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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가자. 반드시 해야할 것이 있다

4월 7일 _Perth

by 와이즈맨

4월 7일. 호주에서 여행 36일째.

나름대로 36일간의 일기를 써왔고, 그 마무리를 지을 시점이 되었다.


어제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면서 가지고 있던 소주를 마신 후 잠을 청하려던 순간 같이 방을 쓰던 티노가 맥주 하나를 건넸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던 찰나에 나에게는 황금 같은 순간이 온게지. 함께 있던 모건, 프란체스코, 티노와 함께 마지막 맥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나름대로 맥주, 소주 그리고 정체모를 와인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8시가 되기 전에 눈을 떴지만 어제 섞어 마신 술의 영향인지 속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어야한다는 호주에서의 생존력에 아침을 챙겨서 먹었다. 오늘은 호화스럽게 1.5불을 주고 우유까지 사서 시리얼을 먹었다.


오늘 계획은 체크아웃을 한 후에 짐을 맡기고, 시내에서 선물을 산 후 오후에 공항으로 가는 것이었다. 10시경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서 내려갔는데 짐을 맡기고자 했더니 5불을 내야만 맡아준다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마음에 방을 쓰던 친구들에게 맡겨보고자 했는데, 우연히 티노를 만나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공짜로 짐을 맡길 수 있었다. (내가 운이 좋기는 좋은가보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니...)


시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쇼핑을 목적으로 시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부모님, 동생, 친구들을 위한 선물이 필요했는데 막상 사려니 무엇을 골라야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호주에서 살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것들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나에게서 받은 뭔가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무턱대고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개개인들의 성향을 알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부모님을 위해서 꽃씨를 사고, 현수를 위해서 CD를 사고, 동생들을 위해서 핸드폰 고리를 샀다. (사실 현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제 nate로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 공항으로 마중까지 나와준다기에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또 앞으로 더욱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이기에 작은 선물을 마련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이 선물들을 들고 조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들 각각에서 의미있는 뭔가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호주의 마지막 산책 >


참, 오늘 점심은 호주 생활 중 가장 비싼 음식을 먹었다. 나름대로 마지막 식사를 현지인들의 음식으로 하고 싶어 Food Court를 찾았는데, 10불에 한그릇 맘껏 담아 먹을 수 있는 Chinese food corner가 있어 그곳을 찾았다. 볶음밤에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 등 정말 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만큼 한껏 음식을 담아왔다. (너무 욕심을 부린 거 아닐까? 남기면 미안한데... 오랜만에 뱃속에 기름칠 해보는구나.) 문득 지난 여행행 동안의 식사가 떠올랐다. 사실 고기를 먹지 못할 형편은 아니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돈을 아껴보자는 생각에 왠지 모를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무조건 싼 음식만을 찾아야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돌아갈 일만을 남겨놓은지라 나름대로 호사를 부리고 있기는 했지만, 지난 날 힘들게 보낸 것에 대한 미안함과 보상으로 여겨지는 감사함이 함께 남고 있었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블루마운틴에서 빗물 속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흘렸던 눈물이 떠올랐고, 호주에서 나름 호사를 누리며 먹는 마지막 음식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맛있고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 순간의 행복과 포만감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지만, 음식에 대한 감사함이 너무 컸다. 물론 중국음식이라 다소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있기는 했지만, 뱃속에 기름칠을 하고 양껏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 그 자체였다.

‘이 소중함과 고마움,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지.’

< 이게 그렇게 맛있었니? >


짐을 가지러 숙소로 돌아왔다. 식당에 맡겨 놓은 것들을 챙기는 것을 잊었기에 그동안 함께 했던 주방용품들을 정리했다. 그 안에는 식용유, 소금(Arthouse in Loancestone에서 몰래 지퍼백에 담아온), 소고기 다시다, 양파 하나, 포도잼, 한번 먹고 남은 쌀과 그동안 열심히(?) 모아온 비닐봉지가 있었다. (사실 비닐봉지는 여행자들에게 정말 소중한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주방에 Free Corner에 두고 기념으로 Greenbag을 챙겨왔다. 이 모든 것들을 한국으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나보다는 이곳에 남은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물건일 테니 작은 정성을 모아서 가지런히 정렬을 해두고 자리를 떴다. 참, 소고기다시다를 두고 오면서 쪽지를 붙여 놓았다. 'Only for Korean'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행하면서 다시다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랬었지만, 물과 재료, 소금 그리고 다시다만 있으면 한끼 식사를 거뜬히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곳에 놓여진 다시다를 어느 한국인이 보면서 내가 그것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먹으면서 느꼈던 행복함을 더불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다시다를 보는 반가움도 함께.


