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로 얼마 전에 넘버 1을 기록한 게 위 아 더 월드의 탄생 비화를 다룬 ;팝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밤이라고 바꿔 불러도 됩니다. 80년대는 물론 지금 가요팬들도 이름은 아는 마이클 잭슨 밥 딜런 그리고 MZ에게는 생소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MZ들도 너무나 사랑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 그리고 80년대 팝 음악에서 마이클 잭슨과 함께 흑인음악을 이끌었던 라이오넬 리치 등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미국 출신 가수 47명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년 수입을 기준으로 시간 당 페이로 치면 1000만 원은 능히 나오는 가수들이 모인 거죠. 스케줄 맞추기도 장난이 아니어서 LA에서 열린 어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을 기회로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습니다. 모임을 주도한 건 다큐의 메인 인터뷰이인 라이오넬 리치지만 실제 이 녹음은 이 사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바로 미국 최고의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입니다. 이 곡과 이 곡이 담긴 싱글의 프로듀싱 역시 퀸시 존스의 작품입니다.
퀸시 존스는 제가 볼 때 팝음악 역사로 볼 때 마이클 잭슨이나 밥 딜러보다 위 엘비스 프레슬리와 동급 비틀스의 바로 아래 정도 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마이클 잭슨이 솔로 활동 후 모든 앨범들을 그가 만들었고, 그리고 엘비스와 비틀스 전에 팝 음악의 아이콘이었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플라이 투 더 문’ 역시 그가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일본 오다꾸들은 애니메이션 에반겔리온의 엔딩 송을 더 좋아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버전은 프랭크 시나트라버전입니다. 퀸시 존스는 33년생으로 아직도 살아 있는 그는 팝 음악의 전설이자 교과서입니다. 재즈부터 소울까지 흑은 음악에 클래식과 컨트리 등 백인 음악까지 한 음악으로 융합시킨 그야말로 음악의 용광로였죠. 퀸시 존스는 흑인이지만 3번의 결혼 중 두 번을 백인과 했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던 독일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까지 백인 여성을 유달리 사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바람도 주로 백인 여성과 피웠죠.
저는 퀸시 존스 음악의 본질이 섞임이고 이게 미국의 문화의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퀸시 존스가 발표한 3000곡 중 명곡은 81년에 나온 솔로 앨범 듀드에 실린 이 곡 ‘아이 노 코리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보컬리스트가 아니니 작곡하고 녹음을 지휘했고 두 가수 제임스 인그램과 패티 오스틴이 불렀죠. 그는 일본 문화 광팬이엇는데 70년대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오시마 나키사 감독의 영화 ‘아이 노 코리다(일본 명 감각의 제국)’에 바치는 노래로 이 곡을 작곡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팬텀 싱어에서 라비던스가 부른 리메이크 버전이 유명하죠. 저도 패티 오스틴과 제임스 인그램이 부르는 동영상은 처음 감상합니다. 역시 유튜브네요.
https://youtu.be/EFWzZYPilzY?si=Ds2f4KqZrlqGlZ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