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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해

4월 1일 _Adlaide

by 와이즈맨

여느 날과 다름없이 7시 30분 경 울리는 알람시계 소리에 눈을 떴다. (이제 다소 버릇이 되어버리고 있는건가?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살자고 다짐해 왔는데, 이런 생각을 반영한 변화이겠지?)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피곤한 아침이었다. 어제 탁구를 쳐서 였을까? 다리의 무거움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결국 8시 30분이 되어서 침대에서 나와 손등으로 눈곱을 비비며 자동적으로 키친으로 향했다. 여행 기간 동안 원하는 것을 제대로 먹지 않고 살고 있지만, 숙박비에 포함되어 프리로 주어지는 것들은 어떻게든 챙겨먹어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만이 아직 잠이 덜 깬 나에게 남아있는 듯 싶었다. (아, 이전에는 항상 씻고 나서 방을 나왔는데, 이제 타인의 시선은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는가보다.)

함께 방을 쓰던 한 친구 역시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식사를 함께 했다. 나름대로 식빵과 우유, 커피가 있었고, 팬케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준비도 되어 있었다. 식빵 세조각과 한 잔의 우유로 식사를 준비하던 중, 며칠 전 친구들의 식사를 챙겨주던 리오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함께 머물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나도 작은 나눔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을 먹으면서 한켠으로는 방에 머무르고 있는 두 친구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했다. 방으로 그들의 식사를 가져다 놓으니, 잠에서 깨어나는 친구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형,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행복감이 공존함을 느꼈다. 고맙다는 말에 좋으면서도 부끄러웠고, 나로 인해 누군가 또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이 큰 행복이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어제와 오늘은 나름대로 예전과 다른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이곳저곳을 열심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려 노력했던 지난 모습과는 달리,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지가 않았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기쁨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기쁨이 커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 게을러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일까?

사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었던 이유에는 두가지가 있었던 듯 싶다. 이곳에서의 추억과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한가지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둘다 소중한 이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행 속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즐거움 이후에는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에 소원해졌음을 느낀다.


그래도, 안에서 혼자서 머무르는 것보다는 밖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이 더욱 바람직함을 알기에, 1시간의 게으름 이후에 숙소를 나섰다. 애들레이드는 다른 도시와 달리 City Bicycl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숙소 맞은 편에 그 시설이 있어 자전거를 빌려 시내와 주변을 돌아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였다. (한 때는 트라이애슬론 40km 싸이클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자전거를 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 때의 추억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자전거로 30분 정도 거리에 해변이 있는 듯 했다. 해변을 구경하고자 강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전거를 안 타던 사람이 안장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나름 고진감래의 시간이 필요하다. 20여 분쯤 달렸을까? 갑작스런 자전거에 결국 엉덩이 뼈에 무리가 왔다. 해변까지 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고, North Adlaide 주변을 거닐기로 맘을 먹고 자전거의 핸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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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로운 아들레이드 >


North Adlaide는 여유로운 도시 같았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느낌을 만나지는 못했다. (내가 도시에 흥미를 잃은걸까...) 이 도시를 계획한 라이트 대령이 서있다는 라이트 전망대와 St. 피터스 성당이 그나마 가볼만 한 곳이었다.

라이트 전망대는 이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이었다. 100여년 전의 도시는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낮은 언덕에서 보이는 것은 나무 너머로 보이는 고층 건물 뿐이었다. 피터스 성당 역시 역사를 품고 서 있는 건물이지만, 호주에서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물을 계속 보아왔기에 큰 감흥이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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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트 대령과 그가 바라보는 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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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스 성당 >


1시쯤 숙소로 돌아왔던가? 더운 날씨의 지침과 함께 엉덩이의 아픔은 오후 시간까지의 이동을 허락치 않았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목마름과 허기짐, 그리고 피곤함을 느꼈다. 결국 잠시 누워있는다는 것이 근 2시간 이상의 낮잠을 자고 말았다. 한국 친구들이 돌아왔을 때서야 비로소 눈을 떠 침대를 일어날 수가 있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 경험해보는 낮잠이었다. 그동안 체력도 많이 소진되었는지 쉽게 피곤함을 느꼈나보다. 그래서였나? 그런 와중에 찾아온 낮잠은 정말 달콤함 그 자체였다. )


Coles 마켓을 갔다. 식빵이라도 살까해서 갔지만, 결국 당근과 양파, 계란을 사들고 돌아왔다.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였고, 저녁거리라도 만들고자 했다.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함께 있던 친구들이 돌아왔다. 저녁을 먹겠냐는 질문에 그들은 저녁거리가 없는지 그저 무덤덤한 대답이었다. 결국 혼자 식당으로 왔지만, 혼자서 뭔가를 먹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부담이 있었다. 결국 남은 쌀과 미역을 탈탈 털어서 친구들과 함께 할 식사를 준비했다. 쌀이 부족할 듯 했지만, 밥을 하고 보니 세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야채볶음도 훌륭했고, 미역국도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었고, 더욱이 당근과 함께한 계란부침도 좋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저녁은 더욱 근사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식단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음이 더욱 소중했다. 아침에도 그러했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 정말 맛있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표정 하나하나가 나에게 부끄러움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아, 식사를 마쳤을 때 독일 친구 마커스가 키친에 들어섰다. 순간 우리끼리한 식사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가지고 있던 계란으로 계란 프라이를 선물했다. 모양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면서... ^^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남은 저녁,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해."

한국인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서 지금 스쳐가는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고 여긴다는 말을 했다. 그러기에 늦잠을 자는 것이 아깝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뭔가가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하루하루가 느리게 지나가는 것은 지금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이고, 시간이 금새 지나버렸다는 것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 시간을 의미있는 사건으로 보내면 하루가 빠를 것이고, 한달의 시간이 수많은 사건들로 이루어진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내일은 인생이란 퍼즐의 보다 의미있고 알찬 한 조각이 되기를 바래본다. .


참, 오늘 한국 친구들이 카지노에 가서 30불을 잃고 왔다고 한다. 호주에 와서 아끼고 아끼고 살다가 순간의 실수와 욕망으로 30불을 날려서 매우 우울하다고 한다.

(음, 나도 그랬었는데...)

(괜찮다. 그 30불로 앞으로의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살 수 있었던 것일테니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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