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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I help you? 혹시 도움이 필요하니?

4월 4일 _ Perth

by 와이즈맨

어제밤 비행기를 타고 마지막 여행지인 Perth로 날아왔다. 브리즈번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버스가 없어서 고생했던 것과는 달리 밤늦게까지 운영했던 공항버스로 인하여 예약했던 Swan Barracks까지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행운은 여기까지 였을까? 글쎄...'

어제 오후에 나름대로 밤늦게 도착할 것을 고려하여 숙소를 예약을 해두었는데, 누구의 실수인지 모르지만, 예약한 이곳에서 나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도 계열로 보이는 사람이 나름대로 일일이 체크하면서 확인해주었지만, 결국 30분이란 시간을 실랑이를 하고 결국 그곳을 떠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직원의 실수로 인하여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에 대하여 너무도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했어야만 했던 일은 오늘밤을 과연 어떻게 어디서 보내야할 것인가에 대하여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뿐이었다.


허탈함을 등지고 Swan을 나섰다. 금요일 밤임을 알려주는지 길거리에는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도 클럽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증을 들고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도 연출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숨을 쉬고 있는 우리들이었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극명하게 달랐다. 시간을 더욱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즐거운 고민을 해야 했다면, 난 오늘 밤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하는 힘겨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것 역시 다양성인 것인 것? 과연 그 차이는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글쎄...


나름대로 안내책자에 적힌 연락처를 가지고 전화를 두드리고 있었다. 우연히 방이 있다는 곳을 찾아서 길을 나섰지만, 이상하리만큼 Perth의 지도는 방향을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인근에 보이는 경찰서를 찾아서 길을 물어 그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전화를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방이 있다고는 하는데 싱글룸으로 39불짜리라는 황당스러운 대답 만을 들을 뿐이었다. 다시금 처음 전화를 했던 곳으로 문의해보니 거기도 YHA로 회원증이 없기에 36불을 달라는 것이었다. 갈길도 멀었을 뿐만 아니라 36불이란 돈이 쉽지가 않아서 차마 발걸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안내 책자라고 하나 있는 것이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으니...)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큰 불편함을 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주어진다면 오류정보를 모아서 출판사에 전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지불해야할 시간이 더욱 크지 않을까?


가방을 메고 한시간 여를 걸어다녔다. 20kg의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또 7kg의 또다른 가방을 앞에 메고 길을 헤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시간이 흘러갈 수록 나에게는 오늘 묵을 수 있는 방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마저 커지고 있었으니, 그 무게감은 더욱 커져갈 수 밖에...


그 때 Charlotte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이 들었다. 아파트를 구했다는 말을 들었기에 하룻밤 묵을 수 있을까하는 상상도 해보았지만, 늦은 시각에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었고, 서로의 친분이 허락치를 않고 있었다. (어쩜 그것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아직은 버틸만한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다못해 공원을 찾아서 잠을 자도 되는 것이고...)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그 때 내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동양 여성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한국 사람인가?) 방도 못잡아서 짜증나고 있는데 혹여나 귀찮지는 않을까 싶어서 무시하고 묵묵히 전화를 하고 있을 때, 투박한 영어가 들려왔다.

“Can I help you?”

아까 뒤에 있던 그녀들이 내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홍콩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큰 가방을 짊어 메고 공중전화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뭔가 곤란한 일이 있는 듯하여 도와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행운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방을 잡기 위해서 이러고 있다는 말을 하니 나름대로 다소 여유가 있는 숙소를 알려주기도 하고, 인근에 있는 숙소를 직접 가서 방이 있는지를 물어봐주기도 하는 감사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녔던 곳은 이미 나도 다녀봤던 곳이었기에... (하지만 도려주려는 그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지는... 모두가 경험을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들이 알려준 숙소로 전화를 해보았다. 다행히 아직 bed가 남아있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나름대로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 때쯤이었는데, 그 순간이 정말이지 너무도 고마웠다. 그 마음에 그들의 연락처를 묻고 시간을 내어 다시금 만나서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래야지... 꼭...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쩌지...

