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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결정의 이정표

편안한 결정에 필요한 네 가지 질문

by 나나쌤
지난 다섯 편의 글에서 우리는 결정의 순간에 마주치는 것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긴장감과 고양감이라는 두 감정, 결정을 방해하는 여러 요인들, 타인의 시선, 그리고 결정에 필요한 자기 이해까지. 이상한 건 답을 알면서도 결정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순간이요.


조금 오래된 일

몇년 전, 저는 큰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피,땀, 눈물이 묻어있는 국어학원을 접고 영,수 선생님들과 동업을 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로는. 영, 수 과목과의 시너지도 기대됐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정을 내린 뒤 찾아온 건 불안과 후회였어요. 1인 원장의 해방감, 앞으로는 지금과 다를 거라는 설렘이 아니라요. 머리로는 그린라이트인데 마음은 레드라이트였어요.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열 번의 큰 결정을 했다면, 아홉 번은 그랬습니다. 결정의 순간에는 없던 불안이 밤이 되면 찾아오더라구요.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하나?"

처음에는 결정이 잘못돼서 그런 건가 싶었습니다.

확신이 부족해서, 준비가 덜 돼서, 뭔가 놓친 게 있어서 그런 줄 알았죠.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하나였어요.

결정의 진짜 어려움은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찾아온다는 것.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닌데

다행히도 이건 자연스러운 거래요.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결정을 내려놓고도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결정을 재검토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선택 이후에 느끼는 불안에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요, (제 생각에) 중요한 것 세 개만 소개해 볼게요.


1) 인지부조화
결정을 내린 뒤에도 우리의 뇌는 선택지 간의 불일치를 느낀대요. 선택한 옵션과 선택하지 않은 옵션의 장점이 계속 비교되며 “혹시 더 나은 선택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요. 이는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뇌의 본능적 작용이래요.


2) 통제 상실에 대한 두려움
결정은 선택의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심리적으로 큰 불안을 유발하게 됩니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내 선택이 통제할 수 없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커지죠. 그래서 우리는 행동 앞에서 우리를 멈추게 된대요.


3) 자기효능감 부족
결정을 내릴 땐 확신이 있었더라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불안감이 커지고요, 불안감이 커지면 행동을 미룰 수밖에 없어지죠.



결정은 미로와 같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미로 공원을 간 적이 있어요. 입구에서는 “우리 10분 안에 미로를 빠져나오자!”다짐하며 들어갔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어려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많은 갈림길에 멈춰서게 되었거든요. 막힌 길에서 되돌아 오고 되돌아 오다 보니 나중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 버렸어요.

중요한 건 출구를 빨리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방향 감각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결정은 삶의 큐레이팅이에요


이정표가 있다면 그 미로를 빠져 나오기 쉬울 겁니다. 그래서 저는 PATH라는 프레임워크를 이정표로 쓰고 있어요.

결정은 SNS 피드를 만드는 것과도 닮았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보고, 누구를 팔로우하고, 무엇을 공유할지 선택하는 과정이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만의 피드를 만들어갑니다.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삶을 큐레이팅합니다.


P: Perceive, '1년 전 오늘' 기능처럼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

"1년 전 오늘" 기능은 우리가 과거에 어떤 포스팅을 공유했는지 보여줍니다.

* 어떤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 어떤 콘텐츠는 그냥 아카이빙되었는지,

* 그동안 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죠.

마찬가지로 Perceive는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그때 실수로 보였던 선택도 지금은 의미 있는 스토리가 되었구나."
이렇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선택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A: Analyze, '탐색 탭'을 둘러보는 과정

SNS의 탐색 탭에서는 알고리즘이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모든 콘텐츠가 나의 피드에 어울리는 건 아니죠.
Analyze는 우리가 마주한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어떤 선택지가 나의 삶에 더 적합한가?"
를 탐색하고 가늠하는 과정입니다.

이 단계는 선택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나에게 맞는 길을 찾도록 돕습니다.


T: Trust, '지금 이 순간' 피드를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과정

SNS에서 팔로워 수나 좋아요 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는 이 콘텐츠를 공유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선택하는 용기.
Trust는 현재의 감정과 상황을 왜곡 없이 인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믿자."
Trust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단계예요.


H: Help, 피드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

내가 공유한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그들이 공유한 콘텐츠가 다시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선택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어요.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지

나를 돕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까지 도울 수 있는 선택이 있지는 않을지

다정한 마음으로 살펴봅니다.

H는 나를 돕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단계예요.


PATH는 이렇게 우리의 결정을 조금 더 잘 다듬어 줄 수 있습니다. 마치 잘 큐레이팅된 피드처럼, 조금 더 내 선택이 온전히 내 것임을 바라는 마음으로요.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의 '좋아요'가 아닌, 내가 이 선택을 보면서 느끼는 진짜 '좋아요'니까.


머리로는 나도 알지

“머리로는 복직해야 하는 거 알지. 내 커리어도 그렇고 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그런데 마음이 불편해…“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있던 지인의 고민입니다. 이렇게 이성과 감정의 손가락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던 순간은 누구나 있었을 거예요.


예전에는 이성적 판단이 답이라고 믿었어요. 손익을 따져보고 선배들의 경험을 참고했죠. 그래도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어요. 더 깊은 미로에 빠지는 것처럼.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떤 결정의 한가운데 서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크든 작든 아무튼요) 혹은 결정 후의 불안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럴 때 잠시 명상을 하고 네 개의 이정표를 확인해봅니다.


불안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그러니 벗어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친해질 수는 있죠. PATH는 그 불안과 친해지는 방법이에요. “불안은 여전해. 그런데 이상하게 덜 무서워”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여러분도 함께요.



[오늘의 질문] 결정 후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때 어떤 이정표가 있었다면 좋았을까요?

#결정이_쉬워지는_마음여정 #PATH #결정의완성


다음 글에서는 P(Perceive)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의 경험들이 어떻게 새로운 결정의 나침반이 되는지, 함께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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