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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삶에 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것이리라

3월 21일 _ Hobart

by 와이즈맨

9시에 공항버스를 만나기로 했기에, 7시 30분경 눈을 떠 떠날 준비를 마치고 식사를 했다. 30분여 시간이 남길래 시원하게 큰일(?)도 해결했다. 우유의 덕분인지 멜버른에 와서의 아침이 매우매우 시원함을 느꼈다. ㅋㅋㅋ

공항버스는 YHA라고 써있는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듯 보였다. 어찌되었던 건 간에 공항에 잘 도착하고 2시간 남짓여를 기다려 호바트 공항으로 향했다.

운이 없게도 날개 바로 옆 창가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이륙을 하면서 비행기 날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전 비행에서도 비행기 날개가 저렇게 흔들렸던가?’ 기분 나쁘리만큼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 날개를 보면서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는데, 순간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단 한번도 그러한 경험이 없었는데.’ 마치 자이로드롭이 떨어지는 순간의 기분을 여러 번 느꼈다. 이러다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함을 갖게할 정도로 비행기가 매우 심하게 흔들렸다. 겉으로 볼 때 다소 작아보이는 비행기였지만, 타고 나서는 꽤 큰 비행기라고 생각했는데.

(저가항공이라서 어쩔 수 없는건가?)

그 불안함을 숨기면서 비행에 적응하려고 만만치 않은 노력을 했지만,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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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보이는 비행기, 왜 높지 날지 않는걸까 >


1시간 남짓한 이동 시간에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해본 것 같다.

언젠가 지음에서 술을 마실 때 이정화 대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모두들 제주항공 같이 저가 항공을 꼭 이용해봐야해. 구름 아래에서 날아서 우리나라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거야.’

정화 대리의 말이 그대로 떠오르게 하는 비행이었다. 처음에는 ‘뭐야, 더 이상 안 떠오르는거야?’라고 생각할만큼 비행기가 낮게 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 아래에는 집과 도로와 들판, 그리고 바다가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Google Earth를 바라보는 양. 언제나 구름 위를 날아다녔던 비행기 덕분에 지상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의 경험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 매우 낮게 깔린 솜털 같은 구름이 지나갈 때는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얼어버린 저수지의 모습처럼 옅은 구름도 있었고, 빙점에서 정확히 머문 소주를 잔에 따랐을 때 생기는 결정과 같은 보석과 같은 모습도 있었다.

저가항공이 싸고 위험하다는 말에 기피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으나, 그 광경을 본 사람은 결코 다시금 찾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진한 매력을 그것만이 갖고 있음을 알게해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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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아래 구름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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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아래 구름들 2 >


호바트 공항에 도착했더니 출구 쪽에 과일, 씨앗, ..... 등 음식물을 버리라는 말이 나왔다. 안내책자 어디에선가 본 거 같았는데, 나름대로 태즈매니아 섬이 다른 환경에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듯 했다. 기내 탑승 가방을 들고 나갈 때 강아지 한마리가 와서 킁킁 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데 나한테 잠시 머무르길래 순간 쫄기는 했지만, 그냥 잘 통과했다. 순간 갑자기 드는 생각이 수화물로 부친 나의 음식들이 걱정되었다. ‘수화물은 그냥 통과하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수화물이 나오는 통로에서 역시 그 강아지가 또다시 킁킁 거리고 있었다. 잠시 안내 책자를 받으러 다녀온 사이에 내 가방이 나오지 않는 듯하여 앞으로 가보니 따로 빼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일났네. 머라고 하지?)

“It’s my bag. I didn’t know the banned products.” 순간 당황해서 말도 안되는 말을 지껄였더니 그냥 안에 있는 과일이나 음식물 같은 것을 꺼내라고 하길래, 안심하고 있는 거 다 꺼내서 줬다. 식사 대용으로 아껴 먹었던 사과 다섯개, 양파 하나, 청양고추 4개. ‘우씨, 졸라 아끼고 아낀 것들인데...‘ 그래도 거기서 다른 일 없이 그냥 나올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그 강아지가 괜히 얄미워서, ‘You very smart.’ 라고 하면서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옆에 보안직원 눈치 보면서 살짝 꼬집어 소심한 앙갚음도 했다. ㅋㅋㅋ

암튼 사과는 너무 아깝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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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 받지 못한 과일과 야채들 >


