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전쟁이자 최악의 전쟁으로 전쟁사에 영원히 기록될 독소전쟁은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전 인류가 멸망할 때까진 아마 그 명성과 압도적인 수치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겁니다. 이 전쟁에서 죽은 군인과 민간인 숫자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러시아 군 사망자는 1000만 명이 넘고 민간인까지 치면 27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독일도 전사자 350만 민간인 100만 명이 동부전선에서 죽었습니다. 주로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치러져 민간인 사망자는 소련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대신 소련군은 동프로이센을 비롯한 점령지에서 8세부터 80세까지 전 연령대의 독일 여성을 강간해 한 해 200만 명의 사생아를 만든 인류 최악의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히틀러에게 세뇌돼 인종적 우월성으로 똘똘 뭉친 젊은 독일 군인들이 소련 영토에서 벌인 학살과 포로를 굶겨 죽이는 야만 행위의 끝판왕을 먼저 펼쳤고 소련은 이에 대한 복수를 한 거지만 사실 이 전쟁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이 아니었던 악마들의 전쟁이었죠. 사실 이 전쟁을 단독으로 일으킨 히틀러나 이 전쟁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던 스탈린이나 인류 역사 최강의 사이코패스들입니다. 악마는 악의 흔적을 영원히 남깁니다. 전쟁에서는 졌지만 악명에서는 히틀러가 승자입니다. 세계 독재자 순위에서 히틀러는 그동안 한 번도 50% 이하를 득표한 적이 없으며 스탈린을 두 배 차이로 누르고 세계 최악의 독재자 역대 1위를 항상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와 전쟁에 동시에 관심이 많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최강 아니 인류 최강의 군대를 만들어낸 히틀러는 인간 이하로 우습게 보았던 스탈린과 슬라브족에게 패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99%의 확률로 독일이 소련을 이길 거라고 예측했거든요. 티거라는 지금 써도 무적일 것 같은 탱크, 최초의 제트 전투가 ME 262, AK 47의 원조로 최초의 자동소총인 StG 44, 최초의 ICBM인 V2를 만들어 놓고 미국보다 2년 먼저 핵무기 개발에 들어간 독일이 왜 소련에게 졌을까요?
영국의 사학자이며 독소전쟁 최고의 전문가인 리처드 오버리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서 초반에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던(군 사망자 숫자 비교 독일 8만 vs 소련 266만) 소련이 43년 스탈린그라드의 승리 이후 어떻게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세 가지 답변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정보 첩보전에서의 승리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승전의 1등 공신은 베를린에서 활약했던 독일인 공산주의자 간첩들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활약했던 영국인 간첩들(대부분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이었습니다. 후자야, 영국이 당시 소련과 동맹이었으니까 그렇다 쳐도 같은 민족을 배반하고 이념을 택한 베를린의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일본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일하던 리하르트 조르게는 어떤가요? 히틀러도 나중에 알았던 일본의 하와이 침공 소식을 미리 알고 소련 측에 일본이 절대 소련을 침략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며 동북아 주둔 군대 50개 사단을 모스크바로 돌릴 수 있도록 해 준 소련의 진짜 전쟁 영웅입니다. 스탈린은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 정예 부대를 전부 동원할 정도로 히틀러와 전쟁에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독일의 암호기 에니그마가 영국의 앨런 튜링과 그의 팀원들에게 뚫린 이후에는 독일군의 움직임과 관련한 정보(연대별 움직임까지)가 캠브리지 간첩들에 의해 고스란히 소련 측에 전달됐습니다. 처음에 소련은 독일군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허둥대다 당황하기 일쑤였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부터는 미리 기다리고 있었고 반대로 독일은 점령지를 잃을 때마다 소련군 움직임에 대한 정보 소스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마음 놓고 소련을 침공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슬라브족에 대한 경멸과 레벤스롬에 대한 자신의 욕심도 컸지만 소련 측의 약점만 과대평가하고 강점은 과소평가했던 첩보부의 잘못된 보고 탓도 있습니다. 저는 히틀러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 중에 자신에 대해 겉으로는 충성을 외치며 속으로는 반기를 품고 있었던 카나리스 제독을 군 첩보부의 수장으로 앉힌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군 첩보부가 보고한 소련군의 사기 실력 무기 배급 등은 직접 겪어 보니 난센스였다고 당시 참모총장인 프란츠 할더가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소련군이 300만 가까이 죽어나간 후에 독일 첩보부는 더 이상 적군, 레드 아미는 남아 있지 않다고 보고 했고 히틀러도 이를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더 많은 소련군, 전차 비행기가 투입됐습니다. 독일은 첩보전에서 완전히 졌습니다. 독일 내부에 간첩이 많았던 이유는 공산주의는 눈에 보이는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어요. 공산주의를 유대인처럼 혐오했던 히틀러 앞에서 당당하게 나 자신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바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겉으로는 히틀러에게 “하일 히틀러”하면서 속으로는 적국인 소련이 승리하도록 바랐던 수많은 독일인 간첩들이 없었다면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두 번째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방어가 공격보다 훨씬 쉽습니다. 명분과 사기 때문이지요. 지금 전력의 비대칭이 극도로 심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머문 이유도 전쟁은 방어가 쉽지, 공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침략당한 민족은 정신적으로 똘똘 뭉치기 마련입니다. 이는 독일 내 소련 간첩의 숫자와 반대로 왜 소련 내부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의 협력자들이 없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전쟁 직전까지 처절하게 진행되었던 숙청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소련군의 최고 실세 투하체프스키 참모총장을 비롯해 독일과 연관되거나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거의 모든 군내 인사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물론 억울하게 죽은 이도 상당수였지만 학살에 가까운 잔혹한 내부 숙청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반 스탈린을 외치거나 스탈린 몰래 히틀러에 정보를 바칠 용기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았던 거죠.