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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스 Apr 27. 2024

우리 맞바꾸자!

똘레랑스

 “ 우리 맞바꾸자!”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베르나데트 제르베가 쓰고, 그려 2019에 출판한 그림책 “우리 맞바꾸자!” 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를 다른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그림책은 우리 모두는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다름",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중요성, 다른 이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맞바꾸자!" 겉표지

     

그림책은 각각 두 쪽의 페이지를 사용해 두 종류의 동물 혹은 동물과 사물이 서로 가지고 있는 한 부분을 맞바꾸어 변신을 이끌었다. 다른 동물의 한 부분을 가지고 살아보는 것, 또는 다른 사물의 한 부분을 가지고 살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정말 다르고 너무 많이 다르다. 그 확연한 다름을 그림책의 그림으로도 확인하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다. 다르기 때문에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맞바꾼다. "맞바꾼다"는 것은 상대방의 다른 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 하며, 그래서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 다름이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나와 다른 점을 거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 그림책은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다름", 혹은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 "다름"이 만들어내는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한 번쯤은 서로 맞바꿔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봐 온 것에 대한 익숙함으로 인해서 맞바꾼 것 자체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한데, 정작 당사자들은 어떨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책은 이 두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 속으로 들아가 보면, 첫 번째 등장하는 동물, 코끼리가 있다. 그 옆 페이지엔 화분이나 꽃에 물을 주는 물 뿌리개가 있다. 그 둘 사이에 맞바꿀 수 있는 게 있을지, 전혀 상상을 못 했는데, 있다. 코리끼의 코와 물뿌리개의 물이 나오는 주둥이를 맞바꿨다. 이게 되네! 서로 맞바꿀 수 있네! 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두 번째, 암탉이 있다. 그 옆 페이지엔 곰이 있다. 닭의 두 다리와 곰의 네 다리를 맞 바꿨다. 이 둘 사이에 각각 맞바꿀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감행한다. 그다음은? 무당벌레와 소가 있다. 이들은 어떤 것을 맞바꿀까? 바로 무늬다. 무당벌레의 빨간 바탕과 검은 점들이 소의 몸에 가서 소를 빛내고 있고, 소의 얼룩무늬가 무당벌레의 등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이 원래부터 이런 무늬가 아니었을까 여길 정도로 각자의 몸에 딱 붙어있다. 그다음엔? 돼지와 돌고래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둘이 만나 서로 꼬리를 맞바꿨다. 익숙함에 대한 도전이고 반격이다. 그러나 애초 이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의 의미가 퇴색해지는 순간이다. 바꿔 말하면 나와 다른 상대방의 특별한 지점을 못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의미이다. 


서로의 일부분을 맞바꿨을 때 원래,라는 의미가 퇴색하는 반면, 그동안 익숙해진 삶에 대한 측면에서는 어떠한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당사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살 때 얼마나 불편할지....,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경험해서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고 모른다 할 수도 없다. 코끼리와 물뿌리개가 서로의 코와 주둥이를 맞바꿨고, 무당벌레와 얼룩소가 무늬를, 암탉과 곰이 서로의 다리를 맞바꿨을 때, 그동안 익숙해진 삶으로 인해 불편함이 따른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와 물뿌리개가 서로 코와 주둥이를 맞바꿨다. 잠시라도 익숙지 않은 부분으로 살아볼 때, 불편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무당벌레와 소는 바뀐 무늬로 멋지게 변신했는데, 상대방의 무늬로 살아보는 느낌이 어떨까? 각각 다리의 수가 바뀐 채 살아보는 암탉과 곰은 부족함과 넘침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전체 64 쪽으로 이루어진 그림책 - 어린이 그림책으로서는 적은 분량이 아니다 - 은 지구상에 있는 모두가 서로의 한 부분을 맞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담기에는 역 부족이어서 안타까움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겨진 무한한 상상과 실제 적용력은 이 그림책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서로의 일 부분로 살아보는 것.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사회에서, 공동체에서 피할 수 없는 의식이자 현실이다.  


우리가 다른 이와 한 부분을 맞 바꾼다고 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염려는 기우이다. 외려 우리 눈을 가리고 왜곡하는 사회적 관습이나 온갖 편견, 선입견 등에서 자유로움을 얻는데 기여한다. 한 부분을 맞바꾸어 다른 이들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은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어린 아기들부터 볼 수 있는 이 그림책은 다름을 받아들였을 때, 일상의 관습이나 습관에서부터 과감하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것이 합법적이지 않을지라도,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고 까다로운 상황을 순조롭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상 우리는 차이에서 비롯한 많은 차별과 편견에 짓눌려 살고 있다. 그러나 한 순간이라도, 아주 잠시라도 그 다름과 함께 살아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껌 딱지처럼 붙어있는 편견을 땔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선물 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어린이책에서부터 이들은 "똘레랑스"를 말하고 있다. 


