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놀 땐 누구보다 잘 놀았다.
같이 웃고 장난치고 신나게 어울리며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부는 나만 빼고 따로였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집에 돌아가 공부하고,
나는 집에 돌아가 다시 놀았다.
그 차이가 성적표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늘 하위권에 머물렀고, 따라잡으려는 마음보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체념이 먼저였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공허해졌다.
마음 한구석이 휑했고, 그 빈틈을 채우고 싶어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아줘", "심심해",
그게 거의 입버릇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할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조금만 관심이 멀어져도 서운해하고,
작은 오해도 키워 싸움으로 번지게 만들고,
늘 외부에 시선을 두고 살아왔다.
20대의 나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30대를 맞이하고 싶지 않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바꾸기 시작했다.
마치 연두부처럼 말랑말랑한 마음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듯 따뜻하게 만들고,
거칠었던 언어는 부드럽게 바꿨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생각을 채우고,
명언을 따라 되새기며,
조금씩 ‘진짜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었다.
가끔,예전의 내 모습과 닮은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면 그들이 어떤 마음일지,
어떤 외로움일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시절의 나에겐 아무도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으니,
꾹꾹 참다 결국 곪아버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혹시 이 글이,
어딘가에서 갈기갈기 찢긴 마음에
작은 연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누군가를 보듬을 수 있다면.
"남에게 쏟던 관심을, 나에게 돌리기 시작하면 인생은 놀랍게 달라진다."
우리는 모두, 관심받고 싶은 존재다.
그건 결국 ‘나를 표현하고 싶은’ 강한 욕구의 신호다.
그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찾게 된다.
성숙은 끝이 없다.
지혜는 언제나 책 속에 숨어 있다.
10권, 단 10권의 책만 천천히 읽어도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외로움은 나를 만나라는 신호다.” — 정여울
조급할 필요도 없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놓아버리던 그때의 나를,
이제는 더는 탓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꾸준함이 나를 성장시킨다
-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