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현역 정치인 중에서 비호감도를 서구 사회에서 투표로 결정한다면 압도적 1위가 푸틴일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푸틴은 시진핑이나 어찌 보면 김정은보다도 부정적 평가가 많을 터인데요 푸틴에게는 기분 나쁘겠지만 제가 붙인 별명이 있습니다. ‘스탈린이 되고자 하는 히틀러’입니다. 본인은 자랑스러운 러시아인이며 러시아 정교회 신자로 그동안 서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매도됐던 스탈린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역사적으로 부활시키는 숙명을 갖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여러 면에서 스탈린보다는 히틀러를 닮았습니다. 일단 그는 지난 전승기념일 5월 9일에 교착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나치 부활을 반드시 막겠다고 했는데, 전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토한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런 궁금증이 들었어요. 누가 누구더러 나치라고 하는가? 푸틴이야말로 나치 아닌가?
푸틴은 잘 아시는 대로 KGB 중령으로 사회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동독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동독에서 청장년기를 보낸 앙겔라 메르켈 충리와는 서로가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르켈의 러시아어 실력보다 푸틴의 독일어 실력이 더 좋다는 평입니다. KGB 중령에서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벼락 출세했던 배경은 친미파인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극도의 혼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일종의 난세의 영웅입니다. 그는 자신이 알던 KGB 요원들과 공산당 간부들에게 러시아 주요 산업을 하나하나 떼 주면서 러시아 특유의 올리가르키를 구현합니다. 스탈린 때는 이런 과두제가 존재하지 않았죠. 히틀러가 자신의 집권에 독일의 기업들의 협력이 절대적이었고 그들을 노동자들의 시위로부터 보호해주고 이권을 나눠주었듯이 푸틴도 올리가르키와 권력을 나누며 그들의 부가 서구의 기업가들과 맞먹을 정도로 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러시아에 일종의 관제 재벌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거죠.
또 한 가지 그가 스탈린보다 히틀러와 닮은 이유는 둘 다 극도의 민족주의자라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그는 소련을 부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전에 소련의 영토 대부분을 다스렸던 제정 러시아를 부활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러시아와 합쳐져야 하는 거죠. 레닌이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크림반도에 대한 권리를 주며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팽배해지도록 키운 장본인이라면 푸틴은 그 싹을 반드시 자르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없이 러시아의 부활 없다는 거죠. 저는 언젠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공격할 거라 예상했고 설사 푸틴이 꿈을 못 이루고 죽더라도 러시아에 민주주의가 정착이 안된다면 우크라이나를 노리는 푸틴의 시즌 2의 등장은 시간문제입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옐친과 고르비와 그 비교하며 무능한 민주주의보다는 먹고살게 해주는 독재를 선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죠. 스탈린은 권력을 돈보다 더 좋아했지만 푸틴은 돈을 정말 좋아합니다. 푸틴은 당연히 공산주의자는 아니고요, 러시아의 영광을 다시 한번을 외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죠. 위대한 아리안족이 위대한 러시아 민족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그다음은 스타일의 유사성입니다. 스탈린은 주로 듣고 말을 꼭 필요한 말만 하는 반면 히틀러는 주로 말하는 쪽이고 귀는 언제나 닫았죠. 푸틴도 그렇습니다. 히틀러처럼 떠벌이 수준으로 장황하게 자아도취에 빠져 말도 안 되는 말을 뱉어냅니다. 머리로도 업을 쌓고 손으로도 업을 쌓고 입으로도 구업을 쌓는 악의 카르마에 갇혀 있는 게 현재의 푸틴입니다. 히틀러와 같죠. 히틀러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던 것처럼 푸틴의 행동과 선택도 대단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성보다는 직관이나 직감에 의존 최종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기만적이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의리를 꼭 지켰던 스탈린과는 다릅니다. 기만술과 협박은 히틀러에게 배운 거죠. 히틀러에 비하면 스탈린은 대단히 이성적인 정치인이죠. 그래서 푸틴을 미국에서는 러시아의 히틀러라고 비꼬면서 풍자하지요. 물론 푸짜르라는 다른 별명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푸틸러가 더 본질에 가까운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푸틴은 스탈린을 넘어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이가 되는 게 꿈인데요. 그게 가능할까요? 독소전쟁이 히틀러의 무덤이 되었듯이 우크라이나가 그의 무덤이 될 여지는 없을까요?
푸틴은 푸틸러라는 별명에 노발대발하는데요, 히틀러가 러시아와 러시아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푸틴이 경기를 일으킬 만하죠. 그런데 푸틴은 히틀러의 이 말만큼은 지금 시점에서 꼭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독소 전쟁이 히틀러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결정한 뒤 장군들은 수동적으로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부추긴 이들은 독일의 장군들입니다. 물론 히틀러가 가진 생각을 확신으로 바꾼 정도지만 생각보다 독일의 장군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죠.
바로바로사 작전 전날인 6월 21일 밤 히틀러는 프란츠 할더 참모총장을 포함해 그가 아끼는 좌청룡 우백호 격인 구데리안과 만슈타인 등 독소전에 참전한 모든 장군들을 모아 놓고(유일하게 빠진 이가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과 싸우던 롬멜 장군뿐이었습니다. 그는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자행한 반인륜적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장군입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히틀러 : “우리가 이길 것 같소?”
장군들 : “예, 100%의 확률로 우리가 이길 겁니다.”
히틀러 : 귀군들은 승리를 그렇게 확신하오?
장군들 : 마 퓨어러(총통각하). 저희는 모두 승리를 100% 확신합니다. 총통의 결정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일 히틀러!“
히틀러 : “여러분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제가 좋아하는 것 알죠? 그 작품을 비유로 하자면 전쟁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문을 여는 것이오. 그 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전쟁을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라오.”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이는 있지만 전쟁을 끝내는 이는 전쟁을 해보기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에 그 누구도 원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이끌고 갈 수도 없습니다. 마치 주식시장과 같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쏟아져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쟁은 흘러갑니다. 결국 장군들의 확신이 틀렸고 침공 직전 순간 흔들렸던 히틀러가 옳았음이 역사는 증명합니다. 푸틴도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쟁이 이렇게 꼬이고 서구가 외환보유액이 600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나라의 경제에 장기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물론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영토 바깥으로 내쫓으면 끝나는 전쟁이라 푸틴이 생명을 걸 정도로 리스크가 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고 러시아의 경제가 악화된다면 러시아 국민의 푸틴에 대한 지지가 줄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릴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죠. 21세기에 히틀러의 부활을 목격할 정도로 인류의 역사가 퇴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