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철학적으로 점치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메타버스라는 거울은 인간의 어떤 욕망을 비출까요? 바로 가상섹스와 성 정체성 바꾸기입니다. 결국 자신의 현재 성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메타버스에서 여자는 남자로 남자는 여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에게 가상현실이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아닐지라도 가상세계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인 거죠. 넷플릭스는 블랙 미러를 아예 통째로 VR로 촬영할 예정인 듯합니다. 자가 찰리 브루커와 프로듀서 애너벨 존스 콤비는 가상현실로 블랙 미러의 첫 인터랙티브 영화 ‘밴더스내치’를 가상현실로 찍겠다는 원대한 계획까지 밝혔습니다.
(3) 시즌 5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 가상현실에서 인간은 다른 존재로 다른 삶을 살고 싶다
2019년에 만들어진 최신작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정말로 재미있는 스토리였습니다. 주인공은 두 명의 흑인입니다. 두 사람은 정말 친한 친구로 시간이 날 때마다 PS4의 대전 격투 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을 즐깁니다. 이 게임은 PS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철권을 본뜬 게임이었죠. 그런데 한 친구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시점에서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져 오랜 시간 동안 얼굴을 보지 못 하다가 친구의 생일날 조우합니다. 그리고 친구는 우리가 같이 즐기던 게임의 VR 버전이 나왔다면서 언제 한 번 동시 접속해 게임을 즐기자고 권유합니다. 이 역시 앞에 두 게임처럼 특별한 헤드셋을 쓰지 않고 귀밑에 붙이는 패치로 자연스럽게 뇌와 연결돼 뇌가 가상현실을 현실로 여기게 만듭니다. 이쯤 되면 장자가 꾼 호접몽처럼 내가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하는지 현실이 게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는 거죠. 완벽한 몰입감입니다. 이런 가상현실=현실을 만들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360도 완벽하게 회전되는 카메라, 촉각을 완전히 느끼게 해주는 장갑, 후각을 느끼게 해주는 기기 청각을 주변 실제 소음과 구별하여 가상세게만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원천기술이죠. 그리고 건물 등 배경에 대한 완벽한 실사 그래픽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시나리오입니다. 가상현실 속 게이머들이 자유의지로 행동을 선택해서 가상현실을 현실로 완벽하게 착각하게끔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수없이 많이 참여해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완벽한 현실 같은 시나리오를 제공해야 합니다. 아직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창작 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스토리 텔러 AI가 나오지 않는 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스트라이킹 파이퍼스를 비롯 세 편의 블랙 미러가 배경은 현시점으로 두고 가상현실만 발전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가상현실은 현재 IT 기술의 발전 중에 가장 느린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블랙 미러처럼 되려면 엉첨난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여하튼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서 두 주인공은 완벽한 가상현실 속에서 격투 게임을 즐깁니다. 가상현실 게임이다 보니 정말 실감 나게 필살기나 장풍 등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기술은 예측 능력이 없습니다. 절대 기술을 만들기 전에는 기술이 만들어진 뒤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한 남자는 동양인 여성, 한 남자는 백인 남성을 택합니다. 두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는 둘 다 흑인 남성이었죠. 두 주인공은 대결을 마치고 갑자기 격렬한 섹스를 합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스파크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는 동성애일까요? 결혼한 한 남자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불륜일까요? 두 사람은 온라인에서 격렬한 섹스를 치른 후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전에 없던 어색함을 느낍니다.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을 넘어서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기존의 정체성이 너무나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상현실에 섹스가 반영되면 현실이 가상현실에 밀려 현실이 가짜가 되어버릴 충격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헤로인이나 수면제 장기 복융자가 약을 끊기 어려운 것처럼 극도의 쾌감과 몰입감 일체감을 느낀 두 사람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는 서먹서먹해하면서 온라인에서는 가상 육체에 대한 끝없는 탐닉에 빠져듭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현실에서도 키스를 해보지만 그 키스는 온라인에서 아바타들이 나누던 키스와는 전혀 다른 헛헛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격하게 싸우고 이미 결혼한 주인공의 아내는 왜 이 세상에서 둘 도 없는 친구들이 싸웠는지 의아해합니다.
