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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나는 진짜 내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열정만으로는 부족한

by 나나쌤
직장인이 이직을 고민한다고 하면요, 감정들은 선명할 거예요. 현재에 대한 불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요. 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안고서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넌 진짜 잘 될 거야!

23살, 처음 학원 강사가 됐습니다. 수업은 잘됐고 학생들의 성적은 올랐어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29살, 처음 학원을 차렸습니다. 간판은 반짝였고, 로고는 예뻤어요. 상담실에 들어서는 학부모마다 "분위기가 참 좋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그저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았죠.


“원장님, 세무서에서 우편물이 왔어요”

“보험료 납부하라는데 어떤 계좌로 해요?”

“강사 계약서 양식은 어디….”


자신있게 학원을 차렸지만 사실 아무 것도 몰랐어요. 매출을 기입하고 지출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마치 수영을 잘하면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수업을 잘 하니까 학원도 잘 될 거라 믿었습니다. 수심도 조류도 모른 채 말이죠.


매일매일 스트레스였어요. 사람을 만나면 웃었고 혼자 있으면 울먹였습니다. 마치 구멍 난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 구멍으로 매일 시린 바람이 스며들었고 그렇게 쌓인 것이 우울과 공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발레리나는 자신의 몸이 어디까지 펴지고 접힐 수 있는지를 안다고 합니다. 과하게 펴면 다치고, 덜 펴면 아름답지 않을 테니까요. 이처럼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걸 ‘효능감’이라고 한대요. 저는 효능감을 “난 다 할 수 있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필요한 도움을 인정하는 힘”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없으면 결정을 내릴 때마다 매번 무거운 돌을 옮기는 것 같을 거예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결국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땐 ‘역시 내가 잘못했나 봐’라며 자책하게 될 겁니다.


29살의 저는 효능감 없이 학원을 차렸어요. 수업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운영은 모르는 영역이었어요. 심지어 몰랐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걸, 폐업을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나 사용 설명서 주세요

등산을 할 때, 산이 얼마나 험한지 내가 가진 장비는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어디서 조달할지 알려주는 설명서가 있다면 우리는 걱정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우리에겐 각자의 사용설명서가 필요해요. 효능감이라는 ’나 사용 설명서‘가 있다면 결정도 행동도 한결 쉬워질 겁니다. 만일 이직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연봉, 직급, 복지 등 외적인 정보만으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겁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할 순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부분과 노력해야 할 부분, 미리 도움받아야 할 부분을 적어보면 어떨까요?


현실적인 기대를 설정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게 되죠.

결정이 편안해집니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이건 내가 해낼 수 있어”라는 신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후회가 줄어듭니다.
-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국어 강사였던 저는 명상 안내자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29살 때와는 달랐어요.(폐업은 인간을 성장시킵니다아아아) 효능감이라는 렌즈로 나를 보니, 결정이 쉬워졌거든요. 강의는 자신 있지만 운영은 약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천천히, 작은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아마 예전 같으면, 일단 명상센터부터 차렸을 거예요) 또 스피치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지식 강의는 자신 있었지만, 영감을 주는 강연은 제 ‘아직’의 영역이었거든요.


신기한 건, “저도 배우는 중이에요”라고 용기 내어 솔직히 말했을 때, 성장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다는 겁니다.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으니까요. 실수도 괜찮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정직하게 인정한 ‘아직’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결정은 불완전한 미래로 향하는 작은 다리예요. 이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을 안고 머뭇거립니다. 효능감은 완벽한 결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결정을 받아들이는 힘이에요. 마치 비가 올 때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게 하죠.


지금 당신은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나요?

종이 한 장을 꺼내 적어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1. 내가 지금 바로 잘할 수 있는 것

2.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것

3. 아직 도움이 필요한 것


이 단순한 과정이, 결정을 머뭇거리는 이유를 보여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될 겁니다. 앞으로의 결정을 더 단단한 여정으로 만들어주는 거죠.




효능감은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는 것을 넘어, 그 위에 구체적인 결정을 쌓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음 글에서는 PATH라는 프레임워크를 통해 효능감 기반의 결정을 소개하려 해요. 먼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Perceive), 앞으로의 가능성을 분석하며(Analyze), 현재 상태를 인정하고(Trust), 필요한 도움을 찾는(Help) 법을 이야기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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