지난주엔 홍세화 선생님이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 먼 길을 배웅하고 싶어, 선생을 추모하는 방법으로 그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다시 읽었다. 선생님이 살았던 파리를 되짚어가며, 선생님이 프랑스 사람들과 만나 나눈 대화를 되짚어가며, 이들의 문화에서 느낀 선생님의 견해를 되짚어가며 읽었다. 그 중심에  "똘레랑스"가 있다. 일상에서 늘 몸과 의식에 배어 있지만, 이 또한 자전거의 페달과도 같아서 - 자전거의 페달을 멈추면 자전거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쓰러진다 - 수많은 어린이책에서부터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는 게 바로 똘레랑스다. 


"서로 화평하면서 획일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라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똘레랑스란 나와 다른 사상, 신앙, 출생지, 성적 정체성, 피부색을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름을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홍세화 선생님의 똘레랑스를 설명한 일부분인데,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서로 대화해서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해 어렵고 까다로운 상황을 해결한다. 


프랑스, 낯선 사회에서 숨 쉬는 것은, 호기심 이외에 그동안 익숙한 것을 뒤로하고 새롭게 적응해야 할 때의 삐그덕거림이 따른다. 말이 서툰 것부터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거쳐야 할 것들부터가 시행착오 투성이다. 그러나, 이들이 낯설어하는 내게 보여준 것은 황당함에서 시작해서 감동으로 가슴을 적신다. 

유학생으로서 학생 체류증을 경시청에 신청해야 할 때였다. 은행에 가서 매달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생활비를 송금받고 있다는 내역서에 담당직원의 확인 사인을 받아 경시청에 내야 했다. 은행 담당직원에게 확인서를 부탁했는데, 학생 체류증을 받기 위해 경시청에서 통과될 잔고가 부족하다고 했다. 돈은 사용하기 나름이라 일상에서는 부족한 줄 몰랐는데, 행정처리상 외국인 유학생에게 요구하는 일정 금액이 있었던 것 같다. 당황했다. 당장 한국에 돈을 조금 더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도 시차나 송금받을 시간을 감안하면 이틀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러저러한 궁리를 하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그 사이 담당직원이 서류를 다시 프린트해서 본인의 사인이 있는 확인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금액을 임의로 올려서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라고 덧붙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고맙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실제 너무 고마워 은행에서 발걸음이 안 떨어질 정도였다.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한 내 실수를, 그건 내 실수가 아니라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외려 나를 위로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프랑스어 공인 인증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시험장에 신분증을 안 가져갔다. 시험을 못 볼 줄 알고 체념했는데, 그래도 일단 말이나 해보자 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사정이라고 해봤자, 잊고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일단 시험 보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가져오라고 해서 그다음 날 가져가서 확인받은 경험도 있다. 내 신중하지 못했던 실수를 그런 실수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듣고 이해하는데 익숙하다. 아니 일단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상황이나 처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 못하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니 눈을 마주치니, 미처 준비하지 않은 나의 실수로 난처한 상황에서 까다로운 상황을 해결하는데 이들의 이해가 여러 번 내 삶으로 들어와 용기와 격려를 주었다. 낯설고 외로운 유학생활에서 편안히 숨을 쉬게 했다. 이들은 똘레랑스의 의식 속으로 나를 초대했고, 나는 그 초대에 적극적으로 응하게 된다. 나도 사람들과 이런 이해하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이다.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던 홍세화 선생님이, - 어디 선생님뿐이었을까- 파리 7 대학 교수의 망명자가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부분이다. 


"... 다만 저항했을 뿐이지요. 남한의 국시는 반공이랍니다. 프랑스의 자유, 평등, 형제애처럼 적극적인 가치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반대의 이데올로기였지요. 내 나이 스무 살 때 나는 이 반대이념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증오심을 살찌운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나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벌써 공산주의자를 철저히 증오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무서운 발견이었지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다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니. 그 충격이 있은 뒤에 남한의 권력이 모두 이 증오의 이데올로기만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지요. 나는 저항하여 나에게 강요된 증오를 거부했지요..." 


나 역시 사랑을 배우기도 전에 증오를 배우고 배척하고 당하는 것을 배웠다.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다른 세계도 있었다. 조금씩 배우고 있다. 선생님 가시는 길이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귀한 글을 남기고 또 귀한 삶의 종적들을 남기셨으니 선생과 함께 길을 같이 걸으신 분들이 적지 않아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애쓰면 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서로 조금씩 맞바꿔가며, 서로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며 살 수 있는 세상, 그래서 느닷없이 마주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일상에서 같이 해결하면서 사는 세상,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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