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거쳐 입시 일로 근 20년을 먹고 살아오다 요즘처럼 놀라는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정말 달라졌음을 실감하는 기분이랄까요. 한국에서 사교육은 절대 망할 리 없는 삼성전자보다 더 생명력이 긴 비즈니스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생각을 고쳐 먹게 됩니다. 길벗에서 나온 부동산 투자서 ‘나는 학벌보다 돈이 좋습니다만’은 정말 쇼킹한 제목이었어요. 이미 학생들은 서울대와 건물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건물주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여전히 스카이와 의사 등의 전문직에 대한 열정과 투자 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는 본인이 한의사이며 남편이 의사인 전문직 부부입니다. 나이가 40대인 걸 보니 틀림없이 학부모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학벌을 돈이 이긴 지가 꽤 됐을 수도 있죠. 문과보다 압도적인 이과 선호, 서울대보다 지방 의대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이미 옛날이야기잖아요? 다만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책 제목으로 쓸 정도로 돈과 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태도가 달라졌다는 증거겠죠.
책은 가독성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저는 부동산보다는 주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부동산에도 관심은 있습니다. 파숑이나 부읽남, 너나위의 책 등 유명한 부동산 책은 나오는 대로 읽는 편인데, 책의 재미는 이들 작가들의 책에 밀리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글솜씨가 상당히 뛰어나더라고요.
책에 대한 평가를 하기 전에 일단 부동산은 어쩔 수 없이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일단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똑같습니다. 더 큰 시세 차익이죠. 돈 벌려는 욕망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요. 이제 곧 물러나는 문재인 정부는 너무 부동산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던 듯합니다. 부동산을 마치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면서 다주택자들을 투기꾼으로 매도했는데 득보다 실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유동성이 부동산보다 주식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했던 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부동산은 주식보다 생산적이지 않죠. 그것도 많이 많이. 그러나 돈을 벌려는 인간의 욕심이 비트코인으로 향하든, 부동산으로 향하든 그 본성 자체를 문제시하면서 규제로 맞서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규제와 수요를 때려잡아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5년 안에 될 일이 아니었어요. 5년 단임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에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20년 집권론이 일장춘몽으로 5년 만에 끝난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착각했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고 싶은 많은 국민에게 오만으로 비친 결과죠.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돈 이야기로 넘어가서 돈 이야기를 해볼까요. 책의 메시지는 명쾌합니다. 일단 부동산을 공부해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투자금으로, 각 지역의 상승 사이클일 때 진입해서 지속적으로 자산을 늘리라는 조언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주변에 부동산에 투자해서 손해를 본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부동산 투자자는 언제든 익절 합니다. 그들 사전에는 손절이란 게 없습니다. 그러나 주식은 솔직히 말해서 돈 번 사람보다 잃은 사람을 10배는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선물 옵션은 그 비율이 1대 100인 것 같아요. 부동산이 비생산적이기는 하지만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민주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죠. 다만 인구구조 상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던 부동산이 앞으로도 잘 나가면서 투자자들의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지는 모르겠어요. 미래는 신만이 아는 거지만 저는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 일본의 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답이 어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지금은 잘 나가는 부동산이지만 저출산과 저성장의 늪이 일본보다 심하면 심하지 절대 낮지 않은 우리 상황으로는 글쎄요, 저는 부동산 시장을 장기적으로 우상향 한다는 믿음에 회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하나 달자면 주식 시장 역시 부동산 시장처럼 장기 우상향 한다는 전제 속에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펴시는 분들이 계시겠죠. 대한민국이 저출산과 저성장에 고령화의 늪에 빠져버리면 국장도 장기적으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지적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에는 미국 증시라는 대안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지금 형국을 보면 세계 패권을 미국이 중국에게 쉽게 내어줄 것 같지도 않고 미국의 미래가 우리보다 밝은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죠. 그래서 저는 부동산과 국장 미국장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미국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미국 나스닥이 10년 만의 최악을 맞았지만 결국은 서학 개미들이 최종 승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세 자산에 골고루 투자하는 것, 여기에 채권까지 포함해서 다변화시킨다면 더욱 예쁜 포트폴리오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