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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미래를 만나는 방법 A | 결정 여정의 목적지

예측만으로 결정이 가능할까요

by 나나쌤
알 수 없는 미래는 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말하자니 일이 커질 것 같고, 참자니 속이 터질 것 같고”와 같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나쁜 결과가 예측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결정은 이상한 일입니다.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현재의 내가 맺는 계약 같은 것이거든요. 보지도 못한 미래를 두고 지금의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니, 가만 보면 어이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명상에서는 ’현재’에 머무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현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현재를 ‘과거의 결과’로 이해합니다. 어제의 내가 치킨과 떡볶이를 먹어서 오늘의 내 배가 나온 거니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현재는 ‘미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내일의 배를 날씬하게 만들려면, 오늘 샐러드를 먹어야 하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길 원합니다.

정보를 모으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죠. 하지만 우리가 미래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뿐입니다. 내 마음조차 통제하기 힘든데(책 읽으려고 했는데 넷플릭스를 보다 시간을 때운 무수한 날들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미래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통제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불확실함 앞에서 망설이는

얼마 전, 저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명상센터를 차리고 싶었거든요. 부동산 앱 알림을 켜두고 매일 밤 매물을 찾으며 설레었습니다. (아이돌 덕질하는 느낌이랑 비슷했어요!) 그러다 맘에 드는 매물을 발견했습니다. 위치, 가격, 인테리어 모두 좋았어요. 이미 머릿속에서는 사람들을 모아 명상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어찌나 설렜는지 방문 약속도 하기 전에 오늘의 집 앱을 켜고 카펫과 향초를 고르고 있었어요.

맘에 드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으려는 순간, 띵동-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수강생이 없다면? 월세를 못 낸다면?”

작은 의문이 거대한 두려움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희망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동안,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지쳐버리더라구요.

사실 이런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거예요.

어떤 사람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비슷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정시 퇴근이 가능한 현재의 워라밸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연봉 상승과 경력 발전을 위해 더 힘든 길을 선택할 것인가. 기회를 놓치면 아쉬울 것 같고, 워라밸을 포기하자니 그것도 후회될 것 같은 순간들.


계산기 대신 망원경을 들어야 할 때

결정의 순간, 우리는 늘 계산기를 꺼냅니다. 손익을 따지고 결과를 분석하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답이 안 나오더라구요.

계약을 하자니 고정비용이 겁나고 안 하자니 좋은 매물을 놓칠까 걱정됐죠.


문득 나는 지금, 중고거래를 하면서 우체국 택배가 나을까 편의점 택배가 나을까만 고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이 물건을 어디로 보내고 싶은지는 아는 건데 말이죠.


애초에 정확한 손익 계산은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미래는 불확실하니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였어요. 그건 계산기가 보여줄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저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계산기만 두드렸습니다. 린스로 머리 감으면서 두피가 개운해지길 바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망원경으로 보듯, 멀리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어요.

- 5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지?

흥미롭게도, 제 머릿속에는 더 넓은 공간이 보였어요. 집필실, 명상실, 휴게실, 콘텐츠 촬영실이 있는 약 30평 정도의 공간. 그 매물은 저를 위한 첫걸음일 수는 있어도,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마음 속 호기심 원숭이가 잠잠해졌습니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창문으로 시야를

이제 목적지가 보이자 그 다음 고민이 생겼어요.

그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원경으로는 알 수 없는 문제였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필요했습니다. 나만의 가치와 목표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요.

저는 처음부터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작은 콘텐츠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고 싶었어요.

명상 센터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막혔습니다. 그걸 지금 당장 할 수 있을까? 답답했어요. 마음에도 창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머리를 환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요.

- 잠깐 내가 지금 원하는 건 글과 콘텐츠인데 꼭 물리적 공간이 필요할까?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진짜 원했던 건 ‘공간’이 아니라 작가로서, 명상 안내자로서 ‘나만의 자리’였다는 걸. 그리고 그 자리는 꼭 임대된 공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요.


계산기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망원경과 나침반과 창문을 통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때로는 멀리 보고, 때로는 방향을 확인하고, 때로는 잠시 쉬어가면서요.

아마 정답을 찾으려 했으면 보지 못했을 거예요.


결정은 예측이 아닌 나를 만나는 것

저는 처음에 명상센터라는 공간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찾던 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제 안의 빈자리였다는 거예요.


우리는 종종 결정의 순간에 미래를 바라봅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하지만 어떤 결정이든, 그 여정의 출발점은 늘 '지금 이 순간의 나'입니다.


그래서 결정은 놀랍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해요. 미래를 고민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니까요.

망원경으로 5년 후의 꿈을 그리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는 모든 순간이 결국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어요.


지금도 누군가 새로운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미래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설렘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지금의 진짜 나’를 말하고 싶어하거든요. 그러니 미래를 예측하느라 너무 애쓰지 않으시면 좋겠어요."라고


글을 쓰면서 그동안 제가 내렸던 결정들을 돌아보니, 좋은 결정도 결정도 없었어요.

그저 ’그 상황의 내가 원했던 결정’이 있을 뿐이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면 결정은 도착이 아닌 여정이고, 답이 아닌 질문이며, 미래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고, 미래의 가능성도 살펴봤으니,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차례예요. 나를 믿고 수용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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