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 가장 무서웠던 작품은 바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이었습니다.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는 작품이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습니다. 2편의 등장이 확실시되는데 어찌 보면 ‘오징어 게임’ 2보다 더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들을 보면 한국이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며 전 국민이 마냥 해피해하는 나라(정말 그랬다면 5년 만에 정권이 바뀌겠습니까?)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들 드라마가 눈을 뜨나 감으나 항상 셀 조선인 현실을 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리얼리티 때문에 대성공을 한 건 아닐까요? 일단 세 가지 관점을 잡아보았습니다.
1) 죽는다는 공포는 지옥에 빠진다는 공포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과 동물의 삶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 차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현재까지는 죽음을 알고, 그 죽음이 언젠가는 자기를 급습할 것을 알고 사는 거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생의 언젠가에 반드시 한 번은 죽음을 만나게 되어 있으니, 인간은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요. 가장 좋은 대책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삶, 공자님 말씀대로 ‘내가 삶을 아직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이야기하겠는가?’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암 같이 치명적인 병, 그중에서도 말기암으로 화학치료가 더 이상 통하지 않아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한 미련을 놓으며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지지요. 남은 가족을 위로하고 슬퍼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심리적으로 겪은 고통은 병으로 인한 고통 못지않았을 겁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살고 있는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중국처럼 사형제가 있는 나라의 사형수들이죠. 그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일 겁니다. 살아있는 자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히틀러나 스탈린 같이 수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재자라고 다를 게 없었고 어찌 보면 교황이나 위대한 스님 같은 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을 겁니다. 단지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지, 죽음이 좋아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아마 인류 역사 상 단 한 명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다녀온 사람이 없어서 알 수 없는 가장 궁금한 진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정말 있고 우리가 두려워하던 지옥이 정말 있다면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는 어떻게 될까요? 죽으면 지금 당장의 고통이 끝나겠지 라는 생각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조차 사라지는 거죠. 죽음이 공포의 끝판왕이 더 이상 아닌 세상을 상상해보죠. 드라마에서 진정한 공포는 시리즈 후반에 등장하는 방송국 PD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쓸쓸히 강가에서 저승사자들을 기다리며 죽음을 기다리던 장면이었습니다. 후배 PD가 그가 지옥행을 고지받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죽어가는 방법을 선택했음을 알게 될 때 그가 한 말이 그가 느낀 공포의 무게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제발 내 아내 등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저를 비롯한 보통 사람은 지옥행을 통보받을 때 아마 숨 쉬는 것을 뺀 거의 모든 일상생활(먹기와 자기까지 포함)을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이 PD는 죽는 날 오전에 열린 방송국 회의에도 참석해 평소처럼 일도 하면서 농담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말 이런 상황을 만나면 그 어떤 인간도 이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는 이 PD가 이런 초연한 지옥행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혹은 남편이 지옥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가족이 받게 되는 고통과 상처를 자신의 고통보다 더 무서워했기 때문이죠. 대단한 사랑과 죄책감이죠.
드라마 초반부에서 지옥행을 선고받고 이를 방송화 하는 대신, 30억 원을 자녀들 미래를 위해 지원받은 미혼모의 얼굴은 정말 리얼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녀는 그 통보를 받은 날부터 정상적인 생활 특히 수면을 취하지 못했을 터인데, 내가 죽으면 두 자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타고난 모성으로 며칠을 더 버티며 고지된 날이 오기를 기다렸던 듯합니다. 한 잠도 못 자고 눈이 퉁퉁 부운 채 죽음 그리고 영원한 지옥 행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녀는 정말 잘 연기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고통은 20년 전에 지옥행을 통지받은 유아인입니다. 차라리 10분 뒤 지옥에 간다는 통보를 받은 교수의 딸은 유아인에 비하면 정말 해피했을 겁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죽으며 지옥으로 끌려가는 걸 지겨보는 아비지의 마음 또한 지옥행 못지않은 고통이겠지만, 유아인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옥에 갈 만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의 아내를 죽인 뒤 심신 미약으로 6년만 살고 나온 범죄자를 태워 죽인 것은 자신의 교의 신도인 경찰의 딸을 위한 행위였지만 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지옥행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만든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종교 새 진리회의 교리가 옳고 신도 옳다는 판단 아닌 믿음 속에서 그 엄청난 죽음을 겪게 된 거죠.
