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_ Perth
퍼스에서의 두번째 날을 보냈다.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가 중계되고 있다. 박지성은 오늘은 결장할 듯한 모양이다. 나름대로 낯선 땅에서 많은 이들이 이 경기를 보고 있는데, 한국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식목일이었구나. 나무 심는 날인데, 과연 한국 땅에서는 나무를 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자연이 아름답고 공원을 잘 꾸며놓은 이곳과 한국을 잠시 비교해본다. 어릴 때 나무를 심으면서 자연환경을 가꾸고자 했던 것처럼 다시금 식목일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식목일 뿐만 아니라 항상 자연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볼 수 있기를...
공짜로 제공되는 아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늦잠을 멀리해야만 했다. (공짜가 아니지. 어차피 숙박비에 모든 것이 포함되고 있었을 테니.)
방금 호날두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프리킥 찬스를 놓치지 않고 긱스라 흘려보내준 볼을 골망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정말 훌륭한 골이다. 호주에서 지켜보는 맨유의 경기의 느낌이 새롭다.
식사하러 식당으로 향하던 중 한국말을 하는 두명의 여자를 보았다. 나름대로 식당에서 식사를 챙겨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 그렇게 아침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서른둘의 나이에 늦지 않게끔 마지막 경험을 하고자 이곳에 워킹으로 왔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두사람의 모습이 훌륭하게 보였다. 식사를 하면서 함게 프리맨틀로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들이 함께 묵는 독일인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지라 조금 불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우선순위가 있을지라도, 함께 하는 순간에는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 하기 나름이겠지만...
11시가 다되어 그들을 다시 만나고 프리맨틀로 향했다. 낯선 독일여자가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나를 맞아주었고, 함께 하는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첫 인상은 다소 무서웠다고 해야할까? 나보다 더 큰 체격에 인상도 그다지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 그런 모습? 나름대로 깡패같다는 인상도 받고...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사실 그다지 쉽지는 않다. 언어가 편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하기에 많은 것이 다르다. 서로를 배려하는 것부터 음식을 정하고, 갈 곳을 정하는 것까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독일 친구가 나름 이곳을 잘 알고 있었는지 안내를 해주고는 있었지만, 함께한 두 명의 한국 친구들은 독일인을 따라가는 것에 그다지 만족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난 그 사이에서 뜨내기 같은 역할이었다고 할까? 독일인은 혼자서 앞질러 가기를 좋아했고, 한국여성 두명은 함께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 역시 혼자서 조용히 걷고 바라보고 싶었지만, 독일 친구를 혼자 두는 것도 미안했는지 결국 난 독일 친구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독일 친구를 챙겼나? 결국 우리는 한국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난 독일 친구에게 그들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말했는데, 그녀는 필요하면 그들이 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를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차이점이 서로간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둘만이 남겨졌다. 어쩔 수 없이 둘이서 함께 방파제를 걷고, 등대를 따라 걷기도 하고, 또 North 프리맨틀로 가서 해변가에서 석양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바다가 반갑기도 했다. 석양이 내리기 전까지 뜨거운 태양볕에서 머무르는 게 힘들긴 했지만, 브리즈번부터 이곳까지 오기까지 호주의 서쪽 퍼스에서의 석양은 꼭 보리라는 생각을 했기에 오늘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두어 시간 동안 석양을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가 그전의 느낌보다는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한다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에게 베풀면서 살고, 더욱이 뭔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한다는 얘기를 했다. 23살이라는 저런 생각을 한다고? 한국에서 25살의 친구들에게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을 어린 나이의 외국 여성에게서 들었을 때,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그녀는 의도적으로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더라.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훌륭했다. 다만, 그 생각은 나와 조금을 달랐다. 난 진정으로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데... 아직 믿음과 시간이 부족했기에 지금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일 뿐...
아무튼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음... 나름대로 호주의 마지막을 앞둔 시간에 맘이 맞는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 다소 직설적이고 개성이 강해보이기는 했지만, 그 맘 속에는 남들을 배려하고 베풀 줄 아는 마음이 있었다. 단지, 그의 문화권 자체가 우리와 조금 달랐을 뿐...
숙소에 돌아와서 그녀들의 방으로 갔다. 한국인들은 이미 그들의 숙소에서 농장일을 하기 위한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냥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안한 감정이 너무 앞섰다. 독일 친구의 탓으로 변명하기에는 나의 적극성이 부족했던 것이기에 결국 나의 실수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 우유를 사서 시리얼을 준비해주면 그 미안함을 대신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호주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지금 서쪽에 와 있다. 나름대로 내가 이동한 거리가 음... 대한민국 해안 일주보다도 더 긴 거리를 달렸겠지. 이곳에서 지는 해도 바라보면서 석양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이제는 돌아가야한다. 나에게는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서 해야할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그것들을 위해서 나의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내일과 모레는 아마도 그것들을 위한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나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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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넘겨 다음 날 아침... 어제밤 기억을 되새기며...
어제 밤 맨체스터 Unt.의 경기를 보고 잠을 자면서 든 생각이 있어 글을 남겨본다.
잠을 자면서 호주에서의 한달을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았다. 피곤한 마음에 많은 생각을 해보지는못했지만, 한가지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호주에 처음 와서 브리즈번에서 묵을 때 며칠 간 불면증에 시달렸었다. 나름대로 낯선 곳에 혼자 남겨져서 하루하루가 걱정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진욱형이나 준혁이와 술을 마시면서 장난 삼아서 영어로 얘기해본 적은 많았지만, 그것이 놀이가 아닌 생존이 되어있을 때의 입장은 정말 너무도 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말도 빨랐고 발음도 달랐다. 사이브 더 칠드런!!!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런 낯선 생활 속에서 잠이 들 때면 항상 내일 생길 일을 예상하고 그것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했다. 어떤 표현을 해야하나,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나름대로 머리 속에 되내이다 보면 시간이 금새 새벽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걱정에 시달리며 불면증을 겪어야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불면증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갔고, 잠을 이루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어 갔다. 아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낯선 땅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매일매일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 때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때로는 식당에서 어떻게 밥을 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혼자 먹을까? 다음 도시에서의 숙박에 대한 예약을 미리 해야하는가? 이 도시에서는 어느 곳을 방문해야하는가? 항상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들에 점차 익숙해져가고 단지 그저 생각으로 남겨지는 순간이 많게 되었다. 가끔 생각으로 남겨지던 것들이 골치거리로 다가와서 문제가 생길 때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적응해가고 있다.
살면서 항상 새로운 고민거리를 만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고민거리는 어떻게든 해결되고 그것들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남아있을 뿐이다. 워킹으로 이 곳을 밟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많이 보아왔다. 결국 그들도 내일을 헤쳐나가고 이곳에서 나름대로 적응하여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모두들 고민을 갖고 있지만, 그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고 선택을 하는 순간 해결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일에 후회말고, 다가올 일에 걱정말고, 남 원망하지 말고,
그저, 너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그래, 아무런 고민없이 살기 보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고민으로 인하여 오늘을 살아가는데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