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대물림
대문을 두드리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달려 나올 것 같은 친정집 담벼락에는 맨드라미만 홀로 피었습니다. 시끌벅적 궁핍했던 어린 시절의 소란이 담을 타고 넘어오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해작질하던 악다구니가 엊그제 마냥 들리는 것 같고 타닥타닥 아궁이에서 청솔가지 타는 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아득합니다. 부대끼던 피붙이들이 산산이 떠난 빈집의 지붕만 덩그러니 높습니다.
서먹하게 망설이던 리오가 녹슨 대문을 끝내 열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돌립니다. 세월의 고달픈 바다를 건너온 배가 항구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는 모습은 애처롭습니다. 아버지마저 요 근래 요양원으로 들어가신 빈 마당에도 맨드라미는 피어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일행들은 침묵으로 위로를 대신합니다. 인기척 드문 마을에 요란한 경운기 소리만 그나마 적막을 깨쳐줍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들를 때마다 한분 한분 보이지 않는 어른들은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먼 길을 떠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다 오래전 고향을 떠났다 돌아온 이들을 보면 그들의 타향살이가 녹록지 않았음을 어렴풋하지만 알 수 있습니다. 구질구질하게 물어보지 않아도 고향을 지키고 사는 터줏 꼰대들의 직관은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고향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있던 이들은 떠나고 떠났던 이들은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온 이들은 옛 터전에서 지난 과거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 과거를 본다는 것은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또 힘을 얻습니다. 부대끼며 살아야 할 당위성을 찾습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고향을 통해서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을 충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고향에는 생각만 해도 울먹여지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고향이 어머니의 품이요 어머니의 품이 곧 고향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도 함께 떠오르는 것입니다.
분리될 수 없는 어머니와 고향이 맺고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우리는 향수라고 말합니다.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수시로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 어머니가 있고 고향이 있다는 건 분명히 축복받은 삶입니다. 어머니와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소중하게 안고 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더욱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리오의 고향에서 변해가는 나의 고향도 읽을 수 있었던 한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어머니, 저마다는 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그들 누군가의 가슴속에는 또 다른 애틋한 그리움의 어머니가 되어 다시 남을 것입니다. 그리움의 대물림에는 그래서 늘 어머니가 있습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