호바트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숙소를 잡았다. 멜버른에서 21불이라길래 왔건만, 결국 24불을 주고 이곳에 머물렀다. 항상 내가 머물게 되는 숙소가 가장 깨끗하고 훌륭한 시설로 가득하기를 바라지만, Backpack이란 여행은 그리 만만치 않은 듯 싶었다. 습기에 쩔어 퀴퀴한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방, 바퀴벌레와의 동침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곳. 2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자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방이었지만, 24불이란 금액은 호주에서는 정말 가치가 없는 금액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태즈매니아에서 어떤 일정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어제 카지노에서 150불을 날리고 난 후에 어떻게든 비용을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예상비용을 뽑아보고, 결국 아끼는 것은 당연하고, 투어를 포기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과연 호바트에서 랜서스톤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투어를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즈매니아에서 아직 호수를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에 Cradle Mt. 만큼은 보고 가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숙소에서 1박만을 신청하고 내일 랜서스톤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 내일 계획

1. Red Line에서 론서스톤행 금액 및 시간 확인

2. 숙소 예약(론서스톤)

3. Cradle Mt. Tour 예약($99 짜리)

3. 체크 아웃 및 론서스톤 이동


(그래, 앨리스 스프링스 캠프 투어를 경험한 후에 캥거루 아일랜드를 포기하면 되지 뭐...... ^^)


그 후에 3시간여 남짓 호바트 시내를 돌아다녀보았다. Visitor Information을 찾았으나 이전 도시처럼 Hobart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투어와 섬 관광지 안내에 대한 정보가 더 많았다.) 결국 지도 한장을 들고 나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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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바트의 편안함 >


처음에는 맘에 드는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호주인의 말처럼 Peaceful하고 relaxed한 도시가 바로 이 곳이 아닌가 싶다. Visitor Center와 숙소를 알아볼 때는 나름대로 시내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는데, 그 후 전몰자 기념비 및 해변과 Battery Point를 따라 돌아다닐 때는 정말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호바트는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이다. 그 물이 바닷물인지 강물인지는 모르지만, 항구처럼 보이는 그 곳을 그들은 River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주변을 따라 크루즈 선박들이 많았고, 그 옆에는 그 유명하다는 살라만카 스퀘어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토요일 오후 3시까지 정말 화려하리만큼 많은 사람과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오늘이 토요일이긴 했지만, 5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라 그다지 분주한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때였다. 하지만, 강변과 작은 공원을 끼고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유럽영화에서 바라보던 여유로운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면서 나 역시 그 안에 동화된 듯한 느낌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저기에 앉아서 나도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했는데... 호주 생활이 2주가 넘었건만 아직 뭔가를 제대로 사먹지 못할 만큼 궁핍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태즈매니아 와서는 해산물을 꼭 먹어보라고 하는데... 아마 그것도 먹지 않고 갈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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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바트의 River와 살라만카 스퀘어 >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Battery Point 주변의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포경을 위한 관찰과 선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쁜, 아주 예쁜 주택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정말 너무너무 예쁜 집들이 많았다. 표현력이 없는 내가 과연 어떻게 표현을 해야 그 모습을 더욱 예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내 삶의 한번 쯤은 이런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욕심을 져버릴 수가 없는 곳이었다. 다소 언덕에 위치하고는 있었지만, 한산하고, 작고 아담한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서 그들만의 도시를 연출하고 있는 모습은 이곳에 오는 모든 이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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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쁨 그 자체의 마을 모습. 아, 사진에 그 예쁨을 못 담았어. >


그리고 더욱 더 추천하고, 꼭 보아야할 것. 호바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산 중턱에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곳에도 달동네가 존재하는구나. 빈부의 차이인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Battery Point를 서성거리다가 우연히 그 곳에 주거하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선 곳에는 산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산중턱 집들의 모습이 예뻐 보여 차고에서 사진 하나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좋은 장소가 있다면서 안내해 준 그 곳에는 집과 나무의 가림이 전혀 없이 호바트의 풍경을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쩜 저 모습을 나폴리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비록 그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바라본 항구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언젠가 호바트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꼭 그곳에 가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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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바트의 여유 >


처음 호주에 와서 브리즈번에 떨어졌을 때, 신기한 고딕양식의 건물에 매료되었지만,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을 거치면서 도시의 매력은 이미 서울에 와 있는 듯한 일상 같은 느낌이 되어 버렸는데, 도심을 떠나 자연과 풍경을 가졌던 곳들은 나에게 아직도 깊은 인상을 남겨 주고 있다.


도시에서 자라 도시 밖에 모르는 이들은 이곳이 왜 아름다운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여유를 알고, 또는 원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차 한잔을 마셔도 회색 건물 아래서가 아니라, 바다와 강과 산을 바라보면서 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청명한 하늘 아래서...

그것만으로도 마음 속에 이미 삶에 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것이리라...

호바트... 너무도 추천하고픈 아름다운 도시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Cradle Mt.를 계획하지 못해서 거의 이틀의 일정을 호바트와 론서스톤을 이동하는데 보낼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강을 낀 산의 아름다움을 바라면서, 아쉬움을 기대로 바꿔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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