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싶었던 아이였던 것 같다.
모든 이의 관심이
다 나에게로 향하길 바란,
‘관종’의 아이.
어쩌면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아이 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주저 없이 다가간 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너무 깊게.
상대를 ‘훅’ 당황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또 ‘훅’ 멀어졌다.
타인에게서만 받으려 했던 관심,
인정과 칭찬,
“잘한다”는 말이 있어야만
나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 욕구들은
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를 갉아먹었다.
갉아먹힌다는 것은
한 번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이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지워가는 일이었다.
결국 남은 건
비어버린 나.
사라진 자아는
늘 괴로움과 고통을 울부짖었고
지치고 또 지치는 삶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다.
그 시간은
마치 내가 스스로 만든 지옥 같았다.
모든 것이 나쁘게만 보였고
세상은 비참하게 무거웠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질문은 질문을 낳고
그 질문 속에
나 자신을 가두었다.
더 이상
그 지옥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아주 뒤늦게,
정말 많이 늦게서야
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고독을 선택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비로소 내 자신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려 애쓴다.
타인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살피고
내 목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따라가고자 한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갈망이다.
갈망에 메마른 나에게
책과 글을 선물한다.
한 장, 한 장
채워질수록
‘나’의 존재는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존재하기에 읽고
존재하기에 쓴다.
나와 같은 사람은
나와 같기에
읽고, 쓰기에
가장 알맞은 사람이다.
그대여,
삶이 고통스럽다면
책 한 권 속 문장에
당신의 한 줄을
조심스럽게 덧붙여 보세요.
생각을
더 깊게, 더 깊게
끌어올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아주 깊숙한 곳에서
당신의 내면은
언제나 꺼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부르는 이름을 불러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