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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Oct 03. 2023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여정

"가을이야, 작은 거위야!"

가을이야, 작은 거위야!


그림책 “가을이야, 작은 거위야!” 는 브리오니 메이 스미스, 엘리 우워드가 글을 공동으로 쓰고 브리오니 메이 스미스가 그림을 그렸다. 카트린 지베르가 프랑스어로 번역해 2022년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펴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 그림책은 작은 거위가 자연의 계절에 따른 변화를 느끼며 그 안에서 자신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은 거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수많은 형용사들을 사용해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세하고 시적인 묘사는 작은 거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성장하는 한 단계 한 단계에 독자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동참하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마치 모든 작은 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하다. 작은 거위 역시 작가들의 서술방식 리듬에 맞춰 더욱더 도전을 받는 듯하다.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작은 거위의 정체성을 찾아 따라가는 일이 감동적이고 벅차다. 


모든 초목은 여름 내내 꽃을 피우고, 작은 거위는 기운이 세지고 통통해졌어.  
“아.. 행복해 그리고 세상은 무척 아름다워! 작은 거위는 물장구를 치며 생각했어요” 
나뭇잎은 점점 오렌지와 황금빛으로 물들고, 공기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채워졌어요.

나뭇잎사이로 바람이 불어 형형 색들이 춤을 추는 가을의 어느 날이었어요. 
호숫가에 놀러 온 작은 거위는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처럼 심한 고통을 느꼈어요.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잖아” 


작은 거위는 자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이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라도 내가 모를 수 있다. 작은 거위는 먼저 계절의 변화로 인한 자신의 변화를 감지한다. 자연은 늘 우리를 자극한다. 늘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을 건넨다. 예를 들면, 계절의 변화, 자연재해, 작은 나뭇잎은 흔드는 실바람, 안개비조차도. 날마다의 일출 월출 또한 그러하다. 


작은 거위는 자연의 변화의 소리를 정말 잘 듣는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는 소리에 민감하다. 또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소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는 자연이 자연의 일부인 우리에게 허락한 자연스러운 특성이다.  


또한, 작은 거위는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가을이 왔는데 뭐 해?” 다른 이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과 같다. 정체성을 찾는 것은 질문하고 성찰하고 그리고 시도해 보는 것의 연속이랄 수 있다. 

 

게다가 친구들에게 질문할 때마다 질문을 조금씩 바꾼다. “가을이 다가왔는데 너희들은 뭐 해?”, “ 오늘처럼 날씨가 서늘해지면 너희들은 뭐 해?” “ 더위가 완전히 물러갔는데 너희들은 뭐 해?” 같은 맥락이지만 단정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은 같을 수 있는 질문에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질문을 조금씩 바꿔하기도 하고 질문에 답한 친구들의 방법을 따라서 역시 자신도 이 가을날 무엇인가를 시도해 본다. 비버들이 말한 대로 나무로 예쁜 지붕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갉아보기도 하고, 다람쥐들이 말한 것처럼 겨울에 먹을 도토리를 모아두기 위해 땅을 파보기도 하고, 곰의 가족들이 말한 것처럼 추운 겨울 내내 자야 할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뭇잎을 긁어모아보려 하기도 했지만, 나무를 갉고, 땅을 파기에는 힘이 모자라고, 나뭇잎을 모을 땐 거센 바람이 한 번씩 불 때마다 모아논 나뭇잎을 몽땅 바람이 가져가버렸다. 결국, 뭘 해도 실패를 맛본 거위는,  “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고 눈물 흘리며 의기소침해진다. 작은 거위가 친구들에게 질문하고 시도해 보고 실패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다가 쿵! 쿵! 내려앉아 거위의 마음에 가 닿아 같이 한숨짓게 된다. 어느새 작은 거위와 하나가 되어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작은 거위 조차에게도 말이다. 작은 거위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모든 자연 현상에 마음을 활짝 열고 있다. 여러 번 “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며 자문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간절하다. 글 그림 작가는 그 지점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작은 거위가 결국 하늘로 날아오를 때 그림책의 텍스트와 이미지는 거위가 날아오르는 한 단계 한 단계를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 아 그래 바로 저거야! 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어. : 자세를 고추세우고, 날개에 바람을 넣고… 그리고 날아오르는 거야!” 


작은 거위는 “이제 내 자리를 찾았어!”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길은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그 자리는 고정되어있지 않다. 우리는 개인이 여러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또 찾아가면서 살아간다. 죽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성정체성,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직업적인 정체성, 사회적인 정체성, 가정에서의 정체성 등등.... 삶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통이 따르는 끊임없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정체성도 다른 이들의 정체성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작은 거위는 날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도 친구들도 잊지 않는다. 모든 이들에게 정성껏 친절히 대답한다.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 그때 난 여기에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먼저 자신과 그리고 모든 이들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거위의 모습이 이 가을날 햇볕에 반짝이며 곱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처럼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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