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의 나이 스물아홉. 지방대를 나왔고, 무역회사에서 3년을 근무했다. 회사 부도로 실직을 했고, 2년을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살았다. 지금 도미에게 남아있는 것은 프라이드밖에 없다.
2015년형 프라이드 해치백의 운전석에 앉은 도미가 창문을 연 후 눈을 감는다. 톨게이트 요금징수원 생활을 해온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생긴 버릇이다. 눈을 감고 연달아 심호흡하면 아득한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잊는 의식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뜨겁고 추운 양철통으로 다시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빨간색 프라이드는 2015년 도미가 무역회사에 입사하자마자 구매한 자동차다. 첫차는 중고가 좋다는 주위의 만류와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고집했다. 강렬한 암적색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부도가 났지만, 도미는 차를 지켜냈다. 자동차가 주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재산이다.
“어서 가자. 오래 안 기다렸지?”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손을 흔들며 뛰어온 지숙이 차에 올라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아니, 오래 기다렸어.”
“기집애! 뭘 오래 기다려. 너나 나나 끝나는 시간은 똑같은데.”
“언니는 똥 싸고 왔잖아.”
“야! 됐으니까 얼른 운전해라잉!”
지숙이 카톡방을 열어 친구가 보내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는다. 천명사.
“거기 꼭 가야 돼?”
“가야 돼.”
“왜?”
“재밌으니까.”
“재밌어? 뭐가 재밌어?”
“가보면 알아.”
“공짜 아니잖아.”
“아, 글쎄! 가보면 안다니까. 잔말 말고 좀 가자, 응?”
골목으로 진입한 차가 천명사를 찾아낸다. 천명사는 큰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점집이 허름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듯이 천명사도 그랬다. 오밀조밀 다닥다닥 붙은 낡은 상가건물들이 밀집한, 쇠락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굳이 집마다 조사해보지 않아도 될 만큼 동네의 소득 수준이 한눈에 들어왔다. 철학관이나 점집은 돈 없고 힘겨운 사람들의 신경정신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허름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야! 여기다, 여기. 여기다 세우면 되겠다.”
주차공간을 찾느라 20여 분을 허비하다 낡은 1톤 트럭 뒤에 차를 세운다. 10시 13분. 약속 시간까지는 17분의 시간이 남아있다.
“언니는 왜 가는 거야? 형부 바람피웠어?”
“하이고, 참! 그런 주제나 되니?”
“그럼?”
“그냥 재미로 간다니까. 우리 애들 어떤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너는? 너는 뭐 물어볼 거야? 시집 언제 가는지 물어봐.”
“됐어.”
“야! 주제에 안 맞게 내숭 떨지 말고, 궁금한 거 다 물어봐. 그리고 니가 먼저 나불나불 고백하지 말고.”
“알았어.”
도미가 차창을 열고 점집을 훑어본다. 흔히 볼 수 있는 2층 주택이다. 1층에 상가가 있고, 뒤로 돌아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2층은 가정집 같다. 천명사 앞 골목에서 코란도를 닦고 있던 남자가 작은 상자를 들고 천명사 안으로 들어가더니 2층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천명사와 2층이 안으로 연결된 구조이다. 10여 분이 더 흐르는 동안 노인 둘이 지나갔고, 채소를 실은 트럭이 한 대 지나갔으며, 새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한 명 지나갔다.
“시간 됐다. 들어가자.”
“오케이!”
천명사 안은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마르티스로 보이는 작고 흰 개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고, 식탁 위에는 꽃병과 책들, 누룽지 맛 사탕이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식탁 옆 책상에 앉아있던, 피부가 하얗고 안경 낀, 젊은 여자가 그들을 응대한다.
당연히 점 보러 왔지. 웬 질문? 도미가 뜨악한 표정을 짓자,
“안녕하세요? 열 시 반에 예약한 사람인데요.”
지숙이 얼른 대답한다.
“네. 어서 오세요.”
‘와! 이런데도 직원이 있구나.’
집주인이 있음에도 개가 계속 짖어댔다. 도미가 무릎을 꿇고 턱과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개가 꼬리를 흔들며 도미와 눈을 맞춘다.
“이모! 손님 오셨어요.”
“응, 들어오시라고 해.”
“어떤 분이 먼저 하실 건지.”
언니 먼저 할래?
아니, 너 먼저 해.
방안에는 부리부리한 눈에 안경을 낀 여자가 책상 안쪽에 앉아있었다. 위로 치켜 올라간 눈썹과 약간 들린 코, 두툼하고 큰 입을 가진 여자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쾌활하고 활동적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등줄기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향 타는 냄새는 좋지만 지나치게 덥게 느껴지는 방이다. 문 맞은편, 제단 위엔 초와 향이 타고 있고, 촛불 뒤로 백발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인자한 미소의 노인 조각상이 호랑이 위에 앉아있다. 노인의 주위로는 아이들의 조각상과 삼지창을 든 장군상이 놓여있다.
