하셔서가 아니다. 그저 단순한 삶의 방식을 택하시는 이모님의 일상 때문일 것이다.
이모님의 첫째 딸, 수산나 수녀님이 오랜 세월 세계 곳곳에서 선교하며 올리비아의 할머니께 보냈던 그 수많은 편지들—그 정성과 사랑을 아빠는 어릴 때부터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올해 아빠가 걸어가야 할 발자국이라고 느꼈다.
예전에 수산나 누나는 올리비아의 할머니에게 매달 두통정도의 편지를 그 먼 타국에서 보냈었다.
지금은 누나의 깨알 같은 편지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는 없구나.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에,
그리고 성장한 아빠의 가슴 깊은 곳에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그 글들의 정성이 곱게 살아가는 삶의 씨앗으로 자리 잡았으리라 생각을 하였단다.
수산나 누나는 예전에 페루에서 수녀님 생활을 할 때,
파이프에 귀를 기울이며 물이 흘러 올 때 그 소리를 듣고 모든 아이들이 함성을 지른다는 내용의
편지 내용을 쓴 적이 있어.
너무나도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아빠는 그 글이 생소했지만,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이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세상을 감사히 사는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처럼 이메일과 핸드폰이 보급이 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외방 선교회 수녀님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던 누나가 보내주던 편지를 받아보며, 아빠 역시도 어쩌면 내가 가야 할 길이 꼭 한국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이곳 영국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사랑하는 올리비아,
새해 첫날 새웠던 많은 다짐들 중 현실성이 없는 것 하나를 지우고, 그중 하나를 ‘편지 50통 쓰기’로 바꾸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수산나 수녀님 누나가 할머니에게 보냈던 희망과 감사의 메세지엿듯, 아빠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그때 아빠의 친구 상윤에게 카톡이 왔다.
“방금 집에 왔는데, 감동적인 카드가 도착해 있네. 고맙다. 봉근아 난 아무것도 못 보냈는데….”카드 한 장에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하며
내가 웃음의 이모티콘을 보내자,“정성이잖아.” 그가 답했다.
그 말이 마음을 울렸다.
정성은 느껴진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그리움이 묻고,
그것들이 탑처럼 쌓여
내면의 물결을 드러낸다.
그 정성의 양분만큼
기쁨의 열매도 커진다.
작년 드림노트(어딘가에서 보거나 들은 아름다운 문장 혹은 아빠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좋은 문체를 적어 내려간 노트)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즘 같아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정성’으로 사는 것 같다.
열정,
그리고 정성.
그 바탕의 근본은 사랑이겠지.
아빠는 사랑의 표현을 편지에 담고 싶구나.
올리비아,
사랑 없이 열정은 뜨거워지지 않고,
뜨겁지 않은 열정은 끓어오르지 않는다.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러하겠지…
한 해의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일,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일,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 모두 같은 뿌리란다.
사랑하는 올리비아,
인생은 ‘실천’으로 옮기는 그 순간, 나는 나를 더 깊이 알아간다.
아빠를 닮아 글쓰기를 좋아하는 너를 보니, 흐뭇하구나.
너의 그 작은 미소가 치체스터 밤하늘에 번졌다.
눈 감으니 더욱 그리운 사랑스러운 딸을 생각하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