2)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은 악업을 쌓은 사람? 천만에 랜덤이다
시리즈 2에서는 결국 이 신비가 풀릴 겁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은 새 진리회가 주장하듯 그리고 기존의 종교 역시 강조하듯 이승의 삶에서 저지른 악행 때문일까? 그런데 드라마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첫 번째 지옥행(실제로는 그전부터 알 수 없는 이 미지의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됐습니다.)에는 사실 딱히 이유라고 불릴 게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새 진리회 교회에 전시된 앙상하게 타다 남은 상체 뼈의 주인공 미혼모 또한 정말 지옥에 갈 죄를 지은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사례가 점점 늘다 보니 죽어 마땅한 화살촉의 두목 같은 이도 지옥행을 선고받고 죽어야 할 이유를 가진 나름의 사람들이 새 진리회가 TV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지옥행 씻김굿에 등장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들 또한 이 사람들이 왜 지옥에 가는지 실제 이유를 모른다는 거죠. 그냥 똑바로 살아라, 죄짓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범죄율도 큰 폭으로 줄이고, 사회를 도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큰 도움을 준 게 맞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후반부의 엔딩 부분에 등장하는 생후 5일도 안 된 아기의 지옥행 통지에서 자신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죠.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아이디어를 짜내지만 그렇다면 자신들이 개신교와 비교해 뭐가 다른데 라는 질문에 답이 없어지고 급속히 교인들이 줄어들 위험이 있음을 유아인 대신 새 진리회를 이어받아 세계 최대 종교로 키운 목사가 누구보다 잘 알죠. 결국 시리즈 1만 보고도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이름을 부르며 너는 몇 월 며칠몇 시에 지옥에 간다는 고지는 랜덤으로 이루어지는 자연현상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초자연적인 질서(예를 들면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업)로 내세의 지옥행이 결정된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드라마가 너무 꼬이게 되겠지요. 아직 2편이 등장하지 않아 어찌 흐를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때 연감독의 결론은 영화 속의 지옥행 고지는 인간이 만나온 지진 폭우 해일 같은 자연재해와 같은 사건이라는 시각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3)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종교인은 영혼도 믿고 신도 믿고, 천국과 지옥도 믿는 사람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유물론자가 늘면 늘수록 천국과 지옥, 특히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 또한 줄어들 것입니다. 중세에 유럽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교회가 지배하는 사회는 교황을 비롯, 종교인들이 “너 죽어서 지옥 간다”는 말로 겁박을 하면서 자신들은 누릴 것 다 누리고 지배 체제를 유지해 온 정교일체 사회입니다. 지금 이슬람에서 자살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죽음을 기꺼이 맞게 만드는 이유도 바로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물론 전체 이슬람교도가 중세에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 테러에 나서는 수많은 IS전사들이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르며 자신과 타자를 함께 죽음으로 이끌고 있는 거죠. 우리는 사실 전 국민이 특정 종교 하나만을 믿으며 그 종교 가르침대로 산 적이 없어서 이런 문화가 낯설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이들의 말이 맞다면 정말 많은 게 달라지겠죠. 드라마 초반부에 지옥행이 생중계될 때 시청률이 98%에 이르고 카메라에는 길거리에 차 한 대도 다니지 않고, 거리에는 단 한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장면이 비칩니다. 지옥이 확실히 있고 누구나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이상 그 사회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로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도 아닌 존재인 저승사자를 경찰이나 군대가 상대할 방법도 없을 터 결국 국가는 무너지고 그 자리를 종교가 대신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신론자를 포함해 모두가 유신론자가 되어 신께 빌겠죠. 어쩌면 종교는 국가뿐 아니라 자본주의까지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가 지옥행을 선고받으면 독재 국가 붕괴 역시 시간문제일 겁니다. 정말 엄청난 변화가 거시적으로 있겠죠. 그리고 미시적으로 삶에서는 웃음이나 쾌락이란 단어조차 사라질 겁니다. 지옥행을 선고받은 뒤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이가 있었는데 상갓집에서 저승사자들이 나타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장면을 보면 사람들이 자살이 결코 대안이 아님을 깨닫게 되겠죠.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론은 전 국민이 중세인들처럼 경건하고 도덕적으로 살면서 매일매일 내 앞에 고지가 일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하루를 마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TV 생중계가 지난 지 4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새 진리회가 전 국민의 영혼을 지배할 정도로 커졌지만,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나름의 이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실제 제 생각에는 지구의 종말이 올 때와 비슷한 충격과 혼란이 인간사에서 벌어질 것 같은데 드라마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어둠과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리즈 2에서는 인간이 만난 가장 최악의 공포이며 인간의 영혼을 지금까지 지배해 온 가장 큰 공포인 ‘지옥행’을 인류가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그 과정을 기대합니다. 저승사자들이 곧바로 이어진 다른 이의 지옥행을 집행하느라 아기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 못한 점은 신이 설계한 지옥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해 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인간의 희망이라는 걸 2편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지로 비쳤습니다. 자신의 몸을 대신 불태우며 아들 대신 지옥행을 선택한 부모의 사랑은 인류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고 만날지 몰라 그렇게 불안해했던 근원적인 공포를 대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 그런데 저는 정말 영원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지옥이 존재할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일단 영원한 고통이란 단어가 형용 모순이에요. 인간에게는 괘락처럼 고통에도 역치가 있습니다. 고통이 지속되어 영혼을 뜨겁게 고통스럽게 달구어도 언젠가는 인간이 그 고통에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이 죽는 순간인데 이미 죽은 영혼이 또 죽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끔찍한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 적응하든지 죽든지 둘 중에 하나죠. 그러고 보면 영원 무한 완벽이란 단어는 오직 수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영원한 고통도 오직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저는 지옥은 없고 따라서 지옥과 반대되는 천국도 사후세계에는 없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명백한 무신론 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