“이런데 많이 왔었죠?”
“아뇨. 처음인데요.”
“그래요?”
여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도미 역시 미심쩍은 생각이 든다.
“어디 보자.... 콧대가 높고,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진 게...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리분별도 정확한 편이고..... 생년월일이?”
“1992년 5월 10일”
“1992년..... 원숭이띠. 스물아홉이구만. 임신년생. 음력... 4월 16일...”
“태어난 시는?”
“작년이 좋았는데, 올해도 좋아. 쭉 밀고 나가, 쭉! 앞으로도 좋아. 결혼 안 했지?”
“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여기 이렇게 다 나오잖아. 아쉽네. 하나 달고 나오지 그랬어?
“네?”
“그래도 괜찮아. 그냥 밀고 나가. 죽더라도 끽소리는 하고 죽을 거여. 그리고...... 아직 남자도 없지? 그래서 왔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여러 가지…….”
도미가 점쟁이의 직설적인 질문에 당황하며 대답을 얼버무린다.
“어릴 때부터 무술을 했구먼.”
점쟁이가 도미의 몸을 훑어보며 말한다.
“네.”
점쟁이의 관찰력과 직관력에 감탄하며 도미가 웃음을 보인다.
“꿈이 잘 맞지? 사람도 잘 파악하고. 승부욕 강하고, 자존심 세고. 그러면서 인정도 많네? 성질은 불같고. 성질을 잘 다스려야 해. 참을성 기르고.”
“네…….”
“사업은 하는 게 좋은데.. 사업에는 아직 흥미가 없고.... 국가의 녹을 먹고 싶어 하는구먼.”
도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점쟁이와 눈을 맞춘다.
“그런데.... 올해는.... 올해 얼마 안 남았잖아. 열심히 해봐. 내년엔 될 거여.”
“남자 조심해. 11, 12월만 잘 넘겨.”
점쟁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얼굴에 근심까지 내비친다.
“괜찮아, 괜찮아. 그것만 잘 넘기면 대운이 트일 거야. 김 씨 남자를 찾아. 김 씨가 귀인이야.”
“뭐래? 뭐래니?”
“몰라.”
“야! 너 졸았어? 기껏 돈 주고 점 봐놓고 모르긴 뭘 몰라?”
“김 씨를 찾으래.”
“김 씨?”
“응.”
“김 씨가 누가 있지? 김 씨가 니 신랑감이래? 우리 승일 아빠가 김 씬데? 김주임?”
“아, 재수 없게! 웬 김주임이야?”
“그럼 누구지?”
“집에 다 왔어. 내려.”
“차 한잔 하고 갈래?”
“아니. 가서 잘래.”
“그래라, 그럼! 김 씨 잘 찾아봐라.”
좌회전 라인에 들어선 도미가 직진 차선에 대기 중인 옆 차를 곁눈질한다. 신호등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이 결연하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표정과 닮아있다. 남자는 파란불로 바뀜과 동시에 급출발할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일까? 옆 라인에서 시선을 거둔 도미가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김 씨를 찾으라고? 어디 가서 김 씨를 찾아? 김 씨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변에 김 씨 남자는 없었다. 김주임? 우웩! 그 재수 없는 놈.
그 흔한 김 씨가 왜 내 주변엔 없는 거지?
그래서 특별한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다가 도미가 자조의 웃음을 웃는다. 점쟁이의 말에 좌우지되는 자신이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점쟁이의 사주풀이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잘 맞추는가 싶으면 엉뚱한 소리를 했고, 엉뚱한가 싶으면 잘 들어맞았다. 답답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이 점을 보러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점쟁이들의 언어습관에 자신들을 꿰맞추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은 낮이라 비교적 주차하기 수월했다. 50여 미터 앞에서 302호 여자가 마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빨간색 아웃도어룩을 입은 여자가 앞뒤로 팔을 휘저으며 걸어오고 있다. 먼발치이지만 여자의 당황한 모습이 느껴진다. 여자는 분명히 도미를 못 본 척할 것이다. 실직하고 난 후에 생긴 반응들이다.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되지만, 도미는 그 배려가 싫다.
사람들은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회배려자라도 되는 듯 여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폼 나는 직업이나 학벌만을 최고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맘에 안 들지만, 그것도 그들의 다양성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도미가 여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밝게 인사하자 이웃집 여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대답한다.
“어디 가세요?”
“오랜만이네? 그래, 잘 지냈니? 엄마는 잘 계시고? 내가 요즘 하도 바빠서 전화도 못 했다.”