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자행된 처절한 숙청은 소련 사회를 전쟁 이전부터 죽음과 친한 사회로 만들었습니다. 전쟁도 아닌데 수많은 사람이 어디론가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던 시절에 소련 사람들은 매일처럼 죽음을 만나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 자신도 언제 끌려가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침략 이래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도 소련인들은 특별히 공포를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스탈린 집권 이후 언제나 벌어진 삶의 한 장면 아니었던가? 초기에 독일군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거의 자살을 시도했던 소련군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기관총에 맞아 즉사했지만 일부는 독일군 진영에 도착해 독일군과 백병전을 벌였는데 이 백병전을 독일군들은 무서워했습니다. 독소전은 엄밀히 말하면 히틀러 vs 1억 9천4백만의 소련인.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히틀러(최측근인 괴링이나 리벤트로프조차 결사반대했지만 히틀러를 막을 사람은 나치 핵심 간부 중에 아무도 없었다)가 일으킨 전쟁이었기에 히틀러를 위해 써울 수는 있지만 죽기는 싫었던 게 당시 독일군이었고 임전에 대한 이런 태세는 후반부에 전세가 뒤집히면서 독일군의 사기를 더욱 낮춘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전쟁을 지휘하는 리더십의 차이. 히틀러는 독소전이 장기화되고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자, 군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지게 되었고 숱한 장성들 모가지를 날렸습니다. 직접 총사령관을 맡은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1600km 떨어진 지역에 있는 1군 사령관까지 겸임하기도 합니다. 많은 서양의 역사가들이 히틀러에게는 듣는 귀가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웬만해서는 장군들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직관과 감만 믿고 결정을 내리니 장군들은 싸울 맛이 났을까 싶습니다. 반대로 스탈린은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보다 주로 듣고 가장 합리적이고 가능성 높은 안을 택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원했던 것은 진실 오로지 진실뿐이었습니다. 진실은 불편합니다. 특히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는 41년과 42년의 소련군의 진실은 최고 권력자가 듣기에는 더더욱 불편했을 것이죠. 그러나 스탈린은 진실보다 허위, 아첨을 더 경계했습니다. 오직 진실만이 통용되도록 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주코프 총사령관은 물론 다른 장군들도 스탈린을 대놓고 비판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형성되었죠. 물론 전쟁 중에만 이랬지, 전쟁 끝나고 스탈린에게 대들었다가는 목숨이 10개라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인류 최악의 독재자로 1, 2위를 다투지만 스타일에서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스탈린은 주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많은 사람들(주로 자국민)을 죽였고 히틀러는 혈통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많은 사람들(주로 타국민)을 죽였죠. 히틀러는 말이 많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지만 반대로 스탈린은 말이 없고 수수하고 검소한 편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화가보다 배우로 대성공했을 것 같고, 스탈린이 소련에서 태어나지 않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마피아 두목으로 성공해 조용히 청부 살인을 지시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하자면 역시 주인공은 문제적 인간 히틀러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히틀러의 변덕 때문입니다. 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가 한창일 때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실각과 동맹의 균열 이후 동부 전선 최강의 SS 기갑 부대를 이탈리아 전선으로 배치했던 사건(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만슈타인 장군은 쥬코프에 진 게 아니라 히틀러의 예측불허의 변덕에 진 것입니다), 쿠르스크 전투는 히틀러는 사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어했지만(이미 적들이 알고 있으니 기습의 효과가 없다고 보았죠.) 승리했다면 모스크바를 뒤에서 포위해 전쟁의 판세를 바꿀 수도 있었던 독일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제가 보는 마지막 이유는 초반에 압도적이었던 독일의 공군력이 슈트로모픽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련의 탱크 킬러 전투기를 만나면서 균형을 맞추어가며 제공권을 잃어간 탓도 있습니다. 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독일 전역이 공습을 받게 되자 동부 전선의 비행기 중 3분의 2를 서부 전선으로 이동시킨 것도 소련의 승리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육군은 숫자에서 소련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제는 공중전에서도 밀리지 않으니 전쟁은 자신들 편이라고 확신하게 된 거죠. 쿠르스크 전투 후 이탈리아에서 제2 전선, 디데이 후 프랑스에서 제3 전선이 형성된 게 어찌 보면 독일 패배의 결정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무기대여법의 혜택을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이 차지했지만 당시 루스벨트 치하 미국은 소련에 지금 현재 가치로 7500억 달러 규모의 무기와 장비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러시아군들은 미군이 제공한 트럭을 이용해 병참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죠. 그러나 독일은 본토와 너무 떨어진 전쟁터에서 오랜 기간 고립돼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이런 지원과 협공이 없이 단독으로 독일과 소련이 1대 1로 승부를 벌였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어쩌면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 역사 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처럼 20년 동안 전쟁이 이어지면서 결코 승부가 나지 않는 전쟁이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