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과학적일까요? ‘과학이라는 헛소리’의 저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박재용 작가는 과학 속에도 의외로 미신이나 유사과학이 많이 포함돼 있어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진정한 과학인의 자세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 MBC 뉴스데스크에서 PC방에 기자가 들어가 갑자기 전력을 끄자 게임을 하던 학생들이 “이게 뭐야”리며 쌍소리를 해대자 “이게 바로 게임이 사람의 뇌를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증거”라고 보도해 과학인들의 웃음을 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기사를 과학자들은 코미디로 여겼지만 많은 국민들은 게임은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기사의 내용에 공감을 표시했죠. 즉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는 사실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는 게 과학이라면 자신의 생각에 사실을 맞추는 게 바로 유사과학이며 사이비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살리에 등 초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돈 룩 업’은 코로나로 더욱더 심하게 드러난 미국 공화당의 비과학적 태도와 무능을 정면에서 꼬집는 정치 풍자 코미디였습니다. 그러면서 과학이라는 학문이 인류의 진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묻는 진지한 성찰극이기도 했죠. 과학책을 읽는 것만큼 과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1) 왜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나?
이 영화는 개봉 초반에 국내 과학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뇌과학자 장동선을 포함해서 유튜브에는 이 영화를 극찬하는 과학자들의 리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들어도 알아들 수 있는 쉽게 쓴 과학 책 같다는 내용이었죠. 그런 과학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과학자가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에는 적극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고 여전히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돈 룩 업’을 보고 리뷰를 과학자가 올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과학이 아닌 정치를 이미 하고 있다고 봐야죠. 유튜브를 하는 일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을 제외하면 과학자들만큼 일반인들과 소통이 약하고 부족한 직업이 없다고 하는데 소통을 못하는 과학자로서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는 정말 연기를 잘했다는 평입니다. 그와 그의 재자의 소행성 궤도 측정과 그들의 주장에 대한 동료 과학자들의 피어 리뷰까지 정말 영화는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로 과학자들을 리얼하게 묘사 헸다는 게 과학인들의 평입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류 멸망이지 지구 멸망이 아닌 상태에서 다른 종들이 나중에 진화할 때 지구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아날로그 기록물을 반드시 만드는 게 과학자의 룰입니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를 비롯 로렌스까지 어느 누구도 그 생각을 못했다는 게 옥에 티라는 평입니다.
2) 포퓰리즘 정치는 과학과 반드시 충돌한다
이 영화는 노골적인 반 트럼프 영화입니다. 돈 룩 업이 하늘에서 무슨 일이 안 생기니 하늘을 쳐다보지 말라는 뜻으로 우파 대통령인 메릴 스트립과 참모진이 만든 구호죠. 반대로 반대당과 과학자들은 룩 업을 외칩니다. 영화에서는 소행성 충돌로 갈등하지만 사실은 기후변화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갈등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트럼프를 포함한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과학과 적대적입니다. 우파 포퓰리즘은 백인의 기득권과 기독교 근본주의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죠. 소행성이 지구에 정면충돌할 확률이 99.78%라는 과학자의 보고를 들은 대통령이 증시 대폭락을 걱정하는 꼴은 코로나로 떼죽음을 목격할 각오만 되어 있으면 우리는 금리를 얼마든지 낮춰 사상 최강의 증시 랠리를 구경하게 해 주겠다는 트럼프와 정확히 오버랩됩니다.
명백히 민주당 지지자인 아담 매케이 감독은 우파 포퓰리즘을 비웃죠. 사람들이 다 죽는 마당에 주가가 떨어지는 게 걱정인가? 표푤리즘은 우파든 좌파든 장기 이익이 아닌 눈앞의 단기 이익에만 사람들이 집중하는 걸 원합니다. 쓰나미가 오기 직전까지 해변가에서 휴가를 보내며 삶을 즐기라고 권유하는 게 포퓰리즘이죠. 메릴 스트립의 말 대로 쓰나미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일어난다면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되고 안 일어나면 그냥 예전처럼 흥청만청 살면 된다는 게 포퓰리즘의 철학입니다. 과학 무시 인권 무시 소수자 무시 미래 세대 배려 무시 등 포퓰리즘은 무시가 본질입니다,
3) 빅 테크는 자신들의 과학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나?
