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히가시노 게이고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나오는 족족 읽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마니아들이 많겠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외국 작가 1~2위를 20년 이상 유지해오고 있으니까요. 일단 베르베르 소설의 절반은 동물 소설입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채식주의자이며 수많은 동물 중에서 고양이는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어슐라 르 귄, 파트리샤 하이스미스 등 장르 소설가 중에서 고양이 마니아는 정말 많습니다.
개미 고양이에 이어 그가 선택한 동물은 벌입니다. 벌 중에서 꿀벌이죠. 왜였을까요? 꿀벌도 사랑하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 실제 이유는 역사 소설이며 미래 소설이기도 한 신작 ‘꿀벌의 예언’에 나와 있습니다. 꿀벌은 인간의 구원자로 이미 내정된 미래이기도 하죠. 시대적 배경은 지금부터 30년 뒤 3차 세계 대전을 맞은 인류지만 소설은 조금도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습니다.
책은 3막 총 101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출발은 가스프르라는 11세기 프랑스에서 살았던 예언자의 예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꿀벌에 대한 예언을 남겼는데, 이 예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실제 블랙 미러 중에 이런 주제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꿀벌의 예언'은 가스프르의 예언을 바탕으로 꿀벌과 인류의 미래를 그린 소설입니다. 정말 그의 말 대로 꿀벌이 사라지면서 인류는 3차 세계 대전으로 들어가죠. 3차 세계 대전은 베르베르 소설의 단골 테마였습니다. 제3 인류에도 나오고 문명 시리즈도 사실상 3차 세계 대전 이야기죠. 그가 노스트라다무스처럼 널리 알려진 예언가가 아니라 다소 낯선 인물을 고른 이유는 2022년 러우 전쟁 그리고 2023년 양안 갈등으로 인류 종말의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와 동시에 환경오염과 이상 기후 때문에 생태계는 위협받고 있고 꿀벌이 사라지면 멸종의 연쇄 도미노가 반드시 옵니다. 식물이 사라지고 이어 동물 그리고 최후에는 인간도 사라지는 지구와 생명의 종말이 올 거라는 지극히 과학적인 예언을 모티브로 삼았죠.
이 위기에서 르네라는 프랑스 소녀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프랑스 선전 기사단이 남긴 이 예언서를 찾으며 벌어지는 모험이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소설이 최근 들어 뚜렷하게 불어나는 경향성인 추리 소설적 재미가 배가되죠. 그러면서 역사서 기능도 합니다. 이번에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상식 사전은 통째로 유대인의 역사에 할애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서구 문명의 3대 축이 사실상 유대인의 역사로 시작되었기에 서구 문명의 뿌리를 찾는 노력으로는 가장 적합한 시도였죠. 그의 유대인 역사 이야기는 기원전 500년부터 십자군 전쟁 이전까지 역사를 톺아보는 작업으로 완료됩니다. 그의 소설에서 역시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전생과 최면 이야기는 또 등장합니다. 그는 난제를 만난 인류의 미래를 이렇게 신비하게 풀어갑니다. 최면 중에서 그가 이번 소설에 선보인 것은 후생 최면으로 최면 상태에서 미래를 체험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소설은 그의 전작인 문명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인류의 문명은 지금 정점을 맞이했는가? 그렇다면 인류에게 남은 건 쇠망밖에 없겠죠. 그것을 막으려고 주인공은 노력하는 것이고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 남은 꿀벌을 찾아 꿀벌의 전통적인 의시소통 방식인 춤과 진동을 통해 꿀벌을 설득하고 인류의 구원자로서 활약해 줄 것을 약속받습니다. 디스토피아일 뻔했던 소설을 결국 막판에 유토피아로 바꾼 거죠.
언제나 그렇듯이 치밀한 스토리와 독자를 빨아들이는 플롯은 이번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설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이런 단점도 있습니다. 베르베르 소설은 너무나도 베르베르적이라는 느낌이죠. 주제 선정 이야기 전개 등장인물의 캐릭터화 등에서 베르베르는 거의 20년 동안 같은 구질의 공을 같은 속도로 똑같은 곳에 꽂아놓는 광속구 투수 같은 모습입니다. 베르베르 소설에는 변화구가 없죠. 처음에는 너무 빨라서 인간이 이걸 어떻게 칠까 질리다가도 계속 읽다 보면 베르베르의 소설이야말로 패턴이 있어 인공지능이 학습하기에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재미야 늘 있죠. 그런데 그가 인류에게 말하고자 하는 낙관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역사를 파기보다 기술과 과학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이야기를 정말 미래에 중심을 둔 SF 소설로의 진화를 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든 베르베르는 도전과 호기심보다는 관성으로 글을 쓴다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메타버스 대화형 인공지능(물론 프랑스에서 이 소설이 나온 후에야 챗 GPT가 등장했습니다,)그리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상온 초전도체 등의 기술 이야기가 베르베르 특유의 스토리텔링에 녹아든다면 정말 멋진 소설, 그가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미국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터인데 말이죠. 최근 몇 년 동안 죽음을 제외하면 베르베르 다운 소설이지만 뭔가 새로움이 부족해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항상 남습니다. 그는 일종의 매너리즘과 자기 복제의 늪에 빠져 있는데 사실 그가 듣는 음악들은 핑크 플로이드 에스 제네시스 등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책에는 제가 모르는 빅 빅 트레인이라는 2010년 이후에 등장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이 있더군요.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작은 변화가 쌓이면 독자들에게 새로움이란 매력을 주게 될 겁니다. 꿀벌 이후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주제와 소재로 독자를 메혹시키는 그런 베르베르를 기대합니다. 그래야 예전에 학생부에 문과든 이과든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 독서활동을 못 보았던 그 시절의 인기를 대한민국 청소년 사이에서 회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