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면 귀여운 미소가 떠오르는 작가 기염 뮈소의 신작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읽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 작가죠. 예전에는 이 둘에 아멜리 노통보를 추가해서 빅 3였는데 확실히 노통보는 예전만 못해 보입니다. 귀여운 미소라는 애칭과 달리 이번 소설은 스릴러 서스펜스 물로 전통 프랑스 소설보다 미국이나 영국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는데요, 책 읽은 느낌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흥미진진과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그만큼 그동안 보여준 뮈소의 감각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는데요, 파트리샤 하이스미스 스타일의 스릴러 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고대 그리스 연극 같은 분위기의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기염 뮈소는 지지난 번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에서 우디 앨런급의 놀라운 창의성을 선보였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현실을 섞어 뭐가 소설이고 뭐가 현실인지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죠. 한 가족을 둘러싼 스릴러와 서스펜스는 전작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서 선보인 바 있고 이번 작품에는 전통적인 영미풍의 서스펜스가 고대 그리스 희곡 스타일로 변주되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그를 베르베르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이유는 끝없는 변신의 노력 덕분인 듯합니다., 출간만 되면 무조건 1위 심지어 그 해의 소설 1위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그의 높은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알단 그는 베르베르보다 인물 묘사력이 뛰어납니다. 모든 캐릭터가 영화 주인공처럼 살아서 독자들 눈앞에서 움직이는 실제 인물처럼 보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유튜브 프레임, 위키 디스크 포맷, SNS의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마치 이 모든 이야기가 현실에 기반을 둔 사실적인 스토리처럼 묘사합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와 살라미스 해전을 묘사할 때는 눈앞에 고대 그리스가 환등기처럼 펼쳐집니다. 등장인물들이 마치 실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 숨 쉬며 나누는 대사가 너무나 리얼하기에 그의 소설은 역설적으로 영화화가 어렵습니다. 그 자체가 영화적 발광을 하는데 생동감 있는 묘사력은 영화감독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거죠. 이미 소설을 영화처럼 쓰기에 영화감독이 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실제 그의 인기에 비해 영화화된 작품들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가 베르베르보다 더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스토리의 역동성입니다. 뮈소는 여성적인 섬세한 측면도 있지만 스토리 전개는 굉장히 남성적으로 공격적으로 독자들에게 돌격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센 강에서 이름 모을 여인을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로 구조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 여자가 유명 피아니스트의 도플 갱어로서 암에 걸린 아버지를 항암치료로 이끌기 위해 소설가가 그녀와 짜고 가짜 피아니스트 연기를 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탄탄합니다. 아버지는 속아주는 척하고 아들의 말을 따르지만 이미 본업인 경찰의 본능과 직감에 의존해 그녀가 가짜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도대체 이 여자 뒤에 무엇이 있을까를 밝히는 과정에서 연쇄 살인의 냄새를 맡아내죠. 스토리의 변화무쌍한 역동성은 베르베르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장점입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상상력의 탑에 해마다 한층 한층 충수만 올려가는 베르베르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결국 소설의 반은 스토리가 끌고 가는 겁니다. 기존 SF 소설의 컨벤션에 중독된 SF 마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베르베르보다는 뮈소가 더 매력적으로 비치는 이유죠.
마지막 이유는 팽팽한 긴장감입니다. 베르베르의 소설은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본격 추리 소설인 ‘죽음’조차 조금 느슨합니다. 워낙 사변이 많고 작가의 생각과 베르베르가 전하고자 하는 상식이 많이 개입해 조금 느릿느릿 서사를 진행하는 편입니다. 베르베르는 플로베르나 쥘 베른, 피에르 불 같은 프랑스 작가들보다 영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가 영국의 SF 소설 작가 올라프 스태이플든입니다. 그는 SF라는 이름으로 우주를 통해 철학하는 작가죠. 베르베르의 소설도 플롯이나 캐릭터보다는 작가의 사변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관념 소설처럼 읽히죠. 그러나 기염 뮈소는 팽팽하게 늘어난 피아노 줄을 마치 소고기를 써는 장자의 포정처럼 당겼다 늘렸다 합니다. 그의 소설은 갈수록 빨라집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페이지를 넘길수록 속도가 빨라지는데요, 속도감 역시 베르베르보다 뮈소가 지닌 강점입니다. 소설에서 속도감은 몰입감을 최상급으로 끌어올려주는데요, 이런 몰입감은 여운으로 이어집니다.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강렬한 잔상도 남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그의 소설에서 처음 시도되는 열린 결말로 독자들이 책을 덮고 새로운 상상에 빠지도록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SF 소설의 광팬인지라 그래도 베르베르가 좋습니다. 국내에서 인기와 영향력 면에서 베르베르는 프랑스 작가 중에 여전히 탑 오브 탑입니다. 특히 그가 최근 한국 SF문학의 약진에 기여한 바가 정말 크죠. 베르베르 때문에 김초엽 천선란 이미예 김보영 등의 국내 작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죠. 그러나 본국인 프랑스는 SF소설을 장르 소설로 폄하하고 순수 소설과 순수 소설의 양식을 차용한 대중 소설에 좀 더 후한 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죠. 프랑스에서 대중 소설을 쓰는 작가들 대부분도 자신의 인생의 책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꼽는 것은 그런 프랑스 문학의 전통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중문힉은 뒤마 스탕달 플로베르 때부터 이어지는 고풍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마치 매 순간 프랑스혁명과 68 혁명 같은 새로움을 자체적으로 양산해내는 긍정적 모순의 덩어리입니다. 이 덩어리의 핵심에 뮈소가 자리 잡고 있죠. 이 덩어리에서 베르베르는 완전히 벗어나 음악적(그는 샹송이 아닌 영국의 프로그래시브 록 음악, 제네시스와 예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마니아입니다.)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양식적으로도 영미 SF문학에 완전히 포개져 있죠 프랑스는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나라죠. 대중 문학의 3요소가 감동 재미 스타일이라면 프랑스는 이를 감동 재미 프랑스로 치환했죠. 기염 뮈소는 시종일관 프랑스적이면서도 영화 인터넷 SNS 등 새로운 컬처 코드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죠. 본국인 프랑스에서 베르베르가 뮈소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이유는 이처럼 뮈소가 철저하게 프랑스적으로 읽히고 프랑스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과 강한 상관관계기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