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것은 전쟁이 발발하고 30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군인을 모으고 훈련시키고 실전에 참전한 것은 전쟁이 끝나는 해 4월이었죠. 사실 상 전쟁의 종식에 크게 기여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영국 및 프랑스 등 연합군들도 미국 군대를 믿지 않았습니다. 동네 경찰 수준으로 국경에서 악당이나 아메리칸 인디언만 상대했던 미군이 최신식 무기를 갖춘 독일군과 맞서 싸워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큰 기대를 안 했죠. 그들이 피를 흘리고 자기들끼리 싸운 남북 전쟁도 유럽인들은 동네 깡패들 패싸움에서 힘센 놈이 이긴 정도로 평가절하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까지 미국군은 그야말로 동네 경찰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한 세계 경찰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군대는 어찌해서 이렇게 힘이 세진 걸까요? 그 이유는 미국의 안보 전문가 토머스 릭스가 쓴 ‘제너럴스 : 위대한 장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장군의 리더십 덕분이죠. 미군 주로 육군의 장군들을 2차 세계 대전부터 최근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리더십을 중점적으로 해부한 책입니다.
미군 육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 최강이던 독일군을(물론 전체는 아닌 일부만 상대한 결과지만) 이겼습니다. 두 명의 걸출한 장군 덕분이죠. 바로 패튼과 윌리엄 심프슨 장군입니다. 두 사람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면서 영국군과 소련군과 협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낸 아이젠하워 최고사령관은 리더십을 인정받아 맥아더를 제치고 최초로 직업 군인 출신 대통령이 되었죠.
미군은 유럽 전선 개전 초기에 동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에게 연전연패했습니다. 사망자 숫자보다 실종자(포로)로 잡힌 군인이 많을 정도로 사기도 말이 아니었고 싸울 의지 또한 없었죠. 루스벨트는 이런 미군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며 아이젠하워에게 “우리 미군이 싸울 줄 아는 게 맞소?”라고 묻기도 했죠. 그러다 패튼(사진)이 등장하면서 판세가 바뀝니다. 영원한 싸움닭 패튼은 미군들을 치킨 보이에서 용맹한 수탉으로 변신시킵니다. 패튼은 말하지요. “미국인보다 싸움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너희는 미국인이다. 가서 싸워라.” 패튼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한 군인에게 무엇 때문에 병원에 와 있냐고 패튼이 묻자 지금으로 치면 PTSD 같은 심리적 요인, 한 병사는 신경쇠약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패튼은 병사의 따귀를 때리며 무차별적으로 구타했습니다. “약해 빠진 녀석아. 독일군에게 총을 맞아 죽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라. 전쟁터에서는 총 맞아 죽든지 죽이든지 둘 중에 하나뿐이다.” 심지어는 권총을 겨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죠. “나에게는 징징대는 겁쟁이를 쏘아야 할 의무가 있다. 나에게 총 맞아 죽을래? 아니면 독일군과 싸우다 죽을래?”
저자는 미국 육군의 리더십이 마샬 플랜으로 유명한 당시 미국 육군 참모총장인 마샬에게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적재적소와 상호존중이 마셜 리더십이죠. 패튼은 분명히 예외적이죠. 그런 예외를 시스템 속에서 잘 굴러가도록 만든 이가 바로 아이젠하워입니다. 아이크는 패튼을 해임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의 돌출 행동을 최대한 참으며 끝까지 함께 갑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다음으로 서부 전선에서 극적인 전투는 몇 차례 영화화된 벌지 대전투죠. 실제로 전투에서는 심슨 장군이 패튼 대전차 군단보다 더 빨리 전투에 투입해 독일군의 놀라운 기습을 막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도 호전적이고 공격적이었지만 패튼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했죠. 스스로 낮추는 법을 아는 겸손한 장군이기도 했습니다. 마샬 체계의 사장 성공한 모델이었죠. 세계 최강의 군대인 독일군과 상대하면서 미군은 동네 경찰에서 세계 경찰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연마합니다.
그런데 천하의 독일군을 상대하며 감격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미국 육군이 독일군보다 훨씬 떨어지는 군대들을 상대한 아시아에서는 그 위용을 보이지 못한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거의 농민 군대 수준인 중공군과 북한군에게 미군은 한국전쟁에서 크게 고전했습니다. 중공군은 몇 년 전 자신이 박살 낸 일본군과 붙어 단 한 번도 전투에서 이겨보지 못한 최약체였는데, 미군은 그 숫자를 과소평가하며 안일하게 대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더합니다. 거의 당시 미국 육군의 3분의 1을 투입하고도 승리를 못 했습니다. 저자는 린슨 대통령과 미군 장군들의 갈등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린든 존슨의 군 통수권자로서의 능력은 낙제점이었다는 거죠. 특히 훨씬 더 막강한 독일군을 상대하던 루스벨트와 마샬의 관계를 떠올리면 불협화음이 가지고 온 미군 전체의 사기 저하 및 군인들의 마약에 대한 탐닉과 탈영 등은 세게 최강 미군을 결국 인도차이나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아이젠하워는 39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필리핀에서 근무하면서 네덜라드나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의 지리와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언젠가는 미군이 참전하고 자신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거죠.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전혀 공부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왜 물러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무 준비 없이 전쟁을 시작한 뒤 된서리를 호되게 맞았죠. 전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지 못해 베트남 민간인에게 화력을 낭비하며 민심이 이탈하도록 만들고 스스로 패전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미국이 원하는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했죠. 콜린 파월 합참의장과 럼즈펠드와 소통 또한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현재 위기에 처한 미군이 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큰 성과를 낸 윌리엄 드퓨이 장군(당시는 대위)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돈 스탠리 장군은 그를 가리켜 20세기 미국에서 손꼽히는 군인이며 미국 육군은 그에게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똑똑하고 집요하며 사려 깊고 전문성을 갖추고 군에 적극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장군은 군인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 존재 이유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미군이 세계 경찰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증거는 한국전쟁부터 그 후에 치러진 모든 전쟁에서 최고사령관이 해임된 전통으로 알 수가 있죠. 결국 릭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능력만 보고 인사를 할 수 있는 2차 세계 대전 때의 장군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갈수록 힘이 세지며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으로도 도전하는 지금 그때 그 시절로 미군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