그렇게 2시간여를 보내고 숙소에 가서 잠이 들었다. 너무 늦은 시각에 피곤함이 가득했기에 씻을 생각도 없이 그저 잠이 들었다.


9시가 넘어 일어나서 (피곤했는가 보다. 시차도 2시간 30분이 넘기에 더욱 피곤했나?)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금 Swan Barracks에 방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제는 방이 있단다. 금요일을 넘었으니 나름 여유가 있는 모양이지? 짐을 들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다고 숙소 앞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밤 이곳에 호주에 처음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 고민을 하고 있단다. 부산에서 온 매우 순박한 청년. 말투도 어눌하고 낯선 곳에서의 용기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 모습의 사람.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지만 나도 그를 돕고 싶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니?'를 물었다. 브리즈번으로 간다는 말을 하길래 비행기 티켓도 구하기 힘들 테니, 당분간 묵으면서 적응을 하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하고, 나와 같이 숙소로 가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에게도 더 큰 운이 있었나보다. 새로운 한국 여학생 두명을 만났는데, 그들도 어제 호주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들은 함께 얘기하며 호주에서의 내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 나름대로 나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웃으며 헤어졌다. 순박하고 어눌한 그 친구가 이 곳 호주에서 자신감도 찾고 많은 경험을 하고, 다시금 웃으면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기대하며...


오늘은 간단하게 North Perth 지역을 돌아보려고 했다. North Perth는 저 멀리 보이는 시내와는 달리 매우 조용하고 레스토랑과 술집이 많은 지역이었다. 나름대로 방콕의 카오산로드 같은 느낌? 외국 여행객들이 모여 머물다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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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 젊음이 느껴지는 North Perth >


그러다 우연히 들어선 곳에서 차이나타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차이나타운이라고 말을 하지만, 그곳은 아시아 타운이란 말이 더욱 어울릴 것 같았다.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의 식품점과 식당들이 즐비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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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th의 아시안 상점 >


그곳을 지나다 우연히 “one dollar a bag”이라고 외치는 아저씨를 따라 시장 같은 상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과일을 너무도 싸게 팔고 있었다. 사과 4개, 자두 4개, 토마토 4개를 샀는데, 2.5불. “You are very cheap.” 돈을 내면서 말을 했더니, 점원은 그저 웃음으로 대답한다. 가격과 품질이 비례한다는 말인가? (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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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 dollar a bag , You are very cheap >


잠시 길을 걷자고 시작했던 걸음이 Perth Station을 지나서 Swan river까지 이르렀다. 그 사이 가장 번화한 길도 걸어봤다. 그런데, 항상 그랬지만, 그러한 번화한 모습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 모습은 서울 어디에서도 볼 수 있으니... 더불어 내가 그 곳에서 뭔가를 사면서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Swan강을 지난 후에 어제 홍콩 친구들이 말했던 Kings Park를 가보았다. 스완강을 끼고 언덕위에 위치한 그 곳은 정말 이도시의 명물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을 듯 싶었다. 곱디 고운 잔디와 스완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경. 그곳에서 책을 읽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나오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부, 국회에서도 이런 공원을 더욱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아파트와 빌딩을 더욱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의 성품이 원래 여유가 있어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넓은 땅이란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여유란 것을 배우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빨리빨리, 당장을 외치는 우리들에게도 환경이 주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천성이 그렇다 할지라도 환경의 주는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하다못해 인근에 공원이 있으면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기회도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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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gs Park에서 보이는 풍경, 참 넓다 >


참, 오늘 식당에서 라면 하나를 잃어버렸다. 누군가 훔쳐갔다. 바로 옆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길지 않은 그 시간에 누군가 나의 관물대에서 그것을 가져갔다. 누구나 내게 없는 뭔가를 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견물생심? 나 역시 그렇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이성을 갖고 있다라는 것은 그러한 본성을 억누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욕구가 생길지라도, 그 욕구를 잠재울 수 있는 강한 이성이 있어야만 진정 현명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샤롯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홍콩 친구들과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고마움을 잊지 않고 꼭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피곤한 하루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퍼스에서의 시작이 불편했던 것만큼 그 끝은 더욱 화려함으로 남아 나의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정말 편하게 푸욱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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