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의 젖멍울
잠시 비가 그치더니 햇살이 비칩니다. 육중한 교각이 육지와 섬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렸습니다. 바다라는 장애물을 일거에 제거해 버린 기술의 발전도 놀랍지만 투자에 대비한 가성비를 일일이 따지지 않은 나라님들의 황송한 아량은 더 놀랍습니다.
종일 기다려도 차 몇 대 보이지 않은 곳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교각들이 앞다퉈 세워지고 있습니다. 찢겨 나간 산과 들의 단말마가 개발의 거대한 굉음에 묻혀 맥도 못 쓰는 불길한 현실이 염려스럽습니다. 편리와 속도에 매몰된 무분별한 공사가 필시 초래할 파장은 그저 기우이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이 산야가 훼손이라는 불치병으로 더 이상의 치명상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신 부두로 넘어갔지만, 한때는 고흥과 여수를 이어주는 여객선이 오갔던 옛 포구를 찾았습니다. 겨우 흔적만 남아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무렇게 자란 나무 사이로 겨우 형태만 보이는 시멘트 바닥이 오래 전의 길임을 짐작게 합니다. 방치된 길 위로 조심스럽게 차를 밀어 넣습니다.
행상을 위해서 여수로 가는 배를 타려면 리오의 어머니는 이 길을 걸었습니다. 처절한 삶의 끈을 붙들기 위한 눈물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보자기로 싼 코흘리개를 업고 어르며 행상 어머니를 따라 걸었던 일곱 살 아이 리오의 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늦는 날이면 부두로 와서 기다렸습니다. 황토 바람에 쓸려오는 흙먼지가 어린 귓불을 후려칠 때면 저 멀리 여수만의 파도도 넘실거렸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가슴 오싹한 수풀의 서걱대는 소리는 온갖 전설을 쏟아놓습니다. 무섭고 소름 끼치는 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안주머니에 들어찼을 몇 푼의 동전이 오늘의 수입을 말해주듯 딸랑거리며 돌아오는 밤길은 멀고도 멀었을 것입니다.
장맛비에 절은 여수만의 거센 탁류가 리오의 아픈 시절을 대변하듯 부두에는 파도만 속절없이 철썩입니다. 인적이 없는 낡은 개집 앞에는 누런 똥개가 텃세를 부린다고 제법 야무지게 짖어 댑니다.
배고파 보채던 아이도, 업고 어르던 그 아이도 어느새 당시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유년의 벌거벗음이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을 오늘은 다만 웃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움조차도 사치라 여겨지는 궁색한 과거를 지금은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잊고 싶을 뿐, 습기에 젖은 바람 한 자락이 일행들을 훑고 지나갑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런 어미의 고달팠던 삶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떠난 피안의 땅에서 리오가 이룬 것은 무엇이며 또 잃은 것은 무엇입니까? 굽이치던 삶의 변곡점마다 얼룩진 여한은 질곡의 자물쇠를 끝내 풀지 못한 어미의 삶과 무엇이 또 어떻게 다릅니까? 부끄러운 자문을 해보다 무거운 마음에 홀로 외롭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기다리는 신기루 같은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요행이 아니고서야 부지런하게 땀 흘리는 우직한 사람만이 조금씩 자신의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초라했던 어머니의 한발 한 발이 오늘을 있게 한 모진 전진의 걸음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이만큼 흐른 후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생각해 보면 눈물겹던 과거마저 오늘의 평온으로 다가오는 것은 세월이 가져다준 망각의 끝에서 되살아난 지금의 회한 인지도 모릅니다. 그 회한의 끝자락에 언제나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부지런하되 서두르지 않는 삶이 어머니의 한평생이었습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꿋꿋이 풍파를 넘었던 리오 어머니의 행상 길은, 어쩌면 세대를 같이했던 모든 어머니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이젠 남보다 왜 못 살았느냐고 원망했던 가난한 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물음표를 지울 것입니다. 감사했다고 하늘 우르르 절합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사무치도록 그리운 어머니를 다시 한번 불러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멀리 팔영산의 어머니 젖멍울 같은 봉우리가 잠시 걷힌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리오의 무덤덤한 눈가가 어느새 불그레하게 젖어있습니다. 일행들의 눈꺼풀에도 함께 이슬이 맺혔습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