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_ Melbern
벌써 게을러지고 있는건가? 여행에서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일찍 잠들고 내일 다시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시계는 8시 이전에 맞추어 놓았었지만, 정작 눈을 뜬 시각은 또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침을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씻고 Bar에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어제와는 달림 학습된 경험이라 헤매지 않고 준비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시내를 둘러보고 시간을 내어 Garden에서 책도 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아직 City Circle을 타보지 않았기에 그것을 타고 이동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서부 해안을 가보고자 세정거장을 지나 그 근처에서 내려서 슬슬 주변을 거닐었다.
사실 오늘은 카지노에 한번 가볼 계획이었다. 카지노에 가서 잠시 앉아있다가 공원에서 책을 보고 돌아와 김치를 볶아서 가져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난 도박을 하면 안돼......'
서부 항구인 Dockland를 지나서 어제 들렀던 그 카지노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30분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게임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내가 돈을 벌려고 온 것도 아닌데 잠시 놀다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무 자리에 앉아서 50불을 교환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30불만 생각을 했는데, 왠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50불을 그대로 교환을 했다. (뭐가 창피했을까) 그게 나의 두번째 실수였다. 첫번째 실수는 카지노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100불짜리 지폐를 지갑에 넣어왔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왜 그 지폐를 꺼내온 것일까. 그게 가장 큰 나의 첫번째 실수였던 것이다.
카지노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칩으로 교환한 돈을 고스란히 카지노에 반납하고 간다고 하는데, 나의 50불 역시 금새 동이 나고 말았다. 거기서 그만 하고 일어났어야 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이도 없었고,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는지... 거기서 세번째 실수가 발생했다. 난 지갑 안에 남아있는 100불짜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나마 딜러한테 50불만 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Cash가 없다면서 50불은 작은 칩으로 주고, 나머지는 25불짜리 칩으로 주었다. ‘그래, 나중에 이것 바꾸러가면 되겠지.’ 하지만, 이미 시작된 도박증세가 거기서 멈출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못했다. 결국 난 오늘 150불이란 거금을 그 안에서 모두 털리고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150불’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아껴볼려고 아둥바둥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2주가 넘는 시간동안 식비로 쓴 돈이 100불 남짓 밖에 안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 돈을 다 날려버리고 말다니. 카지노를 나오면서 정말 오랜만에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이것 밖에 안되는 인간이었던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강해지자고, 독해지자고 말하면서 노력했건만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다니. 사실 그 이후에 오늘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를 부여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모든 의지와 용기를 상실한 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올 수 밖에 없었다.
(불쌍한 인간, 나약한 인간)
아니, 넌 불쌍하다고 나약하다는 동정조차도 아까운 인간이다. 만일 니가 오늘 이 일을 겪은 후로 아무 것도 느끼고 배우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버린 다면 정말 넌 더욱 비참하고 볼품없는 인간으로 변해가 버릴 것이다.
오늘 일을 겪은 후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까. 울고 싶을 만큼의 좌절을 느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술, 담배, 섹스, 도박, ...... 빠져들수록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의 유혹 속에서도 잘 관리하고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거지?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서 그런 유혹의 바다 속에서도 잘 헤엄칠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너 스스로가 그런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넌 결코 다시는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다가가서는 안된다. 아니 그 파도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용서가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수많은 삶 속에서 모든 유혹을 다 피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당면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밖에 없을테고. 그렇다 한다면 결국 그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인데.
(넌 그 힘을 길러야 할 것이야)
처음부터 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항상 의식하면서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준비하고 노력할 수 있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 비록 150불이란 큰 돈을 오늘 잃기는 했지만, 150불로서 앞으로의 좌절을 막을 수 있다면 그다지 큰 값은 아니지 않을까? 잊는다는 말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믿고 노력하자.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안하다, 병주야. 오늘 네게 또 한번의 좌절을 맛보게 해주었구나.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얻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카지노 사건으로 인하여 오늘 하루가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닌, 남은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라 여기면서 내일 호바트로의 여행을 다시금 계획해본다.
병주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