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 고요함, 할머니의 상처와 내 마음 속 균열

by 글림

어제는 고요 속의 풍요라는 글을 쓰며, 오늘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루구나 글을 마친 뒤 집에 가던 길,

갑자기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할머니가 횡단보도에 서 계시다 다리에 힘이 풀려 뾰족한 계단에 무릎을 부딪히셨다.

피가 나는데도 집에 오셔서 전화를 주셨다"며 급히 달려간다고 하셨어요.


전화 한 통에 떠오른 건, 할머니가 아프신데도 그저 혼자 참으며 집으로 가셨을 그 모습.

자식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애쓰며 꾹 참았을 테죠. 그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alex-kalinin-fvleg3f9MK0-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lex Kalinin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응급실로 가셨지만, 입원하지 않으면 치료를 할 수 없다며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가셨습니다. 그렇게 저도 그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하고, 골목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죠.

급한 상황에 마음까지 조급해지면서도 겨우 주차를 마친 후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들 모두 아프고 급한 상황. 대기 시간이 1시간이었고,

응급실 앞에서 또 30분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치료받으러 들어갔지만,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어 문이 열릴 때

잠시 할머니의 무릎을 보게 되었어요. 그곳엔 살이 깊게 파여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분명 4~5시쯤 다치셨는데, 병원에 도착하고 다시 차가 막혀서 다른 병원으로 가는 길도 한참 걸렸습니다.

다행히 결국 치료해주신 의사 선생님이 꼼꼼히 봉합해주셨지만,

상처 부위가 조금 괴사해있어 매일 소독을 받으러 오셔야 한다고 하셨어요.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마친 후, 9시가 되어 집에 돌아갔습니다.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 정말 예측할 수 없었던 폭풍 같았고, 저도 정신없이 녹초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습니다.


다쳐도 아프셔도 바로 곁에 누군가가 없는 할머니.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도 자식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셨죠.


그럼에도, "저녁은 못 먹어서 어떡하냐"며 열무김치를 싸주려 하시는 할머니.

아프신 와중에 자꾸만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할머니.


뭐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저도 모르게 화가 나서,

"주말에 다시 오겠다, 너무 피곤하니까 집에 가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다행히 동생이 와줘서 할머니 모시고 동생네 집 으로 갔지만,


확김에 가족들에게는 냉정하게 행동하고, 제 자신에게도 그런 냉정함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고, 아까는 너무 예민했다며 사과하고,

다행히 약을 드시고 매일 소독하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가족의 아픔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 프란츠 카프카


가족들 모두 일을 해야 하기에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현실.

노인이 되면 목소리도, 힘도 내기 힘든 현실이 이렇게 답답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평화는 그저 폭풍 전에 예고된 것일 뿐,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인생은 정말 스펙타클하죠.


할머니의 긴급상황을 겪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급하게 일이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하나의 팀처럼 협력하고 서로를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거 같더라구요.


작은 준비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꾸준함이 나를 성장시킨다

-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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