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원이뤄지면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 3000년의 기다림

by 신진상
3000년의 기다림.jpg

어려서부터 옛날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나온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을 제가 안 봤을 리가 없죠. 구약성경에도 나오고 코란에도 나오는 이 시바의 여왕이 배경이 에디토피아인데 왜 이탈리아의 글래머 미인인 롤로브리지다가 나왔을까 의아해하기는 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시바는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예멘이 주 근거지였고 영토 일부가 에티오피아에 거려 있으니 백인에 가까운 사람으로 묘사되는 게 당연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넘어서 블랙 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클레오파트라를 무리하게 흑인으로 설정한 다큐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해서 욕을 먹고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시바의 여왕을 흑인으로 묘사한 호주 출신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이 올라와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백인 여배우가 나와야 예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어디 저 한 사람이겠냐만은 흑인 시바의 여왕과 흑인 정령 지니가 백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 즉 인종을 초월한 사랑은 정말 넷플릭스든 아니든 요즘 영화계의 대세가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줬죠.

사실 우리는 일본이 정말 아시아를 무시하고 서양인과 백인을 좋아하고 동경한다고 비판하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하죠.

영화는 아웃사이더가 확실한(틸다 스윈튼이 나오면 거의 확실하죠.) 고고학자 틸다 스윈든이 터키에서 강연을 하러 갔다가 햄프의 요정 지니가 담긴 병을 발견하고 세 가지 소원을 말해 요정과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인데 제 흥미를 끈 것은 지니가 한 말이었습니다. 소원을 빌면서 소원을 성취한 후에 결과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났다는 점이었죠. 물론 영화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 행복으로 끝나지만 실제는 어떨까요?

소원과 관련해 가장 유명하고 이 영화에도 소개된 우스개가 있죠.

무인도에 세 사람이 표류했습니다. 그들은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고 다들 섬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 빈 병이 해변에 도착해 뚜껑을 열었더니 램프의 요정이 나오면서 세 사람에게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1번 타자로 나선 사람은 당연히 가족이 함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죠. 두 번째 사람 역시 똑같은 소원을 빌었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비극을 소환하죠. 두 사람이 가니 너무 외롭다. 다시 두 사람을 불러 달라. 이 이야기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어린 시절 웃으면서 봤지만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소원은 행복을 위해 빌어야 하지만 그 실현된 결과가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원 이야기는 개인이 저마다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사회 전체의 행복이 반드시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뜻도 전하고 있죠. 행복은 사회적이라는 게 이 일화의 진정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소원 성취라는 게 분자 생성기로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걸 이동시키는 것(창조는 정령에게도 능력 밖의 일이었을 것입니다.)이어서 결국은 부의 강제 이전에 따른 인근 궁핍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죠. 소원=성취=생복=나만 행복, 남들의 불행=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연쇄는 이런 연유에 기인하는 겁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스윈튼이 정상인이었다면 로또에 당첨되게 해 달라, 영원히 살게 해 달라, 나음에 드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지만 끝내 그러지 않습니다. 아니면 어린 시절 자기 내면에 있었던 또 다른 자아를 실제 만들어서 내 앞에 보여 달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죠.

그녀는 소원을 자신이 아닌 상대를 위해 씁니다. 진실의 사랑을 실제 인간이 아닌 정령에서 느껴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와 인간의 살을 맞대며 사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돈이나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죠.

솔로몬의 저주에 걸린 지니가 인간 세상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두 번의 찬스에서 모두 실패하고 두 사람 모두 불행해진 뒤에 결국 세 번째 주인에게서 자유와 해방과 사랑을 동시에 얻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모든 것 제치고 무조건 사랑을 외친 영화로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종적 편견과 싸우고 외국인들에게 공격적인 일부 영국의 노인 여성들에 틸다 스윈튼이 정면으로 태클하면서 무엇이 정치적 올바름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죠. 조지 밀러 감독은 의대를 중퇴하고 영화판으로 뛰어든 인물인데 매드 맥스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다르면서 반골 정신은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작품을 찍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평범했지만 요즘 넷플릭스와 할리우드가 요즘 어떤 소재에 꽂혀 있는지 알게 해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리호 발사성공, 그러나 버진갤러틱 주가는 상폐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