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보고 또 보고,
새로운 여행지를 떠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참 행복한 일이다.
설레서 좋긴 한데,
특유의 치밀한 성격 때문인지
나는 늘 계획부터 세운다.
계획이 없으면 불안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머릿속에 그려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혹시라도 생길 변수까지 떠올리다 보면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여행은 가기도 전에
이미 상상으로 한 번, 두 번 다녀오고
결국 출발도 전에 지쳐버린다.
INFJ의 특성일까,
아니면 치밀함이 단점이 된 걸까.
비용부터 시간대별 동선,
가기 전 챙겨야 할 것들까지.
너무 잘 알아버린 여행은
정작 나에겐 재미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이 간 사람은 늘 즐거워한다.
나는 여행을 즐기러 간 게 아니라
마치 1:1 가이드가 된 기분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
나름의 만족이 남는다.
이 철저함은
여행에서 끝나지 않았다.
가계부에도, 일상에도
체크하고 또 체크하는 습관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맞다, 피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하고 행동했기에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와 있었다.
마구잡이로 새던 소비를
매일 점검하며 바로잡았듯,
먹고 쉬기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곳을 가더라도
1분 1초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하루라는 여행도
나만의 방식으로 계획하며 살고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느껴보고,
다시 점검하는 삶.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앞만 보느라 놓치기 쉬운
‘뒤돌아보는 잠깐’을
놓치지 않는 것.
여행처럼,
가계부처럼,
점검하고 또 점검하듯
하루를 살아간다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차곡차곡 적립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