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 밥 먹어라
포두면으로 들어선 차에서 일행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 리오의 고향 마을 남성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복산 줄기에서 흘러내린 낮음 직한 구렁 위로 서로 어깨를 견주듯 모여 있는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군데군데 펜션을 방불케 하는 잘 지어진 집들이 보기에 조금은 불편합니다. 부의 편중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애써 티 낼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었습니다.
오히려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헝클어진 외양이 서글프도록 을씨년스러운 것은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입니다.
사철나무로 둘러 쳐진 잡초 무성한 뜰과 휑한 운동장이 한때 이곳이 학교였다는 사실을 짐작게 할 뿐입니다. 오래된 나무로 보아 역사가 제법 유구한 것 같습니다.
콩나물 교실을 개선해서 과밀 학급을 해소해야 한다고 부산을 떨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먼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무작정 폐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 시골로 혹은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 교육을 걱정하는 세대에게 학교가 없으면 선택의 여지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당장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만 따질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회비용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악순환의 되풀이는 이쯤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사는 온전한 시골 모습은 영영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함께 상생하는 방안을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적막합니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있지만 어떤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자랐던 아이들은 세상 곳곳에서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보살펴 주었던 학교는 더 이상 연명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무심한 변화 앞에서 노쇠한 노구를 내려놓는 씁쓸한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조용히 둘러보는 마을은 조용하고 한가롭습니다. 논물이 타고 도는 실개천과 푸른 잎사귀를 뻗은 벼가 조화를 이루는 목가적인 풍경은 평화롭다 못해 무료하기까지 합니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을 보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합니다.
한편으로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 이곳도 비켜 가지 못한 현실을 접하면서 느끼는 감회는 서글픔 그 자체입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텅 빈 집만 덩그러니 남는 기우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닌 당면한 현실임을 이곳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되돌리거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다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다가 매년 줄어드는 인구와 더불어 소멸되는 지역을 걱정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친 도시 편중과 시골 홀대는 이 시대가 지닌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폐교가 주는 쓸쓸함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한때는 골목마다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로 넘쳐났습니다. 와글와글 떠들고 놀다 보면 밥때를 놓친 형아를 찾느라 종종걸음 치던 아우가 힘껏 목청을 올립니다. 밥 먹어라 형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집집마다 죽담에 벗어놓은 신발이 어찌 많은지 켤레를 맞추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뒤죽박죽 늘려 있는 고무신을 보고도 엇비슷한 나이 터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흔하게 볼 수 있던 풍경이었습니다. 참 많은 식구가 복닥거리고 살았던 기억이 어제 같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검은 널빤지가 육중하게 얽힌 꽤 규모가 큰 오래된 건물이 시선을 끕니다. 녹슨 양철 지붕과 떨어져 나간 페인트 자국을 보아 오래전에 문을 닫은 방앗간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한때는 방앗간이 부를 만들어내는 상징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탈곡된 벼를 찧어 쌀로 만드는 작업은 곧 농촌의 힘든 노동이 자본화되는 귀착점이기도 합니다. 몇 말, 몇 섬으로 계량화된 생산량이 지주에게 편중되는 과정에서 느꼈을 소작인의 설움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동네 회관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가 고요한 마을을 흔들어 깨웁니다.
어른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빠짐없이 맞으라는 안내 방송입니다. 이런 앰프가 울리면 봉창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던 어머니가 문득 생각납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