아담 맥케이 감독이 특유의 시니시즘을 발휘한 분야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빅 테크 기업도 포함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구글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일론 머스크일 수도 있는 빅 테크 업체의 사장이 우파 포퓰리즘 대통령 메릴 스트립의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마치 공공주도 개발이냐 민간주도 개발이냐를 놓고 전 정부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립각을 세웠듯이 디카프리오를 포함한 과학자 측의 대처와 인류의 종말보다 수익성을 더 걱정하는 빅 테크 업체는 극한 대립합니다. 이 괴정에서 미국 대통령은 빅 테크의 손을 들어주죠. 소행성에서 지구에서 고가로 팔 수 있는 희소광물을 채집하려 하다 결국 일을 그르쳐 소행성이 지구 궤도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실제 빅 테크 기업이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잇속을 먼저 챙기거나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지구를 떠나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만날 때까지 동면할 수 있는 권리를 주려고 하겠냐만은 맥케이가 보는 빅 테크는 그 자체가 국가의 군력을 초월할 정도로 권력이 커졌으며 우리의 삶의 모든 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지배적입니다. 빅 테크 업체의 사장은 영화에서 두 번의 예언을 하는데요, 하나는 메릴 스트립 대통령의 2만 7천 년 뒤 죽음의 방식을 맞히고 다른 하나 외롭게 쓸쓸하게 죽는다는 디카프리오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빅 데이터에 의한 미래 예측은 이 또한 과학임이 맞기는 합니다. 디카프리오가 가족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며 행복하게 최후를 맞는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을까요? 그는 역사상 최고의 과학철학자 갈 포퍼를 소환합니다. 바로 칼 포퍼의 말이 맞았음을 보여주는 거죠. 과학은 언제나 맞기에 과학인 것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기에 과학일 수 있다는 게 포퍼의 입장이죠. 포퍼는 프로이트와 윌이엄 제임스를 동시애 경계했는데, 제임스가 한 말 “믿어라, 그러면 그 믿음이 사실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가장 위험한 유사과학으로 경계했을 겁니다. 결국 영화는 잘못된 대통령을 뽑은 우리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반대자는 물론 지지자들도 확인하면서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도 오류를 찾아내도록 돕는 게(즉 눈을 하늘로 향해 돌리기만 하면 되는) 과학의 본질임을 에둘러 말하고 있습니다.
4) 그렇다면 과학은 선인가? 악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사용하는 인간의 테도 정확히는 욕망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거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과학은 철저하게 도구, 인간의 진보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은 쉽지 않습니다.
아담 맥케이도 과학에 무식한 당시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리고 규제 완화를 목놓아 외치며 자신들이 중국 잡는 매라고 주장하는 빅 테크 기업에 회초리를 들었을지언정 과학 자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그럽습니다. 디카프리오가 잠시 블란쳇과 한 눈을 팔다 조강지처로 귀환하는 모습을 통해 맥케이 감독이 과학자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는 교육자에 가까우며 정치인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는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해 일할 때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가족으로 보고 모두를 위해 일을 할 때가 가장 과학자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디카프리오는 물론 영화 속 모든 과학자들에게서 보여주고 있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니까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과학자들은 영화 속의 사실적 과학 묘사 때문이 아니라 긍정적인 과학자의 상을 제시하고 있어서 열광한 겁니다. 하지만 노골적 풍자와 직설화법은 맥케이 감독의 매력이자 어떤 면에서 분명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이게 맥케이 감독에게 주어진 숙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