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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Sep 01. 2023

말 잘 듣는 아이, 잘 안 듣는 아이

자신의 목소리, 취향을 지키는 아이 '피에르'


<코른느비두이가 어렸을 때>

<코른느비두이가 어렸을 때> 코른느 비두이가 어렸을 땐 예쁘고 똑똑하고 누구나가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그림책은 마갈리 보니올이 그림을 그리고 피에르 베르타랑이 글을 써 2022년 에콜데로와지르 출판사에서 펴낸 프랑스 그림책이다.   

   

코른느비두이는 마녀이다. 국을 안 먹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마침내 국을 들이마시게 한다. 그래서 코른느비두이 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먹기 싫은 국을 먹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아주 고약한 존재로 통한다. 마치 악마처럼 말이다. 때문에 마녀인 코른느비두이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을 지낸다. 코른느부두이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어린 코른느부두이는 공주였고, 아주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다.      


어린 코른느부두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특히 그의 부모인 왕과 왕비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어느 날 이모 크라크라의 초대를 받는다. 크라크라는 진짜 마녀였다. 크라크라는 어린 코른느비두이를 한 번도 못 봐서 보고 싶다는 핑계로 초대를 했는데, 사실상 마녀의 주술을 전수하고 싶은 속셈이 있다.      

코른느비두이의 엄마 아빠는 크리크라 이모의 초대를 받은 딸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코른느비두이가 너무나 가고 싶어 하니 초대를 허락한다. 크라크라는 어린 코른느비두이를 위해 국을 준비한다. 하필 왜 국일까. 코른느비두이는 국이 정말 싫다. 이모 크라크라는 국을 먹기 싫다고 하는 코른느비두이에게 딱 3 숟갈만 맛보라고 권한다. 코른느비두이는 정말 싫었지만, 딱 3 숟갈만 먹기로 한다. 아빠를 위해서 한 숟갈, 엄마를 위해서 두 번째 숟갈을 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모를 위해서 세 숟갈을 넘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래서 예쁘고 똑똑했던 어린 코른느비두이는 아이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두려움을 주는 마녀가 된다. 국을 안 먹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억지로 먹게 하는 존재가 된다.  


이 그림책 <코른느비두이가 어렸을 때> 는 그림책 <코른느비두이>의 후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림책 <코른느비두이>는 2003년에 발행된 남자아이 피에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피에르는 국을 정말 싫어해서 절대 먹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아빠가 ‘코른느부두이’ 이름을 불러 국을 억지로 먹게 해보려 해도 피에르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린 코른느비두이와 어린 피에르는 다르다. 

<코른느비두이> 이미 마녀가 된 코른느비두이는 어렸을 때의 모습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어린 피에르는 어른들의 말 잘 듣게 하려는 강제, 위협에 전혀 굴하지 않는다. 

     

코른느비두이는 모든 아이들을 두렵게 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아이들이 코른느비두이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이름만 들어도 결코 먹고 싶지 않은 국을 벌컥벌컥 들이켜게 되는 상태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른의 강제로 인해 아이 자신의 목소리, 선택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한 맛의 선택과 표현을 잃게 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감각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사람은 오감인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청각에 의해 맛을 구별하고 자신의 좋아하는 맛 그리고 싫어하는 맛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어린 코른느비누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국의 맛을 엄마, 아빠, 그리고 이모를 위해서 포기하고 먹는다. 코른느비두이는 왜 그랬을까?  

    

어린 코른느비두이는 편견이라고는 없다. 그러나 코른느비두이와는 다르게 그의 부모는 걱정이 많다. 부모는 그들의 걱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드러낸다. 부모는 코른느비두이에게 이른다. “이모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 이모의 초대에 가는 게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데... 이모를 언짢게 하지 마, 절대적으로 얌전히 행동해야 해. 왜냐면 이모는 정말 성격이 예민해서 격하기 쉽거든! ” 

어린 코른느비두이는 이모를 처음 만나러 간다. 부모의 걱정을 가득 담은 채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모 앞에서 꼭 얌전히 행동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아이들에겐 부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 중요하다. 부모의 표정 하나하나가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이 부모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부모들이 한탄을 하기도 하지만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성격이 예민하고 좀 특별하고 그래서 이모의 초대에 응하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서, 왜 이모 앞에서 얌전하라고 하는 걸까. 정말 헷갈리는 말이다.      


엄밀하게 말해 코른느비두이는 크라크라 이모의 마법의 희생냥이 되었다기보다는 그의 부모의 의지에 의해 마녀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상황에서 얌전해야 한다고 조언까지 한다. 

     

코른느비두이이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다. 반대로 피에르의 이야기인 그림책 <코른느비두이> 는 코른느비두이의 어릴 때의 이야기로 인해 돌에 눌린 듯 무거웠던 마음이 상쇄되는 듯하다. 피에르는 부모의 명령과 위협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 자신의 맛의 취향을 지킨다. 부모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것, 최고의 것을 주려고 한다. 좋은 것을 주는 과정 역시 중요한데, 강제와 위협으로 주는 게 얼마나 최고의 것이 될까? 더불어 고려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감각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들은 말 잘 듣는 아이를 좋아해서일까? 피에르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하다. 우리 아이가 코른느비두이처럼 자라길 바라는지 혹은 피에르처럼 자라길 바라는지 이 두 그림책을 보면 명확해질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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