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언제나 길은 있다

포두면의 낯선 길

by 강쌍용



리오를 내려주고 다시 해창만을 따라 포두면의 낯선 길을 달립니다. 내나로도를 거쳐 외나로도에 이르는 길은 한산하고 아득해서 적적하기까지 합니다.

장마 중의 푸르름으로 온 대지가 싱그럽지만 이농으로 인한 묵힌 밭에는 잡초가 가득합니다. 농업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는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차선도 없는 외길을 따라가는 동안 뜨문뜨문 만나는 작은 집들이 정겹습니다. 그 사이로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교회의 아담한 첨탑도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찻길도 아닌 차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는 농로에 맞닥뜨려 잠시 망설입니다. 계속 이어지지 않는 길이라면 차를 돌릴만한 공간이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 담보할 수 없다면 후진해 나올 수고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풀이 자라 도로의 경계선마저 허물어버린 터라 꽤 신중을 기울이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차를 밀어 넣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말입니다.

어차피 생소한 곳의 여행이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낯섦이 두려워 가기를 주저한다면 여행에서 얻을 추억도 그만큼 상쇄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으로 맞닥뜨린 경험이 망설여지는 것은 곧 도래하는 불확실성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불안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기우에 불과한 염려로 시도를 포기한다면 아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초래하는 위험은 오히려 헤쳐나가기에 따라 새로운 역량을 배가시키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충만한 인생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경험과 노력이 모이고 쌓인 결과입니다. 그러한 삶은 자신에게도 유익하지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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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다 보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펌프 소리가 요란합니다. 토하를 키우는 듯한 양식장에서 뿜어대는 물줄기가 작은 무지개를 만들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가둔 물의 순환을 통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사료가 잘 섞이게 하려는 작업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순전히 추측일 뿐 마땅히 물어볼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민물 새우를 키우는 고육지책도 나름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바다 자원의 고갈에 맞선 새로운 수입원의 창출이 그만큼 다급했을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부지런한 노동력만큼 궁핍함도 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다행히 농로는 차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숨 막힐 듯 조여 오는 절망의 순간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찾아가는 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길이 비록 좁고 거칠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마주친 옥수수밭에는 방목된 토종닭이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위엄 있는 수탉의 발간 벼슬이 유난히 눈에 들어옵니다. 척 보아 우두머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거느리고 가는 암탉들 주위로 추파를 던지는 다른 조무래기 수컷들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두머리 눈을 피해 기회를 노리는 녀석들 가운데 유난히 날쌔게 보이는 놈이 보입니다. 구구대는 소리가 결기를 다지듯 제법 힘차게 들려옵니다. 잠시 살피고 지나려는데 장난기가 발동된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다시 달려가서 살펴봅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가는 녀석들이 대오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밭두렁 쪽으로 달아나기 바쁩니다.

협골이 유난스러운 놈이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벌리는 한바탕 결투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수고로움이 머쓱해지는 순간입니다. 오나가나 수컷들은 모름지기 헛심을 쓰는 일에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저 동물적 본능을 발산하는 일이라면 어찌 그리 충실한지!

인적 드문 외나로도의 모세혈관 같은 밭길이 손금을 그은 듯 불규칙하게 들판을 나누고 있습니다. 습기를 한층 머금은 갯바람이 한 가닥 들판을 쓸고 지나갑니다.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왔던 생소한 이 경험은 참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좋은 시간, 좋은 사람과 좋은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약속된 일탈을 통해 삶은 그저 막연하고 무미건조하지 않다고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정녕 감사하고 고마운 순간입니다.

산머리 위로 햇살 머금은 구름 조각이 묵화를 그려 놓은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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