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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뒤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4월 2일 _ Adlaide

by 와이즈맨



몸이 많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이제 끝이 보이기 때문에 긴장이 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흘, 일주일, 그리고 5일. 점점 줄어가는 호주의 시간을 세면서, 남은 시간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보다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않냐는 생각이 순간 밀려온다.

'반드시 특별함을 찾지 않아도 내가 여행이란 시간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함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뭔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존재를 잊지 않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함의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병주야, 멋지게 포장하려 하지 마라. 웃기지 마. 합리화일 뿐이야. 힘들고 피곤하니까, 너의 나태함을 옹호하기 위한 생각인 거 잖아.

'분명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시간 속에 그저 머무르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나를 중심으로 시간이 스쳐감을 느껴보자구.'

시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으른 상상은 과거 속에 남겨두기를 바란다.


오늘은 와인으로 유명한 남호주의 와인 농장 지역을 가볼 계획이었다. 버스 터미널이 가까이 있었기에 아침 시간의 여유있는 늑장 이후에 터미널로 갔다. 남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투어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둘러보기 위해서 버스를 선택하기로 했는데, 버스비가 상상 이상임을 알았다. 왕복 36불? 난 그저 왕복 13불인줄 알았는데... 순간 와인농장을 구경하는 것보다 36불이 내게 더 가치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포도 농장에서 새로운 뭔가를 느끼기 보다는 그저 내가 거기에 갔었다는 이유밖에 없을텐데. 결국 포도 농장을 둘러보기를 포기하고 시내를 횡보했다.


나름대로 숙소 근처에서부터 이곳 저곳을 길을 따라 다녔다. 나중에 여행책을 보니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을 충분히 돌아본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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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레이드 런들몰의 명물, 돼지 네마리 >


여느 한국인 여행객처럼 카메라를 손에 움켜 쥐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셔텨를 눌러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어느 순간 내가 가장 많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하늘과 구름임을 알게 되었다. 곧게 뻗은 도로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그 하늘은 맑고 푸르름을, 구름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만큼 비단과 같이 부드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산 적이 거의 없었는데... 항상 하늘 높이 서있는 빌딩 아래에서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만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뜨게 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맑은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저 하늘을 깊이 간직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과 기억으로,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찾고 싶은 그곳으로... 그리고 내가 돌아갈 대한민국의 하늘에도 저리도 맑은 그것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항상 앞만 보고 빠르고 급하게 나아가기만 했던 순간, 우연히 그 뒤를 돌아보면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과거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 다시 그 길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내가 지나온 그 길 속에서 다시금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 소중함을 간직하기 위해서 내가 만나야 할 길에 더욱 깊은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뒤돌았을 때 아름다운 하늘과 도시의 조화를 볼 때면 지나왔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더욱 값진 감상을 선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것은 분명 열심히 지나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값진 보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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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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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 >


(아, 배고프다.)

지금 시각 7시. 아침 식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니 안 먹었다. 나름대로 점심값이라도 아껴야한다는 생각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나 먹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큰 미련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물론 내 앞에 음식이 놓여있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어떻게든 먹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던 때는 없으니까. 함께 방을 쓰는 친구들이 돌아오면 그 때 같이 먹으면 되지 뭐.

그리고 오늘밤에는 한국친구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즐겨볼까 한다. 만찬이라 해봤자 함께 맥주를 마시는 것이 전부이겠지만, 그 안에서 아들레이드에서의 즐거움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지.

도시와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내게는 더욱 큰 즐거움이란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들에게 즐거움과 추억, 그리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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