현실보다 더 즐겁고 더 행복한 일종의 경험 기계를 인간이 이처럼 만들어낸다면 이를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경험 기계 속으로 들어가 완벽한 쾌락과 행복을 체험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불편하고 불안전하고 모순 투성이의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답일까요? 예전에 서울대 정시 논술 고사에서 출제된 주제가 바로 이 주제였습니다. 슬픈 현실을 택하든 행복한 가짜 현실을 택하든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겠지만 저는 인간이 만든 가상현실 기술은 결국 완벽에 이르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완벽을 향해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문제가 드러날 겁니다. 그리고 가상현실 속에서 죽을 때까지 가상현실을 현실로 착각하는 매트릭스 급의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언젠가는 가상현실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겠죠. 고통이 없는 쾌락과 행복 100%의 세계가 천국일지는 살아보지 못한 인간으로서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라면 아무리 가상현실이 발달해도 현실 생활에 방해를 준다면 더 늦기 전에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두 주인공이 노력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작가와 연출자는 보여주고 있죠. 가상현실은 어쩌면 인류가 만난 모든 약물 중 가장 강력하게 영혼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시리즈 5편은 경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죠.
(4) 찰리 브루커에게는 블랙 미러 자체를 VR로 만들고 싶은 야망이 있다
저는 블랙 미러를 볼 때마다 23편 중 22편의 원안을 쓴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작가 찰리 브루커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SF적 상상력은 스타 트렉의 작가들인 제임스 블리시(휴고상을 수상한 양심의 문제 원작자죠)나 제롬 박스비(예수님을 1만 년 이상 지구에 살았던 설정으로 충격을 준 맨 프럼 어스의 원작자입니다.)보다 결코 뒤지지 않은데요, 그는 시즌 5 개봉에 맞춰 한국 시청자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은 넷플릭스와 가상현실 영화를 제작할 것이고 2018년에 개봉한 인터렉티브 영화 ‘밴더스내치’가 그 첫 번째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밴더스내치는 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서 게임 개발자인 주인공이 선택을 할 때마다 자막이 떠 마우스로 시청자가 영화 전개를 선택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영화입니다. 선택할 때마다 내용 전개가 갈라져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자유도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갈림길뿐 아니라 버스 안에서 워크맨으로 어떤 음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스토리가 자유스럽게 변화를 맞이합니다. 인생은 큰 선택뿐 아니라 작은 선택도 훗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카오스 이론의 연속이라는 점을 영화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죠. 시청자는 정말 영화 관객이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어버린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넷플릭스가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시물레이션 게임 ‘심즈’로 유명한 EA 게임스의 마이클 버듀를 부사장으로 영입했습니다. 찰리 브루커(옆에 여자는 이 시리즈의 제작자 애너벨 존스입니다.)가 이를 VR 영화로 다시 만든다면 현재의 기술로는 거대하고 육중한 헤드 마운트 셋을 쓰고 눈앞에서 헵틱을 쓴 손으로 스토리를 골라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벌어지겠죠. 현재까지 나와 있는 VR 영화는 15분 정도로 짤은 단편 영화입니다. 1시간 반이 넘는 장편 영화를 이런 장비를 착용하고 즐기려면 조금 더 기술이 진보되어야 합니다. 빠르면 2025년 정도는 되어야 가능해질 것 같다는 예상을 해봅니다. 제가 볼 때 VR 영화는 특성상 1인칭 시점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시청자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선택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는 장면을 예상할 수 있죠. 밴더스내치에서 끔찍한 장면, 아버지를 망치로 죽이는 장면 같은 건-저는 그 선택지에서 다른 선택을 했지만-만약 이 장면을 골랐다면 모골이 송연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VR 영화는 달콤한 쾌락을 줄 수 있지만 도덕적인 딜레마도 연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브루커는 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자세에 기술의 선악이 달라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영화가 인터랙티브와 결합될 경우 내가 신이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예술보다도 도덕적인 논쟁에 휘말릴 여지가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