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상 가장 큰 사건이자 대 재앙이 2차 세계 대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2차 세계 대전하면 떠오르는 인물 1순위는 아돌프 히틀러고, 장소는 아우슈비츠일 겁니다. 아우슈비츠 다음이 우리에게는 좀 억울하지만 히로시마입니다. 아우슈비츠와 진주만이 아니라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가 사람들 뇌리에 떠오른다는 이야기는 일본이 2차 세게 대전에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나 중국에게는 무척이나 서운한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아우슈비츠는 그 자체가 관광의 명소이며 미국에는 수많은 기념관이 있고 스필버그 감독을 포함해 할리우드는 끝없이 관현 콘텐츠들을 만들어내 사람들에게 히틀러가 얼마나 악마적인지, 유대인들이 얼마나 슬픈 역사를 지닌 민족인지를 말해줍니다. 스틸버그가 제작 지원해 98년에 공개된 다큐 ‘더 라스트 데이즈’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6명의 헝가리 유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70년대 알렉 기네스가 히틀러로 나온 유명 영화로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히틀러의 마지막 10일은 브르노 칸츠가 히틀러의 완전 빙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열연했고 그가 부하들 앞에서 패전을 확신하며 분노하는 장면은 숱한 패러디를 만들어낸 영화 ‘다운폴’로 화룡점정을 찍었죠.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유대인들의 학살극도 막을 내렸습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작가 하원의원 등 각계각층에서 맹활약했습니다. 이들은 살아남은 6인이 들려주는 히틀러 최후의 발악의 이야기입니다.
한 생존자는 묻습니다. 도대체 히틀러는 왜 전쟁이 한창 불리할 때 50만 명 이상의 정예군(SS 친위대)을 오직 유대인 색출과 체포 및 학살에 동원했는지 그 인원을 동부 전선에 활용했다면 소련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합니다. 서구의 군사 전문가도 이구동성으로 그 말을 합니다. 히틀러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SS 부대 55만 명을 왜 그는 동부 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유대인들을 찾아 죽이는 데 동원한 걸까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는데 사람은 더 하죠? 모든 인간은 죽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겠습니까? 그래서 최고의 정예부대를 전투가 아닌 학살에 동원해서 유럽 내에서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거죠. 55 만의 병사와 병참 그에 협조한 경찰 인력까지 생각하면 200만 명 이상이 동원된 대학살극으로 전쟁 패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이는 바로 히틀러인 셈입니다.
히틀러의 거의 모든 것이 다 공개돼 있지만 단 하나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지령한 문서기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확인된 것은 이인자 헤르만 괴링이 총통의 뜻이라며 SS의 이인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유대인 말살 정책이란 말 대신 최종해결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통화 내용은 남아 있습니다. 그때가 41년 10월 모스크바 함락의 실패로 사실상 독소 전이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흘러가며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를 박멸한다는 그의 원대한 야망이 무너진 그즈음이죠. 많은 역사 전문가들은 이렇게 해석을 내립니다. 그가 ‘나의 투쟁’에 썼듯이 그는 유럽의 유대인을 박멸하며 소련의 볼셰비키를 무너뜨리고 슬라브족을 노예로 쓰겠다는 원대한 발상 중에 후자의 실현이 불분명해졌기 때문에 전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거죠. 내가 비록 슬라브족은 완전히 노에로 만들지 못하지만 유대인은 완전히 박멸하든지 내가 죽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유대인 학살에 올인을 던진 겁니다.
왜 다큐는 헝가리 유대인들을 다뤘을까요? 그 이유는 44년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 떼 헝가리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 히틀러의 꼭두각시가 정권에서 물러나자 히틀러가 헝가리를 침입해 괴뢰정부를 세운 후부터 벌어졌습니다. 당시 헝가리어를 잘하고 이디시어(중부동부 유데인들의 변형된 히브리어)도 할 줄 알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게슈타포 담당자로 헝가리로 발령이 납니다. 그래서 헝가리는 그동안 완전히 헝가리 사회에 동화됐던 유대인들을 색출해 아우슈비츠 등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43만 명을 전쟁 막판에 학살자 명단에 추기합니다.
한 여성 생존자는 아우슈비츠에서 이 질문을 했습니다. 도착 당일 그의 어머니와 세 동생은 멩겔레를 수장으로 하는 즉결판정단 즉 의사들로부터 DOA(도착 즉시 사망) 판정을 받고 바로 가스실로 갑니다. 그녀는 살아남았죠. 그때 그녀는 물었답니다. “신은 어디 있는가?”
사실 이 질문에 세상에 모든 종교인이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녀도 답을 못 찾고 그날로 신을 버렸습니다. 아우슈비츠는 정말 무신론자들이 신이 없음을 부재하기에 가장 좋은 명분입니다. 아우슈비츠 이전에도 SS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히틀러의 지시로 어린 아기들은 반드시 그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에 먼저 죽였고 심지어 두 다리를 찢은 다음에 구덩이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인간 아니 동물에게도 하기 힘든 그런 짓거리를 한 거죠. 아무리 전쟁 중이고 히틀러에 미친 독일인이라고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만행입니다. 더구나 유럽 국가 중에서 독일은 반유대주의가 가장 약했던 나라였으니까 유대인들은 정말 더 이해를 하기 어려웠겠죠.
6명의 생존자 중에 한 명은 존 더 코만도로 활동한 유대인입니다. 존 더 코만도는 가스실에서 처형된 유대인들의 시체를 태우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201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헝가리 영화 ‘더 산 오브 사울’이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나치가 마지막으로 죽일 유대인들이었죠. 그는 죽으러 들어온 유대인 중에 알고 있는 얼굴을 발견합니다. 그중에 친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빨리 죽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줍니다. 가스가 나오는 구멍 밑에 있어야 빨리 죽을 수 있고 거기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심지어 2~3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산음 하다 죽는 유대인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빨리 죽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어마어마한 휴머니즘을 실천한 사람둘의 이야기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회고록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를 외치게 합니다. 참고로 가스실에서 완전히 생명이 끊기지 않은 유대인들을 SS는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그냥 태워”였습니다.
더 글로리 이후에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 줄 볼만한 게 없다고 아쉬움을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좋은 다큐 한 편 보면서 인간성과 휴머니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