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가 목 뒤를 두드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목덜미와 어깨를 팽팽한 줄로 연결해 잡아당기는 것 같다. 조금만 잘못 돌리면 뚝 끊어질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하루 평균 천 번 넘게 고개를 틀어 인사하다 보면 목 관절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게다가 야간근무 후엔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아침엔 목이 돌아간 인형 신세가 되고 만다. 이제 40분만 버티면 퇴근이다. 잠 한숨 못 자고 버텼다. 잠을 쫓기 위해 밤에 마신 커피가 화근이었다. 게다가 극도로 피곤하면 잠을 못 자는 체질도 한몫했을 것이다.
46 가 240X 중형.
충혈된 눈을 들어 억지로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차주도 마주 인사한다. 인사와 함께 내밀어야 할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통행권이 없는 것이다.
통행권을 잃어버렸는데요.
우습지만 이런 경우,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엔 자동으로 뒤차의 눈치를 보게 된다. 통행권이 없는 경우에는 인터폰으로 사무실과 연락을 취해야 한다. 그 차가 어느 톨게이트에서 들어왔는지 확인을 해야 요금 정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길어질 때는 차가 많이 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뒤차들의 짜증은 고스란히 도미의 몫이 된다. 밀려봤자 20여 초. 다른 요금소보다 늦어진다 싶으면 고객들의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고속도로를 달려와서일까? 거리를 초 단위로 접어 달리는 축지법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현대인들은 남들보다 늦어지는 것을 못 견뎌한다. 그들의 목표가 현재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관점이 여유보다는 경쟁에 있기 때문이다.
차들이 늘어선 줄에서 경적이 들린다. 저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짜증을 내며 진상을 부릴 것이다. 뒷골이 당겨지며 뻣뻣해진다. 53가 320X가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아 커피 한 캔을 건네고 간다. 캔 커피를 위안 삼아 심호흡을 해본다.
53가 320X 준중형차.
미안한 표정으로, 열린 창문을 들여다보며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살짝 눈치를 보며 손을 내밀자,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통행권을 내민다. 남자의 표정이 평온하다. 그래도 받은 통행권을 재빨리 투입구에 넣고 암산을 해 잔돈을 거슬러주며 발행키를 누른다. 영수증이 기기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초조해한다. 새벽인데 신경질을 내면 어떻게 하지? 새벽 운전으로 피곤함에 지친 사람들은 몇 초만 늦어져도 짜증을 내고 욕을 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세요. 안 급합니다.
잘못 들은 것일까?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번 남자를 본다. 차분한 얼굴의 남자가 미소를 띠며 앉아있다. 고마움에 마음이 안정되어 무사히 영수증을 건넨다. 영수증을 받은 남자가 비타민 음료를 내민다.
피곤하실 텐데, 이거 드세요. 안녕히 계세요.
당황함에 인사도 못 했는데 남자가 자기만 인사하고 가버린다. 비타민 음료를 먹기 전인데도 몸이 따뜻해지고 힘이 솟는다.
15 나 X366 중형차.
앞차의 꽁무니를 잇듯 바짝 다가선 차의, 검은 유리창이 열린다.
안녕하...
어이! 아줌마! 미쓴가? 왜 이렇게 꾸물대? 바빠 죽겠는데. 톨게이트 안내양이 손님하고 노닥거려도 되는 거야? 이름이 뭐야?
40대 중반의 남자가 인사의 끝을 잘라먹으며 시비조로 하대를 한다. 치밀어 오르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왜 대답이 없어? 내 말 안 들려?
죄송합니다. 통행권을 안 가져오신 차가 있어서요. 애써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응대한다.
그래도 그렇지 말이야. 차 밀려 있는 거 안 보여? 센스 있게 해야지. 센스 있게. 그러니 이런 데서 표나 받고 있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참 인생 어렵게 사네. 어휴!
네. 죄송합니다.
약간 굳은 표정일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표정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건네주자 남자가 혀를 차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스를 분출하며 내뺀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타인에게 대놓고 반말을 할 수 있고, 무례하게 수작을 걸 수 있는 특권을 누가 저들에게 주었을까? 대놓고 뻔뻔스럽고, 대놓고 거만한 저들의 태도에 경외심까지 든다.
78조 X442 승합차의 벌어진 창문 사이로 곱지 않은 얼굴이 인상을 쓰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이고 나발이고, 너 초보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바빠 죽겠는데. 반말에 인상까지 쓰고 있다. 연달아 잡놈이다.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앞 손님이... 부글부글 끓지만 친절을 가장한다. 그런데 말을 끊는다.
아, 변명하지 말고. 제대로 해! 제대로! 장사 한 두 번 해보나! 통행권을 던지듯 내민다. 빨리 받지 않으면 이 인간은 통행권을 떨어뜨릴 것이다. 일부러 떨어뜨린 통행권을 주워줄 리 만무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통행권을 주워야 할 것이다. 가끔 통행권이 차 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버릴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곤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다행히 통행권이 손안에 들어왔다. 9400원입니다. 남자가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 것을 예상하고 오른손으로 600원을 준비한다. 500원짜리 한 개와 100원짜리 한 개.
씨발! 바쁜데! 너, 뭐하는 년이야? 거스름돈을 받은 남자가 대뜸 욕설한다. 어처구니없어 마주 쳐다본다.
아쭈! 꼬나봐?
왜 욕을 하십니까?
야, 이 뭐 같은 년아! 600원을 줘야지, 200원을 주면 어떡해?
거기, 큰 거 한 개, 작은 거 한 개, 600원 드렸잖습니까?
어디? 내 손에 없잖아.
남자가 빈손을 내민다.
이런 일은 아주 허다하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도 있다. 잔돈을 줄 때 혹시라도 번거로워질까 봐, 100원짜리 500원짜리를 구분해서 주는 사람도 있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통행료를 미리 챙겨두었다가 딱 맞게 주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주 심심한 사람이다. 관심받고 싶은 사람. 무료하고 불만이 많은 사람. 언제든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람. 자신보다 약한 존재의 허점을 노리는 사람이다. 이 사람과 언쟁을 하면 안 된다. 언쟁을 하게 되면 이런 사람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고 항의 전화까지 할 것이다. 그건 정말 피곤한 일이고, 이중 삼중으로 시달려야 하는 일이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400원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살림에 큰 보탬되십시오.” 400원을 내민다. 웃음과 함께.
“이 년이 뭐라 하는 기고?”
“내 돈으로 드리는 거예요. 사정이 하도 딱해 보여서.”
“와! 나, 이 씨발년이!”
“지금 CCTV 녹화 중입니다.”
“뭐! 이 좆같은 년이! 와! 나, 이 제대로 열 받네!”
“시간을 더 지체하시면 경찰이 올 겁니다.”
“에잇! 더러운 년아!”
남자가 400원을 요금소에다 내던지며 급발진을 해 튀어 나간다. 100원짜리 네 개가 머리와 얼굴을 때리며 튕겨 떨어진다. 요금소를 박차고 나가 한바탕 하고 싶지만 참는다. 3년 동안 욕만 해대던 고객이란 인간한테 침 세례까지 받은 선배도 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뒤차가 급하게 들어선다.
안녕하십니까?
화나고 속상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다. 그냥 비웃고 만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