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수능이 끝났습니다. 사실 고 3과 재수생 학부모들 외에 일반인이 수능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날은 오늘 하루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는 학력고사 세대인데 학력고사 끝나는 날이면 공중파 3사가 정규 방송을 하지 않고 정답 해설 방송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와 비하면 수능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죠. 가장 큰 이유는 학령인구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100만 명이 넘게 보던 학력고사 때와 달리 지금은 실제 수능 응시생이 50만 명도 안 됩니다. 재수생은 더 늘었는데도 말이지요. 51만 명이 지원하고 실제 시험 본 사람은 45만 명이라는 이야기는 6만 명이 응시를 포기했다는 거죠. 대부분 현역일 거고, 이미 수시에서 전문대를 붙어서 4년제와 정시에 미련이 없는 중하위권 학생들일 겁니다. 고 3들은 10명 중 8명은 역대 최악의 모의고사보다도 낮은 수능 성적표를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겁니다. 실제 수능과 고 3들끼리 치르는 모의고사는 모집단이 다른 시험이다. 상위권 재수생은 큰 폭으로 늘고 하위권 학생들은 당일 집에서 늦잠을 선택하기에 실제 현역들이 수능을 잘 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수능 성적은 시험 치른 학생들 성적만 반영하고 응시 포기생들은 반영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입시 설명회 때마다 고 3 학부모들은 수능 원서를 써서 당일 시험을 보러 간 뒤 시험에 오답만 골라 표준 점수를 떨어뜨려 내 자녀가 수시로 갈 때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하는 학부모들이 그 수고를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경우보다는 대학을 높이려고 하는 재수 반수생들 그리고 심지어 미용실 50% 할인권을 받으려고 수능을 그냥 치르는 서울대생, 수능 강사로 수능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학원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들 때문에 수능 컷이 메가스터디나 대성 학원 예상보다 항상 올라가는 거죠.
참고로 학력고사를 치른 학부모들은 수능이 학력고사보다 훨씬 쉬운 시험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 기하와 벡터가 있을 때 이과 수학 시험의 난이도 끝판왕 30번은 서울대 수학과 출신 강사들도 1시간 가까이 시간을 투자해 풀 정도였습니다. 제가 스타 강사로 책까지 낸 사람인데 수능 국어 강사 중에서 수능 국어 만점을 받은 사람들을 실제 거의 못 보았습니다. 수능 국어 만점을 받으려면 정말 언어 감각의 신이 되어야 합니다. 수능 영어는 수능을 가르치는 영어 강사들이면 100점을 쉽게 받는 거의 유일한 과목이죠. 연세대 경영대를 나와 증권사에 다니는 증권맨이 재미 삼아 수능에 응시해 경제를 선택해서 보았는데 4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수능은 전 과목이 만만한 시험이 아닙니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재수를 하든 과외를 받든 그 실력은 분명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는 게 마땅하죠.
저는 수능처럼 하루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이 시스템이 너무나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수능에는 실력도 작용하지만 운도 분명 크게 작용하죠. 저는 전교 1등이 수능 당일날 쥐가 나서 시험을 중도 포기한 경우도 보았고 재수생이 보고 평가원이 주관하는 6월과 9월 모의고사는 다 1등급으로 잘 보았는데 실제 수능에서는 3~4 등급을 받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들과 학부모에게는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럽죠.
그래서 말입니다. 저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 수능 100%에 동감합니다. 그 대신 수능을 1년에 적어도 두 번 아니면 세 번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 교육이 파행이 아니라 완전히 붕괴된다고 걱정들을 하지만 러시안룰렛도 아니고 이거는 너무나 잔인합니다. 대한민국은 사실 학벌 사회를 넘어 학벌이 계급이 되어버린 게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5년 동안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학벌을 위해서 가능하면 운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실력의 령향이 좀 더 커질 수 있도록 학생과 학부모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정시를 준비하는 학부모들은 남은 2월까지의 시간이 승부차기를 겪는 골키퍼의 심정으로 살아야 할 겁니다. 이건 좀 너무 심하죠.
마지막으로 이주호 교욱부 장관과 수능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이주호 장관은 아마 개인적으로는 100% 학종이 가장 교육적이고 바람직하며 수능 100%가 가장 비교육적이고 잔인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고 아마 더 강화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수시 학종 비중을 늘리거나 내년부터 폐지되는 자소서 학생부 독서 활동 교내상 자율 동아리 등을 부활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다만 민주당은 물론 국힘 내부에서도 상당히 공감을 얻고 있는 정시 100%는 자리를 걸고 막으려고 할 겁니다. 그냥 지금처럼 정시 40%에서 수시 60%(수시 미등록을 고려하면 사실상 5대 5)의 비중을 그대로 이어갈 겁니다. 정시를 늘린다는 건 사실상 지방대에게는 문을 닫으라는 통보나 다름없거든요. 그러면 서울 특히 강남 서초 목동 그리고 경기도 분당의 아파트는 더욱더 오를 겁니다. 어쩌면 그는 교육부 장관 최초로 입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최초의 장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침 신기하죠. 대한민국의 수능이라는 시험, 정시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어렵고 잔인한지 겪어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모두가 그래도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여론이 절대 변하지 않는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