한국에 돌아가면 작은 상자를 구해서 그안에 호주 여행을 기념할 모든 것을 담아놓을 생각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오늘을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보는 나를 생각하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면서 티노, 프란체스코, 키아라를 만나고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왔다. 시내에서 픽업을 마치고, 국내공항을 거쳐 국제공항으로 오기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 특히 국내공항에서 국제공항으로 오는 길은 누군가 5분거리라고 했지만, 15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었던 듯 하다.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지... 90분의 긴 여정이었지만, 어젯밤의 피곤함 덕분이었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떨구며(정말 불쌍하게 보였을 만큼) 잘 잤기에 편하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는 마지막 선물을 살 계획이다. 양주, 초콜릿, 그리고 제수씨를 위한 뭔가. 공항 1층에 면세점이 있길래 가보았더니 술과 초콜릿은 살 수 있는 것 같은데 제수씨를 위한 것이 보이질 않는다. 지갑이나 헤어핀을 살 계획인데 보이지 않는다. (면제점은 인천공항이 가장 큰 거 같다. 퍼스와 비교해보니, 인천공항 면세점은 정말 대한민국도 홍콩 못지 않은 쇼핑천국인 듯 하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입국장에도 2층에 면세점이 더 있다고는 하는데 새벽 1시 비행기를 타는 나에게 모든 상점이 문을 열고 반겨줄 것 같지는 않다. (문을 닫는다는 말이지.) 만일 이곳에서 구매하지 못한다면 홍콩에서 사야하는데... 사실 홍콩을 경유하면서도 90분이란 시간 밖에 없어서 뭔가를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연착만 되지 않는다면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오늘 공항으로 오기 전 시내에서 한국으로 두 통의 엽서를 보내고 왔다. 하나는 나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사실 부모님께 보내는 엽서는 처음에 보내지 않을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엽서를 쓰는게 잠시 귀찮을 수 있겠지만, 지금 작은 수고스러움과 귀찮음을 감내한다면 그 엽서를 받아보는 이에게는 정말 값지고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을텐데. 절대 나만의 편안함을 쫓을 수 없었다. 난 엽서를 써야만 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내가 당신들의 자식인 동안 자랑스러운 아들이고자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난 이미 내가 가진 모든 맘을 그 안에 담고 있었는데......

그리고 나에게는 'Do-Dream! 그 의미를 찾아서 후회없이 언제나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널 믿는다'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내가 귀국한 후에 그 엽서를 받아보겠지? 절대 오늘의 경험과 각오를 잊지 말자. 그래야 오늘의 투자가 빛을 발할 테니…

< 드디어 간다, 퍼스 공항을 떠나며 >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 아마 그동안 그리웠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반가움과 감사를 표현해야겠지? 사람들도 만나고, 먹고 싶었던 것들도 먹고, 잃어버린 살도 되찾고.(아마 5kg은 족히 빠지지 않았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몸무게 재어봐야지.)


그리고 돌아가서 반드시 해야할 것들이 있다.


내 삶에 대한 지침을 만드는 것.

호주에 있으면서 경험과 일기 속에 분명히 내가 평생을 가지고 가야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잘 정리해서 인생의 좌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한 Value를 두어 내 삶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항상 곁에 두어야할 것이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그것들이겠지.


그리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지. 인생 속에서 의무감을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즐거움을 갖고 있어 항상 열정적이고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에 내가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내 인생이 의무감으로 읽어간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되지 않으리라. 결코 내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될 것이고. 시간을 그저 흘러가게끔 만들어서는 안된다. 시간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시간이 흘러가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야지. 직장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찾아 인생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36일이 언제 갔는지 모를 만큼 금새 지나가 버렸다. 어떤 순간에는 ‘아직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라고 할 만큼 여행의 흥미를 잃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결과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이 컴퓨터 안에는 그 동안의 사건들이 사진과 일기로 남아있기에 언제나 지난 시간을 꺼내어 볼 수 있으리라. 떠나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다면 물론 거짓말이겠지. 아직도 뭔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니. 하지만 이게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요, 이 끝을 바탕으로 난 또다른 뭔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끝이란 시작의 또다른 이름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보다 더 열정적이고 즐거운 삶으로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이 생각하고 느끼지 않았는가? 그것들이 있기에 앞으로 내 인생이 더욱 행복할 수 있을텐데, 지금 갖고 있는 그 작은 아쉬움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


자, 이제 가자. 나의 조국으로. 나의 또다른 시작을 위하여......

대한민국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또다른 시작이여 나를 환대하라. 이제 내가 너를 접수할 테니...


아아아아아아~~~~~악!!!!!!


힘껏 소리쳐 본다. 눈물이 날 만큼 코끝이 찡해온다. 그래 이런 느낌이야.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면 그것을 보상 받기 위해서라도 난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난 믿는다.!!!!

난 할 수 있다!!!!


< 자, 이제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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