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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 Dragon Apr 08. 2023

“괜찮지 않아도!”

올해도 KLPGA 정규투어 대회가 변함없이 개막했다. 매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들은 예선전에서 이미 절반 정도 탈락한다. 시즌 내내 탈락과 상금순위 변경의 반복이다.  연습과 많은 시간을 들이는 프로나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들에게 과연 골프가 주는 삶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골프 프로선수인 딸을 오랜 시간 곁에서 보아온 나는 늘 골프가 주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3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바로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준다     


골프는 스트레스를 참 많이 주는 스포츠다. 아마추어나 프로나 마찬가지다. 힘들고 어려운 스포츠다. 너무나 많은 요소가 적용된다. 기본 물론이고 동반자와 나의 심리상태, 심지어 그날의 기상과 지형 등등. 어제와도 다르고 이번홀과 다음홀도 다르다.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언젠가 프로선수 딸의 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니는 것을 캐디 아빠가 보더니 “지랄탄 같다”라고 자조적으로 푸념했다. 일부러 그렇게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님에도 하도 안되기에 하는 한탄의 말이었다. 지랄탄은 군대에서 포탄이 제대로 표적에 맞지 않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생이 그러하듯 골프도 변화무쌍하다. 지랄(?) 같은 스포츠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지난 샷(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 지금 샷(현재)’에 집중하며 더 중요한 다음 샷(미래)을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 마음을 비우고 침착성을 계속 유지하라고 한다.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가지라고 한다. 자신감을 잃으면 더 힘들어진다. 절망에 절지 말고 희의에 깊숙이 빠지기 전에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자존감도 회복해야 한다.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쉴 틈 없이 다가오는 또 다른 기회를 살리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말 것도 당부한다.


둘째, 실수보다 실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소중함도 일깨워 준다   

  

골프만큼 실수가 잦은 스포츠도 드물 것이다. 실수만큼 숫자로 표현되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완벽한 샷을 구사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바보처럼 하찮은 실수만 계속 반복한다. 누구나 실수하며 살아들 간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여보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모든 일이 늘 완전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별로 없음도 안다면, 쓸데없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풀이하는 어리석음은 좀 줄어들까.


왜 골프채가 14개나 되는지도 잘 이해해야 한다. 골프채를 다루는 주인인 내가 이들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실수를 최소화하고 만회하라는 것이다. 하도 많은 실수를 하기에 실수에 무덤덤해질 때까지 연습하고 그렇게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실수를 밥 먹듯이 한다. 잊을만하면 차량 범칙금이 날아온다. 또 과속한 모양이다. 앞으로도 실수는 계속하겠지만, 괜찮다. 아무리 내 마음대로 골프공이 날아가지 않아도 내 마음만은 내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듯이, 실수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실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골프다.

   

셋째, 때를 기다릴 줄 알게 해 준다    

 

안정된 골프 샷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세상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승하고 싶고,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딸도 프로 데뷔 11년 만에 정규투어에서 첫 우승을 했다. 나의 컨디션이 최상이고 주변 여건과 조건 또한 최적이라면 어느 날 불현듯 우승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단꿈은 더 달콤하고 찐하기 마련이다.    


“참아라! 참아라! 그리고 또 참아라!”라고 사관학교 생도 양성과정에서 선배대표 생도가 신입생도들에게 포효하듯 해주는 이 말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 기회는 또 찾아온다. 인생은 결국 기다림이다. 가끔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잘 안될 때도 있는 법. 위대한 선수들은 모두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 숱한 인내의 쓰디쓴 잔을 맛본 자만이 우승컵을 들 자격이 있다.

 

우수한 선수가 되려면 탁월한 운동 기술과 그 종목에 적합한 체력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운동 기술과 체력은 코치나 피트니스 클럽을 통해 습득할 수 있지만, 정신력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리 상담을 아무리 받아보아도 생각만큼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군대에서 신병들이 아무리 24시간 내내 혹독한 훈련을 받아도 하루아침에 진정한 군인정신이 몸에 배기는 쉽지 않다. 묵묵히 끈기 있게 연습하고 단련하는 것만이 그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성공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항상 수고로움과 어려움 그리고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삶의 주체자인 나는 늘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다. 때로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나 자신도 믿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너무 창피하여 자책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무시할 때도 있다.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도 필요하겠지만 내가 나를 먼저 보살펴야 한다. 애처로운 나를 따듯하게 도닥거려 주자. 오늘 비록 그토록 원했던 예선전에서 탈락했어도, 공무원 시험에서 또 불합격했어도, 동네 테니스대회 예선전에서 또 떨어졌어도.


그까짓 게 뭐라고. “괜찮아. 잘 될 거야”. 물론, 지금 내 마음은 그렇게 썩 "괜찮지 않다!" 억지로 괜찮다고 하는 위로때로는 부담이다. 그래도, 늘 봄이 다시 오듯 언젠가 내게도 따듯한 봄이 또 올 거다. 적어도 이렇게라도 스스로 위안하고 격려하지 않는다면, 냉소적이고 자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서   버텨내기 어렵다. 지독하게 내밀한 여명이 지나가고 나면 바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보자. 골프를 마치는 18홀쯤 되어서야 비로소 몸에서 불필요한 힘이 조금 빠지고 제대로 된 샷이 돌아오듯이, 매번 장애물에 봉착하고 실수가 반복되는 골프 같은 삶이지만 그래도 또 힘을 내어보자. 늘 희망을 품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골프가 우리 인생에 던져주는 진정한 가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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